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가 두렵다. 죽음도 그만큼 두렵지 않다. 죽음은 하나님 소관이므로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치매는 다르다. 어느 날 갑자기 인지기능은 현격히 저하 되었는데, 의식은 소멸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시작된다.
요즘 집에서 핸드폰과 숨바꼭질을 자주 한다. 다른 물건도 가끔 어디 두었는지 몰라 헤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새벽 기도 시간에 손주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기도할 때 손주 이름을 깜박 잊고 애를 태우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 치매가 찾아온 것일까?
안소니*는 런던에서 평화롭게 삶을 보내고 있다. 무료한 일상 속 ‘나’를 찾아오는 건 딸 ‘앤’ 뿐이다. 그런데 앤이 갑작스럽게 런던을 떠난다고 말한다. 그 순간부터 앤이 내 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앤이 내 딸이 맞기는 한 걸까? 배신감이 물밀 듯 밀려오고 기억이 뒤섞여 지금 이 현실과 사랑하는 딸, 그리고 그 자신까지 모든 일이 점점 더 의심스러워진다.
안소니가 가장 아끼는 물건은 시계다. 이 정물이 보여주듯이, 시계는 삶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아버지를 방문하러 길을 걸어오는 딸의 발걸음을 따라 오페라 음악이 흐른다. 마침내 딸이 아버지를 만나는 순간 그 음악은 처음부터 울려 퍼지든 음악이 아니라, 아버지가 헤드폰을 쓰고 듣던 음악이었다. 이처럼 치매는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듣고 있으면서 남들도 그 음악을 듣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상태다. 인지기능이 저하된 치매 노인에게 일상은 헤드폰 속 음악처럼 흐른다.
어느 날 안소니는 요양원 침대에서 눈을 뜬다. 눈을 뜬 그에게 간호사는 딸이 보내 준 엽서를 보여준다. 그 엽서의 뒷면에는 꽃 그림이 화려하다. 봄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꽃바구니를 안고 있는 엽서를 읽다가 엉켜버린 기억 앞에서 서럽게 울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억의 다리가 불타버린 일상, 자신과 타인을 잇는 인지의 다리가 부서져 버린 일상이다. 이 슬픈 현실 아래로 음악이 나직하게 흐른다. 흐느끼는 그는 단순한 감정 조절에 실패한 치매 노인이 아니다. 마침내 자신이 치매임을 깨달은 노인이다. 그의 울음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울음이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처럼 묻는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은 그 누구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는 변화된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 핵심이다.
이처럼 영화는 안소니의 시선으로 극을 전개해 나가 내가 마치 치매 환자인 것처럼 공감하게 한다. 내 일생이 시간의 흐름이란 바람에 의해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결코 남의 일 같지 않고 내 일처럼 느껴져 아릿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자기 의식주와 생리현상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인간의 삶을 위엄 있게 만든다. 치매는 그런 삶의 위엄을 땅에 내려놓는 일이다. 치매가 오면 대체로 기억이 온전하지 않고,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며, 절제되지 않은 언행을 일삼는다. 자기 한 몸을 건사하지 못하다가 결국 돌보아 주는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급기야는 가족마저 곁을 떠나 버린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마주해야 하듯 스크린 속의 주인공을 애써 지켜보면서, 나는 불현듯이 시공간 감각을 잃은 느낌을 받았다.
그날 극장에서 90여 분 내내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안소니의 탁월한 연기력 탓도 있지만, 고향 마을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생각나서였다. 그 할머니는 바로 이웃에 살던 엄마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몇 년 전 아흔이 넘어 치매에 걸린 그는 자녀들이 먼저 떠나는 바람에 빈집에서 홀로 투병하다 금년 오월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가 떠나시고 나는 엄마를 잃은 듯 허전한 마음을 추수를 수 없었다.
그 무렵 어느 날 밤이었다. 꿈속에서 엄마가 찾아오셨다. 아들을 보고 아무 말도 안 하시고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그냥 헤어지고 말았다. 근 30년 만에 아들을 찾아오신 엄마를 만나고 나서 공연히 울적하고 고적한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주위에서 이런 치매 노인들의 슬픈 현실을 많이 보아왔다. 고향마을에는 나이 든 노인들만 외롭게 살고 있다. 그 가운데 일 년이면 한둘은 치매 증세로 객지에 사는 아들딸들에 의해 인근 시골 요양원으로 모셔진다. 문제는 그곳에서 노후를 평안히 지내다 가시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외롭게 살다가 가신다는 점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치매라는 병의 현실이다. 요양원이 현대판 고려장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듯싶다.
치매는 무서운 병이다. 무엇보다도 가족과 단절은 끔찍하다. 가족을 처절하게 괴롭히고 자신도 인간이길 거부한다. 이런 비극이 어디 또 있을까? 두어 달 전 병원신경과에서 인지기능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크게 염려 안 해도 된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나이 들면 기억력 감퇴는 누구나 찾아올 수 있으니 뇌를 활성화할 수 있는 운동을 많이 하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았다. 첫째가 독서와 글쓰기이다. 무엇보다도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은 뇌가 건강하다고. 다음으로 운동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 30분 이상 걷기를 꾸준히 하고 마지막은 친구와 여행을 권장했다. 이 세 가지는 나의 행복 찾기 로드맵이다.
오늘도 이 세 가지 일에 열중하고 있다. 치매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오로지 남은 인생을 보람되게, 행복으로 이끌어 가고 싶기 때문이다. 삶의 행복을 겪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행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두 배로 행복한 일이다.
*플로리앙 젤러 감독의 영화 <The Father>의 주인공. 안서니는 <양들의 침묵>으로 유명한 올해 나이 94세의 ‘안서니 홉킨스’가 열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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