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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서평 글쓰기 요령

울지 않는 새는 없다

by 안규수 2024. 10. 30.
울지 않는 새는 없다

안규수 작가의 ‘깊은 여행’을 읽고

                                                                                강대선


안규수 작가의 글을 대할 때마다 가슴 한 곳이 뭉클해져 온다. 작품마다 아픔이 똬리를 틀고 있다가 이제 때가 되어 갈 길을 간다는 듯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 들면 ‘녹색 갈증’이 커지듯 가슴 안에 ‘갈증’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갈증이 글로 여행을 떠나게 했을 것이고 숲의 나무처럼 많은 작가를 만나게 했을 것이다. ‘녹색 갈증’처럼 바람에 실린 숲 향이 늘 상쾌했으면 좋았겠지만 때로는 비도 맞아 젖기도 하고 눈에 파묻혀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글을 통한 여행은 ‘치유의 숲’에 이르게 한다. ‘풀꽃은 약해 보이지만 체질이 강하다’는 표현에서 보이듯 긴 겨울을 이겨낸 뿌리와 줄기, 잎이 안규수 선생님이라고 믿는다. 모진 바람에 시달려도 꿋꿋하게 일어서는 풀꽃의 질긴 생명력이 작가의 정신이 아니던가.

나는 ‘깊은 여행’을 읽으면서 숲에서 우는 한 마리 새 울음소리를 듣는다.

“숲은 뭇 생명들의 삶의 터전이다. 햇볕이 서산으로 기울 무렵, 울창한 숲 여기저기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새들이 지저귄다. 새들의 노래가 맑고 경쾌하면서도 슬프기도 했다. 서로 무슨 교신이라도 하는 듯 울고 있다. 큰 소리로 우는 놈, 작은 소리로 우는 놈, 자지러지게 우는 놈, 기뻐서 우는 놈, 슬퍼서 우는 놈…. 울지 않는 놈이 없다. 저들이 나더러 실컷 한번 울어 보라고 토닥인다. 아련한 추억으로 스쳐 가는 엄마, 엄마를 이 숲에서 느낀다. 나를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엄마의 주름진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는 숲에서 우는 한 마리 새였다”

새들의 노래는 맑고 경쾌하면서 슬프다는 표현 속에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양면이 들어 있다. 생사가 이어지듯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생과 사는 서로 교신을 한다. 삶도 죽음도 하나로는 울 수 없다. 그 울음은 우리의 생처럼 다채롭다. 작가는 이 깊은 울음을 듣는 귀를 지니고 있다. 왜 우는가? 좌절과 고통 때문에 우는가. 기뻐서 울든 슬퍼서 울든 이유야 어떻든 울지 않는 놈이 없다.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은 울음을 가진다. 이 울음이 무엇일까. 욕망일까, 인정일까, 그리움일까. 그 모든 것이 울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안규수 작가의 글 속에 등장하는 ‘엄마’는 이 울음의 뿌리를 보여준다. 자식을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엄마가 울음의 뿌리이다. 그럼 작가의 뿌리는 무엇일까. 헌신과 사랑 그리고 그리움이다. 내 안의 숲에서 우는 새는 그리워 우는 새다. 두고 온 집이 그리운 이유도 ‘엄마’의 추억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니 모든 여행의 종점은 집이다. 그의 작품에서 나오는 애잔함과 서글픔 그러면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자세는 이 뿌리의 깊이에서 나온다. 

“모든 길은 첫걸음으로 시작된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첫날의 걸음과 다음날의 걸음은 다르다. 한 걸음 사이에 이전 길은 지나가고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하늘이 다르고 바다 물색이 다르고 산이 다르고 나무가 다르고 꽃이 다르고 풀이 다르고, 무엇보다 자신이 달라진다.”

작가는 변화를 깨닫는다.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변화라는 사실을 깨닫고 짜릿한 쾌감에 젖는다. 결국 여행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속에 진정한 비경이 들어 있다. 

작가의 글에는 체험과 함께 깊은 사유의 울림이 담겨 있다. 한 꺼풀 벗겨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글들 사이에서 안규수 작가의 글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의 가치를 담보해야 하는지 길을 알려준다. 작가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나도 모르게 ‘녹색 갈증’에 물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