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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이 절실함의 차이 때문에 삶의 장벽은 누군가를 멈춰 서게 하고, 누군가를 더욱 목마르게 만든다

by 안규수 2024. 2. 6.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 하루 저를 통해 누구를 사랑해 주시길 원하십니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 사무엘하 6장 13-15절

다윗의 행렬이 시작된다.
이 걸음이 마냥 행복한 설렘과 기대 위에 세워진 건 아니었다. 
앞서 3만의 무리를 동원하고 비파와 수금과 모든 제악으로 찬양하며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고자 했던 다윗의 마음은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일어난 웃사의 죽음을 통해 크게 좌절되었다(삼하 6:3-8).

다윗이 얼마나 당황하고 두려웠을까? 
한편으론 하나님께 서운했을 것도 같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예배가 보란 듯이 거절됐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도 삶에서 이런 충돌을 맞닥뜨린다. 
영광스러운 목적을 향해 가는 여정 중에 뜻하지 않게 
우뚝 솟은 커다란 장벽을 만나면 우리의 선한 동기마저 꺾여버릴 때가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장벽 앞에서 우리가 품은 갈망의 크기가 드러난다. 
장애물에 좌절할 것인가, 높이 뛰어넘을 것인가?

《마지막 강의》의 저자 랜디 포시 교수가 아들에게 남긴 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아들아, 네가 인생을 살며 어떤 벽에 부딪힐 때 그 벽은 너를 막기 위한 게 아니야. 
그 벽은 그것을 간절히 원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막아주기 위한 것이란다. 
너를 그곳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지.”

그러니 삶의 장애물, 인생의 벽 앞에서 절망하지 말라는 거다. 
분노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장벽을 넘어 계속 그 길을 가라는 것이다. 
인생에 장벽이 있는 건, 우리를 내몰거나 주저앉히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지를 깨닫게 하려고 있는 것이다. 
절실하지 않은 사람은 장벽 앞에서 멈추기 때문이다.

인생의 장벽은 간절하지도, 절실하지도 않은 사람을 멈추게 한다. 
그러니 장벽 앞에 서면 자신의 갈망의 크기를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정말 추구하고 갈망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를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된다. 
만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거라면 장벽을 뚫고라도 가야 한다. 
이 절실함의 차이 때문에 삶의 장벽은 누군가를 멈춰 서게 하고, 누군가를 더욱 목마르게 만든다.

다윗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그의 중심에서 소용돌이치는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향한 목마름 때문에. 
그래서 그 갈망으로 다시 돌아갔다.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기 위해 말씀 앞에 서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실패했던 자리, 좌절됐던 지점,
거절당한 그 장소로 돌아가서 첫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예배란 내가 드리는 것으로 완성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받으실 때 완성되는 것임을 고백하면서.


결국 인생의 동력은 갈망의 크기로 결정된다. 
갈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생은 전진한다. 
갈망이 크고 깊을수록 인생의 보폭과 크기가 달라진다.

가장 높고 위대한 것을 갈망하라.
그것은 단연코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 영광을 끊임없이 갈망하라. 
그럴 때 우리 인생은 누구도 따라잡기 힘든 동력을 갖게 될 것이다.

- 여섯 걸음, 원유경

† 말씀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 시편 18:29

† 기도
하나님, 주님의 영광을 향한 갈망을 제게 부어주소서. 
다윗처럼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눈앞의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더 큰 목마름으로 주님을 예배하게 하소서. 
그 갈망만이 제 삶을 이끄는 동력이 되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시 144:2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 하시는 자시로다

세계적인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는 스페인의 투우에 큰 매력을 느껴 여러 번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수많은 경기를 보던 헤밍웨이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위기에 처한 소들은 투우사를 버리고 경기장 한쪽 구석으로 도망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역을 다녀온 소는 엄청나게 강해졌습니다. 
운동장 전부가 똑같은 경기장이었지만 소들은 저마다 특정 구역에 가면 힘을 회복하고 강해졌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소들이 저마다 편안하게 느끼는 부분이 경기장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구역을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의 ‘퀘렌시아’(Querencia)라고 불렀습니다. 
헤밍웨이는 투우에 관한 글에서 “퀘렌시아에 들어간 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강해져 
쓰러트리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라고 적었습니다.
치열한 경기장에서도 소는 특정 구역에서 안식처와 같은 편안함을 느끼고 힘을 얻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치열한 세상에서 지치고 힘든 몸과 영혼을 주님을 만남으로 치유받고 능력을 얻습니다.
주님께 드리는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오히려 영과 육이 회복되는 생명력 넘치는 축제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린 후 오히려 지치고 피곤하다면 우리의 신앙이 잘못되고 있다는 확실한 신호입니다. 
마음을 돌이켜 주님이 주신 은혜와 기쁨에 집중하십시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우리의 힘이 되시고,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의 품 안에서 참된 안식을 얻으십시오
. 아멘!!!

주님, 세상에서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을 주님의 품 안에서 치유하게 하소서.
피난처이자 안식처인 주님을 만남으로 모든 상처를 치유합시다
. <김장환, 나침반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