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김상권님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라는 책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아가길 소망합니다.
주님은 삭개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밝히신다(눅 19:10).
바로 삭개오가 잃어버린 자였다.
삭개오가 주님을 찾은 듯 보이지만,
사실은 주님이 삭개오를 찾으셨다는 말이다.
삭개오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 주님을 만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주님이 나무 위에 달리심으로 삭개오를 만나신 것이다.
삭개오가 주님을 자기 집에 거하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님이 먼저 삭개오 안에 유하시겠다고 말씀하심으로 삭개오 역시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삭개오는 틀림없이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아들이고,
18장에 등장하는 바늘귀를 통과한 낙타이며,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의 산 증거인 셈이다.
이 삭개오의 사건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유일한 구원자라는 사실을 너무도 명쾌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다.
주님은 이 구원을 ‘오늘의 구원’이라고 선포하신다(눅 19:9).
예수님을 믿어 얻을 미래적 구원이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의 구원이다.
삭개오와 같이 그대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바로 그 ‘오늘의 구원’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대에게는 이 ‘오늘의 구원’이 있는가?
내 언어를 바꾸고,
생각을 바꾸며,
행동과 삶과 습관을 바꾸어버릴 만큼 강력한 오늘의 구원이 그대에게는 있는가?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아직도 그대가 그대의 돌무화과나무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나무에서 내려오라. 내려옴이 만남이다.
그저 예수님을 관망만 하면서도 그것이 마치 내 신앙의 열심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내 인생의 돌무화과나무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 나무 위에 있는 이상, 결단코 예수님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다.
내려와야 예수님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에 우리의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달리신 모습이다.
그 수치와 조롱의 나무에 대신 올라가 달리심으로 우리에게 구원과 치유를 선포하시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
내려와야 보인다.
그 나무에서 내려오는 방법은 오직 말씀 그대로를 순종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
예수님을 관망하던 자리에서 이제는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전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내 인생의 절대 가치가 변하는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오늘 삭개오와 같이 아프고 외로웠던 그대 인생이
즐거이 그대의 돌무화과나무에서 내려옴으로 주와 함께하는 기적을 경험해보라.
예수님을 만나려고 열심을 내지만 잘되지 않는가?
그래서 힘겨운가? 그
대는 지금 자신의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있는 것이다.
다시 철저하게 말씀대로 순종하여 그 나무에서 내려오라.
나무 밑에 있어야 나무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진짜로 만나게 될 테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누가복음 19장 9,10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갈라디아서 5장 24절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 미가 7장 7절
저의 열심과 노력이 아닌 제 자신을 내려놓을 때 주님을 만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나를 위해 희생하신 십자가 사랑을 바라보며
기꺼이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딤후 2:6,7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독일의 공학자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태인을 대량 학살한 가스 기관차를 만든 사람입니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는 유태인 학살의 주요 용의자로 기소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았으나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습니다.
“저는 살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라에서 시킨 일을 제대로 완수했을 뿐입니다.
나라한테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닙니까?”
8개월 동안 이어진 재판을 보며 아이히만의 정신상태를 분석한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은
그가 지극히 정상이며 심지어 준법정신이 매우 투철한 사람이라고 평가를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아이히만의 처지를 이해해 동정론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재판을 끝까지 지켜 본 작가 한나 아렌트는 그가 명백한 유죄인 이유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의 투철한 준법정신과 근면은 유죄가 아닙니다.
그가 유죄인 이유는 자신이 하는 일이 초래할 결과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무능함이 가져온 근면과 성실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모두 한 번 보십시오. ”
“난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야”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때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최선을 위한 방법을 선택하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 할 것입니다.
주님, 의무여도 죄가 되는 행위를 하지 않게 하소서.
잘못된 일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아들의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 (0) | 2016.07.02 |
---|---|
그 배에서 뛰어내려라! (0) | 2016.06.30 |
사랑의 존재 (0) | 2016.06.28 |
기대 (0) | 2016.06.24 |
관계를 맺는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0) | 2016.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