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은 팻 쉐츨라인의 <남은 자> 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절망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거짓 신앙들이 세력을 확장하고, 거짓 교사들이 대중의 신임을 얻으며, 정말로 많은 것들이 기독교 신앙인 것처럼 가장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들 중에는 죄의 자각이나 회개가 전혀 필요치 않다고 가르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은혜를 잘못 이해하여 남용하는 시대, 그리스도인의 ‘정결함’을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으로 간주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교회 지도자들이 영적인 아버지로서의 축복을 사람들에게 베풀지 못하면서 권위와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교회 성장에 대한 기업적인 접근이 사도들이 본래 보여주었던 모습들을 가려버린 시대,
교회가 세상 문화와 관련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과 죄를 자각시키지 않는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진리를 대체한 시대이다.
그러나 이 모든 말을 당신에게 하는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은 엄청나게 흥분되어 있다.
왜냐하면 오늘이 정녕 절망적인 시대라면 우리가 대각성을 위한 적절한 지점에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절망은 언제나 이적이 태어나는 장소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는 작은 무리들,
즉 다른 사람들이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무자격자들을 역사 전반을 통하여 일으키셨다.
그리고 현재 순간이야말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사람을 이끌 때라는 것을 깨달은 그들을 ‘그때 같은 때’를 위하여 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남은 자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옛날 히스기야 왕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면 오늘 우리를 위해서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 히스기야 시대에 남은 자들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구하신 것처럼
오늘도 남은 자들을 일으켜 우리 시대를 구해달라고 울부짖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관계를 끝내지 않으셨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제 마음에 들어와주세요!”라고 하나님을 초대할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예수님이 지금 우리 마음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예수님은 교회가 예수님을 맞아들이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은 많은 것들을 의미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말씀이 교회를 향해 전례가 없는 강력한 방식으로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데로 돌아오라고 촉구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라고 말했다.
사실 바울은 오늘날과 대단히 유사한 시대에 살았다.
당시는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거부하고 인간의 철학을 따르기로 결심한 때였다.
시인들은 쾌락주의와 인본주의를 기분전환용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정설과 진리로 간주하여 청산유수로 쏟아냈다.
또한 그때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제국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박해와 순교를 당하는 대단히 위험한 시대이기도 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누구나 확실한 고문과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A.D. 33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7천만 명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인하여 순교를 당해왔고,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크신 뜻을 위해 죽고 있다고 한다.
위의 로마서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약의 교회와 오늘의 우리,
곧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여러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하나님의 레이더망에 잡혀 있다.
우리는 은혜로 선택된 남은 자들이다.
나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강력한 몇 마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잘 알고 있고 또 그것에 늘 놀라곤 한다.
따라서 당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나는 남은 자인가?
그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기를 소망한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 마태복음 22장 14절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사도행전 20장 24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 로마서 11장 4, 5절
나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신 주님 앞에 문을 열고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온전한 믿음과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자녀 되게 하소서.
당신은 죽기 위해 사셨고,
홀로 배척 당하셨습니다.
땅에 짓밟힌 장미꽃처럼
당신은 쓰러짐으로써,
그 무엇보다 먼저
나를 생각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게리슨 케일러 소설‘워미곤 호숫가 사람들’에는 지금말로‘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뜻의‘근자감’을 가진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 소설의 배경인 워미곤 호숫가 마을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이 남보다는 잘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잘생겼어. ”
“그래도 내가 여기 사람들보다는 머리는 좋지. ”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내 인생이 제일 행복할거야. ”
비록 소설 속 이야기지만 남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 내세울 생각에 빠져있는 이런 마을이 제대로 돌아갈리 없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소설의 내용은 일정부분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 증거로 우리 주변에서도“나는 정상인데 저 사람이 잘못한 거야. ”,
“나 정도면 평균 이상은 되지. ”,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 ”등등의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결국 심리학자들은 막연히 내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다고 결론을 내렸고,
이런 현상을 소설의 이름을 따서‘워미곤 호수 효과’라고 명명했습니다.
내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게 세상의 사고방식이고,
남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게 성경의 방식입니다.
세상의 방식은 교만이자 패망이고 성경의 방식은 겸손이자 성공입니다.
오늘도 모든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의 사람이 되십시오.
주님,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사람보다 하나님을 낫게 여기게 하소서.
사람들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나 지나친 자랑은 삼가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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