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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수필

팽나무 / 정승윤

by 안규수 2023. 12. 9.

                                                                              팽나무 / 정승윤

나 죽으면 봉분을 쓰지 말아다오. 손등만한 무덤도 필요없다. 누구도 찾을 이 없기 때문이다. 나 죽으면 한 조각의 돌도 세우지 말아다오. 단 한 줄의 비문도 필요없다. 누가 진부한 내 삶의 기록 따위를 찾아 읽겠는가. 나 죽으면 내 뼈를 곱게 갈아서 팽나무 옆에 묻어다오. 내 삶이 고스란히 그 뿌리에 스미게 하여다오. 팽나무 가지는 오늘도 허공에서 뒤틀리고 꼬부라진다. 고통 뿐인 뿌리의 삶을 낱낱이 그대로 증언해 주고 있다. 내 삶은 악했거나 선했거나 또는 비루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팽나무는 오랜 인내처럼 서로만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상형문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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