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꼭지는 평론(촌평)과 신인작품이지만, 나에게 쓰는 편지는 제목이 맘에 이끌려 읽게된다. 수필은 자기고백의 문학이라고 하는데, 나에게 쓰는 편지는 일상의 내밀한 자기고백과 반성이 과거, 현재의 이야기와 맞물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수필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60호에 실린 안규수님의 <정글은 말이 없다>는 베트남에 가족 여행을 갔던 필자가, 젊은 날 베트남 파병의 기억을 떠올리며 쓴 글이다. 전후세대인 나로서는 6,25나 월남전에 관해서는 생소한 부분이 많다. '국제시장' 영화를 보고 아버지세대를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국가적 명분이나 역사앞에 희생된 가족의 비극이 때론 슬프게 느껴지면서도 왜 저렇게 살아야만 했을까?란 의문과 답답함이 들기도했다.
<정글은 말이 없다>에서도 필자는 지긋지긋한 전장에서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란 깊은 회의를 느끼면서 어떻게든 살아나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홀어머니와 젊은 아내, 태어나 아빠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아들과 상봉하기위해 전장에서 살아남으려 애쓴 흔적이 글 곳곳에 묻어난다. 그시절 그곳에서 '가족'은 고통을 이겨내는 유일한 희망이자 생을 추동하는 힘이었노라고 필자는 고백한다. 전장의 최일선, 악명높은 K계곡에서의 전투나 동향출신 K중사의 안타까운 죽음은 필자에게 결코 잊혀지지않은 기억이자 이 글의 화두였을 것이다.
죽음의 문턱, 꿈에 찾아오신 아버지와 온기없는 방에서 주무시며 아들을 위해 기도했던 어머니, 편지를 보냈던 아내와 태어나 얼굴한번 맞댄 적없는 어린 아들은 그의 생을 지탱하는 힘이자 살아가는 이유였을 것이다. 필자는 작전이나 매복에서 별이 총총한 밤하늘의 남십자성을 올려다보며 어머니와 아내를 그리워했다.
젊은 시절 처절한 전쟁의 흔적이 말끔히 지워져버린 투이호아, 그곳에 반세기가 넘어 다시 섰을 때 필자의 소회,감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투이호아, 산하는 옛 모습 그대로인데 그 옛날의 흔적은 모조리 사라지고 백마부대 28연대가 주둔한 허허벌판에는 신도시가 들어서 있었다. 이곳에서 수많은 우리의 전우가 죽어나갔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들의 죽음을 기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투이호아, 처절한 전쟁의 흔적은 이제 지워져버렸다. 강과 정글은 아무 말 없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검푸른 빛만 토해내고 있었고, 눈부신 햇살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그리고 해조음과 끼룩이는 갈매기 울음소리는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정글은 말이 없다>는 베트남의 깊은 정글(말이 없는), 그 침묵의 공간을 자신이 젊은 시절 경험한 가슴아픈 전쟁의 기억으로 오롯이 되살려 냈다. 죽음의 사지였던 전장의 최일선에서 연대본부로 전출되기까지의 사정을 얘기하는 게 쉽지않은 고백이었을 터, 후방에서 포탄속에 죽어갈 전우들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나만 살겠다고 그곳을 빠져나온 자신이 한없이 비굴하게 여겨졌다고 적은 부분은 필자의 고민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전쟁을 온 몸으로 겪은 이가 전장에서의 기억들을 카메라로 찍듯 글로 포착?해내는 일이란 분명 쉽지않은 선택이자 결심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오랜 상처를 후벼파는, 다소 무모한 노동을 왜할까? 그러면서도 힘든 글쓰기를 그만둘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정글은 말이없다>를 찬찬히 읽다보니 아파트 뒤뜰, 자목련의 핏빛 아우성이 전장의 울부짖음처럼 내 귀를 후벼파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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