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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사랑의 존재

by 안규수 2016. 6. 28.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참 사랑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먼저 찾아가는 사랑~ 

모든 것을 아낌없이 풍성이 채우는 사랑~ 

그리고 바라보고 함께 하는 사랑~ 


바로 우리 주님의 사랑이 그렇지요~ 

저도 그런 사랑으로 세상으로 나아가길 소망해 보는 아침입니다.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조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도 이용규선교사니믜 <기대>라는 책의 일부(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0^


인도네시아에 와서 내 내면 깊숙한 곳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두려움이 남아 있음을 깨달았다. 

사역의 실패와 그로 인한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좌절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몽골에서는 나 혼자 모든 책임을 지는 사역을 한 건 아니었다. 

부총장이라는 직책은 사역자들을 돌보고, 어머니의 역할을 하면 되었다. 

그래서 학교 허가나 정부 관계, 학교를 대표해서 모임을 갖고 결정해야 하는 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사역의 궁극적인 책임을 스스로 져야 했고, 

함께한 사역자들이 나만을 바라보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내 사역이 실패로 끝나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후원해주는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줄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다.

내려놓음》에는 사역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내려놓아야 한다고 쓰고는 

내가 나눈 내용과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사역을 잘하고, 

사역이 순조롭게 전개되어 허가가 떨어지고, 

재정이 들어오고, 

사역자들이 늘어나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런 순간에 나는 기뻤다. 

그러나 그런 행복감은 상황이 바뀌면 금세 사라졌다. 


사역의 성취가 비록 하나님나라를 위한 것으로 포장되어 있더라도, 

내 자아와 밀착되어 내게 안정감을 주는 우상으로 작용하는 한 나를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환경이 아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구하면 우울함이 곧 사라졌다. 

내 사역의 성패와 무관하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만이 내게 유일한 안정감의 근원이 되심을 다시 한 번 고백했다.  

그분을 계속 신뢰할 수 있으면 

내가 무엇을 얼마만큼 이뤄놓았는가와 무관하게 나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하나님관점이 내 눈을 사로잡을 때 

비로소 그분께 눈이 멀어 상황이나 주변을 보고 흔들리지 않게 된다.  


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수치를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많은 것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내 연약함과 결핍이 다른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걸 두려워했다. 

이것은 내가 사역을 잘 수행할 때는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체질적으로 부끄러움을 타는 편이고, 잘 모르는 많은 사람과 함께 있는 걸 힘들어한다. 

집회 사역가면 사람들이 종종 나와 사진을 찍거나 대화 나누기를 원한다. 

그러면 나는 그들에게 ‘시골에 사는 아저씨’ 같은 사람을 굳이 특별히 봐주실 이유가 뭐가 있냐고 묻곤 한다. 

나는 스스로를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교만의 죄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내면 깊은 곳에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질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근원에는 내 성과와 성취에 의해 내 가치가 결정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이다. 

성과와 성취에 안정감의 근거를 두면 어느 누구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정체성과 정서적 안정감의 기초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두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무의식 중에 그들에게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려고 성취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다. 

그것이 내 불안의 진짜 이유였다.  


그러나 나는 어떤 존재이든지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이다. 

그분이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해주신다. 

그것이 내 정체성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지 이미 그분이 인정하고 사랑하시는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약한 것을 아시고 나를 도우실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다. 

그분 자신을 통해서만 내가 온전함에 다다를 수 있고, 

부족함 없이 만족감을 누릴 수 있다는 걸 아신다. 


그 사랑에 내 안정감의 기초를 놓을 때, 

내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더는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할 필요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 

나를 향한 그들의 평가가 어떠하든지 나는 그들을 도울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수 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잠언 29장 25절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46편 3~5절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장 10절


주님, 제가 아직 연약하고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저를 위해 죽으심으로 저를 향한 사랑을 확증해주심을 믿고 감사합니다. 

그 사랑에 저의 정체성과 안정감의 기초를 두기로 결단합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그들의 평가가 어떠하든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삶을 살게 도우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사 40: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수영선수가 꿈인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매일 고된 훈련을 하던 중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습니다. 

크게 실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고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익혀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강사가 되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강연과 간증을 했습니다. 

후에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자서전을 통해 그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휠체어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 나를 화가로, 강사로 서게 해준 것은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더욱 감사의 대상이 되셔야 합니다. 

나에게 일어난 수수께끼 같은 일들의 이유를 말씀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일어난 끔찍한 사고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일어난 일입니다. 

나는 미로에 빠져 갈 길을 몰라 당황하는 실험용 생쥐가 아니었습니다. 

내 고통 뒤에 하나님의 이유가 존재하는 것처럼 여러분이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심지어 그것이 고통일지라도 하나님은 이유를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내가 처한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은 동일하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뀝니다. 

더욱 더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세상의 모든 일들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소서.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드리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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