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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필

금둔사金芚寺

by 안규수 2021. 10. 11.

 

  3월 초순쯤이었다. 불현듯 낙안 금둔사 납월 홍매가 보고 싶었다. 이때를 놓치면 또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길을 나섰다. 아직은 바람 끝이 매섭지만 부드러운 햇볕이 따스하다. 겨우 내내 얼었던 몸과 마음을 매향에 녹일 걸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가는 길목 낙안읍성민속마을에 들렸다. 이곳은 옛 성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성안에는 옹기종기 예쁜 초가지붕들이 동화 속의 마을처럼 아담하게 모여 있다. 과거와 현재가 동거하고 있고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풍경이 정겹다. 집마다 대를 이어 사람이 살고 있어 어릴 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큰엄마 친정이 성안에 있어 명절이면 찾았던 기억이 새롭다.

  이어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금전산 금둔사를 찾았다. 금둔사는 백제 위덕왕 30년에 담혜화상이 창건한 절로 정유재란 때 전소되어 긴 세월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혔다가 1983년 선암사 주지 지허 스님이 각고의 노력 끝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납월(臘月)은 음력 섣달을 말한다. 한겨울의 매서운 눈바람 속에서 꽃봉오리를 피워 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둔사 납월 홍매는 지허스님이 30여 년 전 낙안읍성 동헌 앞뜰에 심어진 수령 500여 년의 늙은 매화의 씨앗을 받아 여섯 그루를 경내에 심어 키운 나무이다. 안타깝게도 읍성 어미 고매는 씨를 남기고 몇 년 뒤 죽고 말았다. 읍성이 이름난 관광지가 되면서 수많은 사람의 발길과 소음을 견디기 힘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홍매의 붉은 빛이 경내에 가득하다. 법정 스님이 매화의 참 멋은 만개 직전 꽃망울이 한 잎 두 잎 막 피어날 때라 했는데 조금 늦게 찾은 듯싶을 정도로 만개한 꽃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납월매는 설중매의 혈통을 이어받아 음력 섣달 꽃망울을 머금기 시작하여 1월 초순부터 3월 초순까지 핀다. 경내를 가로지르는 계곡에는 지난겨울에 남은 잔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대웅전을 지나자 돌계단이 보이고 문이 닫힌 요사채가 보였다. 요사채 벽에 걸린 시 한 편이 눈길을 끌었다.

 

   찬 서리 고운 자태 사방을 비춰/뜰가 앞선 봄을 섣달에 차지했네

   개인 눈발 처음 녹아 눈물 어려 새로워라/그림자 추워서 금샘에 빠진 해 가리우고

   찬 향기 가벼워 먼지 긴 흰 창문 닫는구나!/내 고향 개울가 둘러선 나무는

   서쪽으로 먼 길 떠난 이 기다릴까?

 

  신라인 최광유가 금둔사의 매화를 읊은 시다. 이 시를 보면 그 시절에도 금둔사에 납월 매가 있었던 모양이다. 요사채 마루에 앉아 있으니 방문이 열리면서 스님이 나오셨다. 주지 지허스님이다.

  “어디서 오셨소. 낯이 익네.”

  “, 벌교가 고향입니다. 어려서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여학생 K가 생각났다. 공부도 잘하고 무용반에서 활동하는 아이였다. 3학년 봄 수학여행 때 일이다. 화엄사 사자 석탑 옆 요사채에서 일박하고 노고단에 올라 차일봉 아래 상선암을 거쳐 천은사로 내려오다 K가 갑자기 각혈하고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아깝게도 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는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고. K의 집이 벌교 부용산 용연사였기에 그를 따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그때 그곳에서 젊은 지허 스님을 만나 뵌 것 같다. 손수 차를 끓이시는 노스님의 모습이 신선 같았다.

  “천강월차(千江月茶). 천강월은 강마다 뜨는 달이란 뜻이지요.”

  “우리 전통차는 베넷 향이 나요. 베냇향이야 말로 차향 가운데서 꽃이지. 베냇향은 갓난아기를 막 목욕시켜 놓았을 때 그 몸에서 나는 향이라우. 차를 마실 때 그 향 맛은 그 생명력을 들이켜는 것이야. 이것은 초의선사 이래 지켜온 우리 차의 참맛이지. 그것은 곧 불교에서 말하는 선()입니다. 선이란 쉽게 말하면 사람의 성정 속에 잠자고 있는 생명력을 활성화하는 거야.”

  속인으로서는 어려운 말씀이다. 스님이 끓인 물을 주전자에 붓고 차를 집어넣은 다음 잠시 후 주전자의 뚜껑을 반쯤 여는 순간, 그 열린 틈으로 붉은 김과 함께 차향이 피어올랐고 그것이 방안에 안개 너울처럼 흘러 다녔다.

  “좋은 차를 만드는 데에는 오로지 정성이 최고의 밑거름이지. 매화는 한평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아. 그래   뼛속까지 사무치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는 코를 쏘는 매향을 얻을 수 없어. 차향도 마찬가지야.”

  지허(指墟) 스님은 선암사로 출가하여 50여 년 동안 다각(茶角, 절에서 차에 관한 모두 일을 맡은 스님)의 소임을 맡아 초의선사 이래 전통 차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고승이다. 금둔사는 절 주위에 넓은 차밭을 갖고 있다. 유리광전 아래 옛 야생차밭 2,000평이 있고, 일주문에서 선암사 쪽으로 300m 지점의 길 아래 9,000평의 야산에 선암사, 벌교 부용산 용연사, 금둔사의 차 씨를 심어 가꾼 지허 다원이 있다. 다원은 봄가을 두 차례 풀을 베어 깔아 줄 뿐 비료나 거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차밭에 비료나 거름을 주면 말라 죽어. 그게 자연의 순리이고 이치야. 그냥 자연에 맡겨 두는 것이 좋아. 사람의 발길이 닿는 순간 자연은 망가져. 그런데 말이야, 자연은 인간에게 당한 만큼 반드시 갚아줘. 사람들은 그걸 몰라 답답하지.”

  그간 인류의 역사는 농사를 시작한 신석기시대로부터 따져도 1만 년이다. 그중 자연과 인간을 대규모로 파괴하는 자본주의 삶의 양식은 100년 정도다. 1만 년 중 1%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 수십억 년 된 지구를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했다. 그 결과가 지금 인간이 당하고 있는 무서운 자연재해란 말씀으로 들렸다.

  일생을 산중에서 수행 정진한 노스님의 중생을 향한 조용한 외침은 무겁고 깊었다. 마지막 인간, 마지막 인류 - 생태계 파괴로 22세기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 김누리 교수의 글이 생각났다. 대웅전 뒤뜰 매화 향기가 바람결에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천강월차의 그윽한 향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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