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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질그릇에 담긴 보배

by 안규수 2015. 9. 5.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어제 베트남은 국경일로 휴무일이어서 아침 나절에는 지인들과 테니스를 

그리고 남은 시간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면서 에너지를 듬뿍 충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은 유기성 목사님의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자>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0^ 


제 자신에 대하여 깊은 좌절과 실망, 열등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나는 언제 변할까?’ 

그런데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면서 이 생각이 매우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원래 질그릇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주여,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고백하고 인정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질그릇 같은 존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보배이신 주 예수님께서 임하셨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7)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이 보배를 가진 사람의 얼굴이 아닙니다. 

마음도 말도 행동도 보배를 가진 사람 같지 않습니다. 

질그릇 같은 자신만 바라보지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짜장면을 먹을 때 짜장면을 보나요, 그릇을 보나요? 

보석이 담긴 상자를 받았을 때 보석을 보나요, 상자를 보나요? 

날에는 돈을 신문지에 싸 가지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때 신문지를 보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습니까? 

신문지에 싸였어도 그 속에 든 돈을 보지 않겠습니까? 


CCM 작사가 박용주 씨는 《질그릇에 담긴 보배》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자신에 대한) 무력감은 그리스도를 붙잡는 재료이다. 

무력감은 느끼기 싫지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그리스도를 의지한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이끄신다. 


우리가 질그릇 같아서 문제가 아니라 질그릇 같은 존재임을 몰라서 문제이다. 

애굽 왕자 모세는 자신의 힘과 열정으로 동족들을 구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러나 그는 살인자로 광야로 도망가야 했다. 하나님께서 힘을 빼신 것이다. 


광야에 내모시고도 하나님은 여전히 모세에게 지나치게 힘이 들어갔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40년 동안 그대로 두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다시 부르셨을 때,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 


40년 광야 연단은 오직 모세로 하여금 자신이 질그릇 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필요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대답하신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께는 자신이 질그릇인 줄 몰랐던 왕자 모세는 필요 없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는 모세가 필요했다. 

영웅 모세는 필요 없다. 주님만 바라보는 모세가 필요했다. 

님의 이름만 내세울 수밖에 없는 이름 없는 모세가 필요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으로 충분한 모세를 하나님은 기다리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질그릇 같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이 질그릇 같기에 더욱 주님만 바라보게 되었다면 오히려 기뻐할 일입니다.

‘너무 약하고 악한 나’이기에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십자가 복음이 기쁨이 되고 24시간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출 33:15)

라고 고백한 것처럼, 주님과의 동행에 전심을 쏟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금강석이 되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담은 질그릇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질그릇을 보배로 만드시겠다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질그릇 안에 보배로 임하셨습니다. 

보배이신 주 예수님께서 질그릇 같은 우리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 안에 임하여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질그릇으로 살면 됩니다. 

자신이 보배로 변화되지 않는다고 부끄러워하고 탄식하고 좌절하지 말고 

오직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보배이신 주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보배이신 주님을 바라보면 좌절하고 절망할 상황에서도 우리 영은 기쁘고 감사하고 희망이 넘치게 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 요한복음 15장 4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 고린도후서 4장 7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히브리서 12장 2절


약할 때 강함 되시는 보배이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삶이 늘 기쁘고 평안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날마다 묵상함으로 내안에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세계 최대의 금융그룹인 JP 모건의 창업자 피에폰트 모건은 유언장을 미리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의 유언장은 약 37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계시장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대형 금융투자와 중요한 증권거래 몇몇에 대한 이야기도 적혀 있습니다. 

그중에 31번째 항목에는‘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거래’라는 제목이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 손에 있음을 나는 믿는다. 그가 나를 구원해주시고 보혈로 죄를정결케해주신것을믿는다. 

그로인해 내가 죽고나서는 한점의 부끄러움도없이 하나님앞에 설수 있게될 것이다. 

내후손들에게 주님을 믿는 것은 어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걸어볼만한 투자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그룹을 창업하고, 

많은 돈과 존경을 받은 금융인에게도 예수님을 믿는 것은 가장 중요한 거래였으며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거래였습니다. 

실상 그 거래는 거저 받는 은혜이기 때문에 거래라고 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귀한 은혜는 거저 받는 것이지만 가장 귀한 큰 복임을 믿으십시오.  

주님, 구원이라는 인생 최대의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소서. 

구원을 허락하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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