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햇볕이 따갑다. 코로나로 숨 막히는 일상에서 무료함을 견디다 못해 책장에서 손때묻은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꺼내 들었다. 예전에 읽을 때 느낀 감흥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불현듯이 안개 자욱했다던 그 방죽을 걷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끼고 햇살이 한풀 꺾인 오후 4시쯤 집을 나섰다. 동천 풍덕교에서부터 순천만 갈대밭 방죽까지 걷기로 했다.
나는 동천 물길을 따라 걷는다. 잘 가꾼 꽃길이다. 달맞이꽃과 붉은 꽃양귀비가 활짝 피어 있고 코스모스도 한들거리며 나를 반긴다. 시간은 마음의 삶이라 했다던가, 동천은 도란도란 시간과 함께 흐르고 있다. 정원을 휘돌아 흐르는 것은 물만이 아니다. 능수버들 가지를 붙들고 한들거리며 춤을 추던 바람도 물길을 따라 흘러 간다. 천변을 서성이던 백로 두 마리가 날개를 펼쳐 허공을 가른다.
동천은 순천시 서면 청소리 송지봉에서 발원하여 순천만으로 흐르는 칠십 리 물길이다. 며칠 전 장마로 폭우가 쏟아지자 동천 둑을 무너뜨릴 듯 성난 물살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이렇듯 물은 조용히 흐르면서도 때로는 광란으로 변하기도 한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1962년 8월 사라호 태풍이 몰고 온 대홍수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 동천 둑을 무너뜨리고 매곡동 일대를 휩쓸어 무려 200여 명 목숨을 앗아갔다. 동천은 가슴 아픈 이 비극을 잊은 듯 오늘도 말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순천만 국가정원이다. 정문을 지나니 흑두루미 대형조형물이 꽃단장을 한 채 날 반기고 있다. 112만㎡ 넓은 정원에는 수만 그루의 나무, 봉선화 채송화 접시꽃 해당화 등 여름꽃들이 가득 피어 꽃 대궐이다. 이 지역은 순천만 국가정원이 들어선 이후 상전벽해라는 비유가 어울릴 만큼 큰 변화가 있었다. 모든 게 인공으로 만들어져 자연 본연의 순수한 모습은 아니지만, 예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록이 가득한 호수정원을 지나 습지로 이어지는 둑길을 걷는다.
순천만으로 이어지는 S자형의 곡선 둑길은 변함이 없다. 여전히 넉넉해서 강한 힘을 느낀다. 그 덕분에 굽이굽이 돌아가는 물길에는 갈대와 다양한 생물이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어느덧 순천 문학관이다. 이곳에 소설가 김승옥, 아동문학가 정채봉의 문학세계가 전시되어 있다. 말년의 김승옥 작가는 전시관 내에 삶의 공간을 만들어 가끔 머물다 간다고 해 몇 번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 김승옥 작가의 소설 속 ‘무진’은 이곳 순천을 상징하고 있다. 『무진기행』은 60년대, 한 젊은이의 귀향을 통해 안개로 상징되는 소외당한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를 그리고 있다.
순천의 ‘이수(二水)’는 동천과 이사천을 말한다. 두 물이 합수하여 순천만으로 흘러든다. 바다는 시냇물의 고향이다. 고향을 찾아 먼 길을 돌고 돌아 흘러왔다. 이수는 바닷물과 만나는 어름이다. 바닷물은 벌써 이무기처럼 고개를 흔들며 갈대숲 깊숙이 들어와 있다.
여수반도와 고흥반도가 만나 항아리 모양의 순천만을 이뤘다. 갈대밭과 갯벌의 풍광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뻗어있다. 이곳은 흑두루미 등 희귀 철새들과 갯벌의 생명인 농게, 조개, 꼬막 등이 평화롭게 공존한다. 염습지 식물이며 새들의 먹이가 되는 칠면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시원하게 펼쳐진 갈대밭이 바람에 출렁인다. 고개를 내민 햇살 한줄기가 내려앉아 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갈댓잎은 홀로 서 있기 힘겨워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무리 지어 춤을 춘다. 바람이 자꾸 간질이고 흔들어대도, 꼿꼿이 머리를 들고 허리를 편다. 10월이면 갈대밭은 노랗게 물든다. 흰 꽃잎 날릴 때쯤 흑두루미도 고향을 떠나 긴 여행 끝에 갈대밭을 찾아든다. 흑두루미는 갈대의 진객이다. 검은 털, 흰색의 긴 목이 우아하고 매혹적인 흑두루미와 갈대는 무척 친한 사이이다. 흑두루미는 넉 달 동안 갈대밭에서 원 없이 먹고 놀다가 봄이 오면 다시 제 고향을 찾아 먼 길 떠난다. 갈대밭은 마치 태풍이 한바탕 쓸고 간 듯 허허로운 정경이다.
방죽을 걷는다. 『무진기행』 주인공 윤희중과 하인숙이 걸었던 그 길이다. 두 사람이 정을 나누던 방이 있고, 20여 년 전만 해도 산장을 하던 그 집은 헐리고 없다. 여름밤, 집 앞 논에서 마치 조개껍데기를 한꺼번에 맞비빌 때 나는 듯한 개구리 울음소리, 하늘을 쳐다보면 셀 수없이 많은 별 남쪽으로 흐르는 별똥별들도 이제는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다.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는 입김 같다던 안개, 무진의 명산물인 그 안개도 가뭇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늦가을 석양빛을 등지고 서서 표표히 흔들리는 갈대꽃의 담백한 광휘(光輝)를 보면 여한 없는 한 생애의 마지막 빛남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시인의 ‘갈대’ 한 구절이다. 갈대는 바람에 꺾이지 않는다. 다만 흔들릴 뿐이다. 나는 보았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울고 있다는 것을. 자유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포기한 자가 자유롭다는 것을. 나는 자유도 행복도 갈구하지 않고 비움의 삶을 살기로 한다. 어느덧 억압에서 벗어난 나는, 이 순간이 족하다. 『무진기행』의 마지막 구절이다.
「… 나는 쓰고 나서 그 편지를 읽어봤다. 또 한 번 읽어봤다. 그리고 찢어 버렸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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