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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그의 말과 글은 수용소의 독가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by 안규수 2024. 3. 21.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 하루도 저를 통해 누구를 사랑해 주길 원하십니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한 자매의 이야기다. 
그녀는 이십 대에 결혼해 예쁜 딸을 낳았다.

하지만 이틀에 걸친 진통이 너무 힘들었고, 어린 생명을 기르는 법도 몰랐다. 
그래서 둘째는 상상도 못 했고, 버거워하는 자매를 위해 남편은 정관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 교회에는 최소 둘에서 다섯 자녀까지 둔 다둥이 가정이 많다. 
하나님을 공급자로 믿고, 믿음의 다음세대를 기르고자 하는 신념으로 많이들 낳는다. 
자매도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믿음이 자라니 자녀를 더 낳아 기르고픈 거룩한 소망이 생겼다.

부부는 함께 기도했고, 남편이 복원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병원에 가보니 복원 수술이 잘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자매는 낙심해서 내게 솔직한 마음을 나누었다.

“사모님, 막힌 길 같아요. 이렇게까지 힘들게 둘째를 낳아야 하나 회의감이 들어요.”
자매가 울며 심정을 토로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울렸다.
‘막힌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이다.
협착하여 찾는 자가 별로 없지만, 그 길로 나아가면 생명을 만날 것이다.’


이 말씀을 전하며 자매를 격려했다.

이후 자매는 힘을 얻어 다시 남편과 기도했고, 
감사하게도 한 번 더 복원 수술을 해주겠다는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생명이 찾아왔다. 
끝까지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 자매는 과거에 힘겨웠던 출산과 모유 수유도 순탄하게 감당했다.

이 과정을 함께 기도하고 지켜보면서, 복음의 능력을 다시금 절감했다. 
사회적 흐름을 거슬러 정관복원술을 하고, 난관에 부딪혀도 재도전하여 
끝내 귀한 생명을 만난 것이 복음의 능력 아니고서는 어찌 가능할까? 
주님이 부어주신 믿음이 아니었다면, 결코 지나 올 수 없는 길이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을 선택하는 믿음은 오직 ‘복음’에서 온다. 
복음으로 새 생명을 얻어 영의 생각을 하지 않는 한, 그 길은 좁고 불편하고 미련해 보일 뿐이다.

이 세대가 ‘넓은 문’을 향해 달려갈 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것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 곧 생명으로 이끄는 좁은 문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 비결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다(롬 12:2).

- 육이 죽고 영이 사는 40일 작정기도, 유예일

† 말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 마태복음 7:13~14

† 기도
십자가의 좁은 길을 가신 예수님, 
제 안에 새로운 마음을 창조하사,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갈 수 있도록 
기쁨과 감사와 믿음과 용기를 부어주세요. 
오직 복음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가신 좁은 길을 따라가는 복된 자녀 되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잠 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프랑스 독립군이 오랜 전투 끝에 독일군을 몰아내고 마침내 프랑스를 탈환했을 때의 일입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샤를 드 골(Charles de Gaulle) 장군은 나라를 되찾자마자 
가장 먼저 나치에 협력했던 부역자들을 색출했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나라를 팔고 동포를 밀고한 사람들에게는 가차 없이 사형이 선고됐습니다.

그런데 로베르 브라실락(Robert Brasillach)이라는 남자의 판결을 두고는 국민들끼리도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민중 신문의 편집장이었던 브라실락은 수려한 말솜씨로 사람들을 설득해 
많은 사람들이 나치를 따르고 유대인을 핍박하는 일에 동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솜씨가 워낙 천부적이었기에 ‘나라를 위해 일할 기회를 주도록 용서해야 한다’라는 의견과 
‘부역자는 똑같이 처형해야 한다’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습니다.
결국 로베르는 프랑스의 철학자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인해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의 재능은 아깝지만 글이 가진 무서운 힘에 경각심을 울려야 합니다.
그의 말과 글은 수용소의 독가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도구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사용하는 말을 사람들을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사랑과 진리의 도구로 사용하십시오. 아멘!!!

주님, 사람을 해치는 말은 입에 담지도 않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오늘 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나 손해가 되었는지 뒤돌아봅시다. <김장환, 나침반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