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육이오까지 좌우의 대립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특히 육이오 전쟁 중에 사망 실종된 민간인은 남북 합하여 170만 명인 반면 군인의 희생자 수는 70만 명 정도라 한다.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 않은 민간인이 왜 더 많이 희생되었을까? 인간의 ‘복수심’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좌익 빨치산이나 우익 토벌대에 의해 가족이 희생되면 살아남은 자들은 상대방 측 가족을 해친다. 이념이고 뭐고 없다. 추악한 복수심만이 칼춤을 춘다.
‘손가락 총’은 차가운 쇠 덩이 총보다 더 무서웠다. 해방 후 육이오동란까지 좌우의 극한 대결이 있는 곳에서는 이 ‘손가락 총’이 등장했다. 좌익이 어느 지역을 장악하면 지주, 자본가, 군경가족을 해쳤다. 우익이 장악하면 반군 가담자나 그 가족과 자의든 타의든 부역자들을 해쳤다. 다수의 희생자들은 이념이나 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른 체 죽어갔다. 좌우 각각의 지휘관들이 희생 대상자들에게 손가락 총을 겨누면 그 사람들은 정식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되었다.
대문 밖에는 붉은 완장은 찬 낯선 청년들이 서 있었고 (중략) 아버지가 끌려간 곳은 읍내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는데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끌려와 있었다. (중략) 거기서 붉은 완장을 찬 젊은이들에게 손가락 총을 당하면 곧바로 끌려 나갔다. (중략) 인민재판이 시작되고 (중략) 이렇게 한 사람을 처리하는데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선고가 끝나자 사람들은 곧바로 굴비 엮듯 묶여져 소화다리로 끌려가 그 길러 모조리 총살당했다. ……………………
이번에는 진압에 성공한 토벌군과 경찰들에 의해 똑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경찰들은 반군에 가담한 자들과 죄 없는 그들의 가족을 죽였고 자의든 타의든 부역했다는 죄목만 붙으면 누구든 가차없이 처단했다.
안규수의 「손가락 총」은 1948년에 일어나 수천 명이 희생된 여수순천사건(예전 여수순천반란사건의 명칭 변경)을 배경으로 한다. 화자의 아버지는 지주는 아니지만 약간의 땅을 가지고 머슴을 둔 부농이었다. 그런 관계로 반란군들은 아버지를 끌고 갔지만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손가락 총’을 맞지 않고 무사히 풀려났다. 화자네 집 머슴살이하다 둘째 누나와 혼인한 둘째 매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란군들은 화자의 둘째 매형이 반군에 가담하지 않았다 하여 ‘부르주아 반동분자’라는 죄목을 걸어 죽창으로 무참히 살해한다. 전란이 끝난 지 2년 후 아버지는 한 달 여 산을 뒤져 썩다 남은 옷가지와 금니 두 개만 남고 육탈된 화자 매형의 시신을 발견한다. 이때부터 화자의 둘째 누나는 정신이상에 걸리고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가족을 죽인 원수는 불구대천지원수다. 좌익 반군에 의해 사위가 살해 당하고, 딸마저 그 후유증으로 젊어서 죽었으니 아버지가 겪은 슬픔과 분노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지인이 들은 말에 의하면 여순사건 당시 반군에 의해 가족이 희생된 어느 경찰은 분노와 복수심에 반군 가족과 자의든 타의 든 부역한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했다고 한다. 화자의 아버지도 반군이 물러난 후 복수의 칼을 들었을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놈(남) 탓할 것 없어, 모두 다 내 탓이제” 라며 문드러진 가슴을 술로 대신한다. 좌익 반군에 대한 분노도 표출하지 않는다. 이런 아버지를 화자는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를 통해 당시 이념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민초들의 삶의 질곡을 정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분노보다 체념을 익혀야만 하는 것은 힘없는 민초들의 생존법인가. (중략) 오직 침묵과 체념만이 그나마 남은 가족을 지키고 당신의 목숨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셨지 싶다. ....
이 전란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그들의 죄목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죄란 무엇이었을까? 무자비한 총과 폭력 앞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나약함이 죄였을까? (중략) 사상과 이념 따위는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이념의 파고는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거나 삼켜버렸다.
화자는 좌익 반군에 가족이 희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 편향적 왜곡된 역사인식을 지니지 않는다. 가족의 억울한 희생에 복수심도 표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익 토벌대에 의해 무고한 양민들이 무차별로 희생된 사실을 지나치지 않는다.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균형적인 감각을 지닌 것이다.
또한 화자는 당시 이념이나 사상도 모르는 농민들이 어떻게 반군에 가담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도 설명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중도가 방죽을 건설하며 완공되면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소작권을(소유권이 아님) 우선 준다고 하였으나 해방 후 힘 있는 지주가 그 땅을 가로챘고, 항의하는 농민들은 투옥까지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좌익 반군이 들어와 농지를 분배한다고 하자 농민들은 그들에게 가담하게 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과 친일 지주로부터 토지를 강탈 당하고 수탈을 당하던 이 땅의 농민들에게 해방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미 군정청에서 남한의 통치 효율성을 이유로 친일파들을 그대로 국가 기관에 기용하였다. 또한 지지기반이 약했던 이승만은 세력 구축을 위해 친일세력을 규합하여 권력을 장악한다. 이 때 김구선생의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 체포권한이 있는)는 이승만과 친일세력에 의해 무력으로 강제 해산되어 남한에서는 반민족 친일세력 청산이 실패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 영향이 내려오게 된다. 친일파가 기득권을 유지하게 됨으로써 남한의 토지개혁은 실패하고, 농민들 대다수는 소작농 상태에서 여전히 수탈당함으로써 그들의 삶은 일제 강점기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
화자는 하나의 사례를 들어 당시의 시대상과 균형적인 역사인식을 내보인다. 가족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이 글 「손가락 총」은 화자 가족의 비극을 감정적으로만 기술하여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실적으로 기술함으로써 독자에게 직접 다가갔고 당시 상황에 대한 화자의 언급에 신뢰를 부여한다. 이 글에서는 당시 혼돈 상태의 극심한 이념 대립과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좌우의 무법 행위, 남한 내 친일세력의 기득권 유지 및 토지개혁 실패라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이념의 틈바구니에서 좌우 모두에게 짓밟히는 힘없는 민초들의 아픔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무력이라는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 자행된 인간의 비이성적 잔인성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글은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하여 단숨에 마지막까지 읽게 하는 소설적 재미 요소가 풍부하다. 또한 서사적 수필이면서도 중간에 서정적 표현이 여러 곳 있어서 자칫 메마르기 쉬운 글의 흐름을 순화시킨다.
필자는 감히 말한다. 여순사건에 관한 그 어떤 수필도 이보다 나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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