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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서평 글쓰기 요령

평범한 바위가 빚어낸 심안의 노래/이명진

by 안규수 2016. 6. 6.

이광수 / 금강산 기행 평설

 

평범한 바위가 빚어낸 심안의 노래

                                                                                            이명진

 

 

  운무가 뿌연 산등성이다.

뒷짐을 지고 천천히 산을 오른다. 서너 걸음 앞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쉬기를 반복한다. 묵묵히 사방을 둘러보는 시선에 나무 이파리가 휘리릭 날리는가 싶더니, 기암절벽이 흠칫 발을 멈추게 한다. 간혹 안경에 서린 습기를 닦느라 헛기침도 내 뱉는다.

  이광수(1892~1950, 평안북도 정주 출생)<금강산 기행> 서두를 읽다보면 위와 같은 정경이 그려진다. 이광수는 불운의 시대를 살아 냈던 지식인이요, 천재적인 작가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보다 문화 양상이 바뀌고, 삶의 스타일도 바뀐 요즘, 사람들은 자주 산을 찾는다. 산행을 즐기는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산은 항상 제 자리를 떠날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의 <금강산 기행>은 지금까지 기행수필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회자 되고 있다. 우리는 간혹 기행문과 기행수필을 혼돈 하며 글을 쓴다. 기행문은 있는 사실에 대한 기록에 멈추어 있는 반면, 기행 수필은 작가의 감상이 많은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 기행수필이 문학이 되자면 문학이 갖추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문학은 사상과 감정을 문자로 표현한 예술이다. 기행수필 또한 사상과 감정을 갖추어야 한다는 이유로 문학의 범주 안에서 인식 되어져야 한다. 수필은 재료 자체를 만들어 가는 입장이라기보다 있는 재료 즉, 실제 상황을 활용하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직관이나 지성에 의존할 뿐, 타 장르처럼 상상력에 의존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그런 까닭에 더욱 세심한 상상력의 밀도와 파장이 작품의 내면에 깔려야 할 터다. 앞으로는 역동적 상상력에 의한 정서의 구체화가 기행수필의 문학성을 담보하는 하나의 단초가 되어야 하겠다.

  이런 의미를 염두에 두고 <금강산 기행>을 일별하다 보면 한 작가의 정신세계와 그가 추구하는 의식의 깊이에 천착하게 된다. 위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로서의 운무와 배바위는 여러 의미를 상징한다. 배바위는 조국이 처한 암담한 현실에 대한 자기 나름의 소신이라 할 수 있겠다. 운무는 어지러운 세파에 대한 갈등하는 작가의 마음과 같을 수 있다. <금강산 기행>은 수필이 가지고 있는 상징이나 형상화 기법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이광수라는 지식인이 금강산을 오르며 느낀 단상보다는 산을 오르게 된 배경과 산을 즐긴 동기가 무엇인지 관심 갖는 일이 중요할 듯싶다. 그렇게 새로운 시각으로 한 작가의 심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인간 이광수에 가까이 접근 할 수 있다.

 

  바위는 아주 평범하게 생겼습니다. 기묘한 산령山嶺에 어떻게 평범한 바위가 있나 하리만큼 평범한 둥그러운 바위외다. 평범 말이 났으니 말이지 비로봉두毗盧峰頭 자신이 극히 평범합니다. 밑에서 생각하기에는, 비로봉이라 하면 설백색의 검침檢針 같은 바위가 하늘을 찌르고 섰을 것같이 생각되더니, 올라와 본즉 아주 평평하고, 흙 있고 풀 있는 일편一片의 평지에 불과합니다.

                                                   - 이광수의 <금강산 기행> 중에서

 

   위의 작품은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 중 최고봉인 비로봉을 오르며 느낀 단상을 객관적 묘사로 표현한 글이다. 운무가 가득한 산세에 우뚝 솟은 배바위는 일제 강점기에 나라 잃은 설움과 지식인으로 살아내야 하는 심적 괴리감을 위로 받을 수 있는 한 지평일 터였다. 배바위는 그 모양이 배와 같아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동해에 다니는 배들이 높이 솟은 배바위를 보고 이정표로 삼았다는 점에 연유한 이름이다. 그 바위로 인해 해마다 수 천 명의 생명이 살아난다는 점에 이광수는 탄복한다. 힘없는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심정을 뚝심 있게 버티고 서 있는 바위를 보며 그는 삶의 질긴 고리를 느꼈다.  

  우리 선조들은 금강산을 마음의 성지로서 숭배해 왔고, 당대의 문인 시객 치고 금강산을 노래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근대 서사문학의 ‘문체’와 ‘규범’을 정착화 시켰다는 춘원 이광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금강산 기행>1922년 문예지 《新生活》에 연재한 것으로 1924년 시문사時文社에서 단행본으로 처음 출간했다. 이광수는 소설, 평론 등에서와 마찬가지로 기행문에 있어서도 신문학新文學의 개척자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배바위의 평범함을 보고 ‘위대한 덕을 가진 바위’라 칭송함은 마음 속 깊이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아니면 자신도 그런 등대와 같은 이정표 역할을 하고 싶은 심정이 더 요동 쳤기 때문 일 수도 있다. ‘창해에 가는 배의 표적이 된다 하니, 아마도 성인의 공이 이런가 하노라’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광수가 기대고 싶은 또 다른 중심축이 배바위에서 풍기는 평범한 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비로봉두에 서서 사면을 돌아볼 때의 감동이 ‘천지창조를 목격한 것과 같고, 신천지의 제막식을 본 것과 같다’고 외칠 수 있지 않았을까. 개화·식민지 시대의 선구적인 작가이자 지식인으로서 한국 근대문학사와 정신사 전개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그가 금강산에서 ‘부유 같은 인생으로 못 뵈옴이 한’이라 탄식 하는 데는 남모를 고통이 가슴 속에 내재 되어 있다는 증거다. 그의 계몽주의 문학과 사상은 여러 가지 한계와 미숙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근대적이던 당대 사회관습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바른 역사의식 결여로 친일의 과오를 범했고, 그가 가지고 있는 사상의 관념성과 단편성으로 대중에 대한 사고의 합리화를 이루지 못한 부분이 평생 자신을 성찰해야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진실로 대자연大自然이 장엄莊嚴도 한저이고 만장봉萬丈峰 섰는 밑에 만경파萬頃波를 놓단 말가. 풍운風雲의 불측不測한 변환變幻이야 일러 무삼하리요.                           - 이광수의 <금강산 기행> 중에서

 

    기행수필의 문학성은 결국 수필다움에서 비롯된다. 수필이 고백적, 서정적, 철학적, 사색적, 비평적이라 하더라도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결국 가장 인간적인 글이 되지 못한다면 수필로서 의미가 없다. 문학의 쾌락적인 기능과 교시적인 기능을 유기적, 종합적으로 펴 나갈 때 기행수필문학의 진정한 가치가 전달된다고 여겨진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금강산 기행>은 이광수를 가장 인간답게 평가 할 수 있는 작품이 된다.

 

  대자연이 주는 장엄함 앞에 인간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진다. 금강산은 천하에서 제일 아름다운 산이며, 또한 철 따라 불리는 이름도 다르다.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봄은 푸른 새싹과 각양각색의 꽃으로 뒤덮여 그 아름다움을 이루 형언할 수 없어, '금강'이라 했고, 여름은 일만 이천 봉의 봉우리와 신비의 계곡에 짙은 녹음이 어우러져 그 광경이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하여 '봉래蓬萊'이다. 가을은 만산홍엽 오색단풍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하여 '풍악楓樂'이라 했고, 겨울에는 낙엽이 떨어진 뒤, 기암괴석과 금강산의 옷 벗은 모습의 뼈를 보는 듯해, '개골皆骨'이라 불린다. 금강의 유래는 법어인 바이아라Vaiara로 단단하다는 뜻이며, 사전적 의미는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지덕이 견고하여 일체의 번뇌를 깨드릴 수 없음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화엄경에 금강산을 "동북바다 건너에 일만 이천 봉이라는 담무갈 보살들이 머무는 곳"이라 했고, 불전에서는 "천상에 일만 이천 봉 열락정토가 있다"하여 금강산을 극락정토淨土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장엄하고 웅장한 금강산에서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지닌 이광수는 자연 풍광이 주는 신비로움보다는 그 속에 감춰진 자신의 속내를 발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국의 안위를 걱정 하면서도 자신과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비애가 차고 넘쳐 산을 즐겨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곳이 글의 소재가 되어 자신의 인생여정을 후회만 하기보다 편편이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 뜻은 아마도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지극히 평범한 바위를 덕을 가진 거룩한 바위로 인정하며 절세의 위인을 대하듯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 그가 <금강산 기행>에서 자신의 마음속 눈으로 바라본 자연에 대한 예의 일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