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수의 <힘내라, 강아지>는 좁다. 글의 범위가 지극히 한정되어있다는 말이다. 수필을 쓸 때 등장하는 인물의 수와 다루는 공간의 크기나 다양함에 의하여 글의 범위가 정해진다. 예를 들어 세계일주를 하고 기행수필을 쓴다면 공간적 범위는 상당히 커질 것이고, 이야기에 동창생들을 등장시킨다면 인물이 여럿인 만큼 글의 범위가 넓어진다. 넓은 만큼 독자들이 피로해 진다.
<힘내라, 강아지>는 그런 점에서 아주 좁다. 등장하는 사람은 글쓴이 이외에 손자 지승이다. 이 글이 재미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승이의 어릴 적 힘든 이야기를 할 때 으레 나올 법한 엄마 아빠의 이야기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으며, 외고 진학이야기에도 담임선생의 이야기를 한마디 정도로 축약하고 있다. 그 오랜 세월 아이를 길러내는 동안에 할머니와 얽힌 에피소드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마는 모두 생략했다. 작가와 지승이만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신이 느껴온 감정과 소회를 나긋나긋 이야기하고 지승이와의 대화를 한껏 부각시키고 있다. 이렇게 좁디좁게 배경 설정을 하고 초점을 극대화 시킴으로써 읽는 사람들이 강아지에 몰입하게끔 만들고 있다.
이 작품은 넓다. 독자를 끌어안는 품이 넓다는 말이다. 요즘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사회문제 중의 하나가 자녀 양육이다. 이 글은 몸소 겪은 손자 키우기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적어도 대한민국 50대 이상 수많은 독자들의 시선을 잡는다. 누구에게나 조만간 닥칠 수 있는 소재다. 그래서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손자 사랑의 세세한 표현들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진손자건 외손자건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 하나를, 아니 인간 한 명을 의젓하게 길러낸다는 것은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고등학생이 되어 이제 “새처럼 둥지를 떠나 날개를 퍼덕이며 창공을 날아야”하는 강아지는 그래서 우리 많은 이들의 강아지인 것이다.
<힘내라, 강아지>가 넓은 이유는 또 있다. 작가는 강아지를 데리고 베트남에 간다. 작가“자신의 젊은 시절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던, 전장”의 모래언덕에 앉아 과거를 들려준다. 작가는 그 시절을 자신 있게 정의하지 못하나, 지승은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묻는다. “할아버지가 왜 이 먼 곳까지 와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해? 왜?”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던가?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가 확장된다. 작가에게 지승은 “둘도 없는 친구다.”
손자이야기를 할 때 ‘내 손자가’, ‘그 애는’ 이라고 하지 않고 ‘그’라고 칭하고 있는 점도 이 수필을 넓히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좁고도 넓은 <힘내라, 강아지>를 흥미롭게 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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