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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이의 꿈너머 꿈

아빠의 등

by 안규수 2015. 4. 21.

아빠의 등

 

팔마중학교 3학년 718

하지승

 

  아빠의 등은 산골 다랑이 논만큼 널찍하다. 토요일이면 아빠와 나, 동생 경민이와 셋이서 동내 목욕탕에 간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마주 앉아 서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아빠의 등을 좋아 한다 아빠의 등은 우리 가족의 든든한 안식처이자 우리가 마음대로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우리들과 목욕탕에 가는 것을 무척 좋아 하신다. 그때마다 아빠는 사춘기의 내 몸을 바라보면서,

   “내 아들이 벌써 이렇게 많이 컸구나!”

   하시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신다. 또한 아빠는 내 등을 밀어 주시면서 덕담을 해 주신다. 나는 그럴 때 마다 아빠가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또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알몸 대화 시간의 말미에 꼭 빼놓지 않고 해주시는 말씀이 있다. 남자는 모름지기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꿈은 비행기조종사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라 중국, 일본, 태국, 베트남 등 해외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새처럼 푸른 하늘을 훨훨 난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또한 다른 나라의 풍물을 구경하고 견문을 넓혀 가면서 자연스럽게 비행기조종사가 나의 장래 꿈이 되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목욕탕 알몸대화 시간이었다.

   “아들아, 가고 싶은 고등학교를 정하는 건 나중의 일이고, 지금은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공부는 실속이 없다. 그러니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너의 실력이 상위권에 들면 그때 가고 싶은 고등학교를 너 마음대로 갈 수 있단다.”

   나는 그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의 내 공부 방식은 높은 점수를 받아서 아빠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였고 공부를 하는 척을 했기 때문이다큰아빠도 메일을 통해 공부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아빠도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그 말씀을 듣고 뼈저리게 반성 했다. 이대로 공부 했다가는 나의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굳게 결심 했다. 실속 있고 알찬 공부를 하겠다고. 아빠의 말씀대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가끔 목욕탕에서 셋이서 스무고개를 한다. 아빠가 문제를 내 주시면, 우리가 답을 맞히는데, 아빠가 내는 문제는 고난이도라 맞히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마다 아빠는 그 큰 손바닦으로 엉덩이를 철썩 때리시면서 웃으신다.

   언제인가 목욕탕에서 늙으신 노인이 아들과 함께 들어오셔서 때를 밀고 있었다. 노인은 병환 중이 신지 몸이 바싹 말라 피부가 뼈에 붙여 있었다. 아들은 노인의 몸을 정성으로 씻겨 드리면서 눈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내 마음이 아팠다. 사람이 늙으면 저리 되는 구나 생각도 했다. 늙은 아버지를 대하는 아들의 지극정성을 보고 효도란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는 우리 아빠도 저렇게 늙으실 것이다. 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마음이 울적해 지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우리 아빠는 늙지 말고 지금처럼 젊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나는 아빠의 넓은 등을 바라볼 때마다 기분이 참 좋다. 아빠의 등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소나무와 푸른 숲, 그 속에서 새들도 지저귀며 놀고 있다. 그 숲 아래 아담한 우리 집이 있고 엄마와 나, 경민이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또 숲에는 나의 꿈도 그려져 있다. 장차 내가 조종할 비행기다. 나는 가끔 그 비행기에 올라가 세계를 누비는 꿈을 꾸다 내려온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 밤낮 쉼 없이 일 하시는 아빠는 아직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해 보셨다. 내가 비행기 조종사가 되면 아빠 엄마를 모시고 5대양 6대주를 마음껏 여행할 것이다.

  아빠와 함께 목욕탕에 가는 일도 앞으로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가족과 헤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공부를 게을리 해서 나의 꿈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아빠의 등이 무거워질 것이다. 그러니깐 나의 효도는 반드시 내 꿈을 이루어 아빠의 등을 가볍게 해 드리는 것이다.

   나는 아빠와 이야기 할 때가 제일 좋다. 이상하게도 나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계시는 아빠는 그때그때 나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말씀을 주시고 이끌어 주신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나의 스승은아빠. 그래서 나는 아빠를 닮고 싶다.

   돌아오는 토요일에도 목욕탕에 가서 하늘처럼 넓고 높은 아빠의 넉넉한 등을 밀어 드리면서 가만히 아빠 귀에 속삭일 것이다.

   “아빠, 사랑해!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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