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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필

꽃의 생애는 한순간이다

by 안규수 2021. 10. 11.

 

   어느덧 고희를 넘기고 여든 고지를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다. 젊어서는 그리도 느리던 시간의 흐름이 이 나이 되니 번갯불이다. 시간의 기차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도 달린다. 동네 약국이나 식당에 가면 모두 날 부르는 호칭이 아버님이다. 처음에는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 주면 될 것을, 굳이 아버님으로 부르니 듣기가 조금 거북했다.

  원래 부모님은 갓 예순을 간신히 넘기고, 형은 마흔하나 젊은 나이에 가셨으니 장수 집안은 아니다. 장수는 생명이 누려야 할 축복 가운데 가장 큰 축복임이 분명하다. 누구나 오래오래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평균수명이 늘어나 더할 수 없는 행운의 시대를 사는 셈이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하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30이 되면서부터 조금 늙었다고 생각했다. 장가 못 간 친구도 있는데 아들 셋에 딸 하나를 뒀으니 젊다고 우기기에는 어딘가 자신이 없었다. 한때 친구 좋아하다 술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술병을 얻은 아픔도 있었다.

  40에도 그랬다. 마흔은 불혹이라는데 불혹은커녕 사방에 유혹이 넘쳐났다. 무슨 하고 싶은 일이 그리 많은지,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40대를 살았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 싫증이나 사업을 해보겠다고 기웃거린 적도 있다. 다만 혹()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어렵사리 늪에서 빠져나왔다. 무엇보다도 가상한 것은 20년 만에 방황을 끝내고 하나님을 다시 만난 일이다. 헌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50은 직장에서 나이에 걸맞게 승진하고, 친구들 앞에서 제법 무게를 잡고 살았다. 거기에 자식 농사도 잘 지어 모두 가정을 이루고, 저희 뜻대로 사회 일원으로 잘살고 있으니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60이 되니, 제사상에 놓인 콩떡처럼 말랑하고 구수하고 정겹지만, 선뜻 누구도 손을 대지 않는 신세가 되었다. 진종일 돌아다녀도 개조차 슬슬 피해 간다는 이순이 된 것이다. 그러나 손주가 열 명이니 4대 독자 아버지 한도 풀어 드렸고, 자식은 내리사랑이라고 손주 보는 재미가 솔솔 했다. 요컨대 나이란 나이일 뿐이다. 한마디로 나에게 있어 시간은 언제나 새것이었다.

  얼마 전 작은 충격을 준 한 여성이 있었다. 젊은 날 부지런히 일해 모은 수백억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나이 80에 학창 시절 친구였던 동갑내기 변호사와 결혼했다는 소식이다. 80세 신부라니. 그녀는 말했다. 나이 들수록 사람은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정화(淨化)하는 것이라고 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를 상상하다가 마음속으로 그녀를 축하하다 말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또 한 분의 할머니가 나를 일으켰다. 99세 할머니 시바타 도요, 그가 낸 시집 <약해지지 마> 70만 부나 팔려서 일본 열도를 흔들었다. 요즘 다시 그 시집을 꼼꼼히 읽었다. 시적(詩的) 요소가 깨소금처럼 박힌 아주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가락이었다.

  천재 괴테를 만든 것이 그의 장수였고 또한 그가 살아온 역사적 전환기가 대문호를 만든 일대 자양이었다면, 99세 할머니 시인의 시적 자양은 넘치도록 충분한 것이다. 일찍이 겪은 첫 남편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또 한 번의 결혼과 아이를 낳아 기르며 겪은 인생의 온갖 곡절들이 그것이었다. 그녀는 1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사는 동안 누구보다 풍성한 삶의 경험을 비축했다. 당연히 그것을 시로 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나는 이 할머니에게 자극을 많이 받았다. 코로나 덕분이기도 하지만 요즘 일주일에 평균 한 편의 수필을 쓴다. 시바다 할머니의 영혼이 축적된 시는 분명 글쓰기에 열정을 불어 넣어 주었다. 마음이 느긋해지면 시집을 꺼내 읽는다. 아가베라는 식물은 지닌 영양분을 꽃을 피우는 데 다 써버리고 꽃이 진 후에는 아예 죽는다. 얼마나 아름다운 죽음인가. 인생에 이처럼 화려한 꽃을 피우고 죽는다면 여한이 없겠다.

  무심코 찍은 점 하나가 의미와 목적을 바꾸듯 무심코 바꾼 생각 하나가 인생을 바꾼다.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된다. 이렇듯 모든 것은 생각에 달려있다. 생리적으로 몸이 늙는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꽃은 그마저 분별하지 않고 꽃을 피운다.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또 한 해가 간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목숨이란 순간을 피우는 눈부신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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