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의 풍경 / 안규수
겨울의 모진 바람과 백설의 난무에서 태고의 음향을 들을 수 있는 한라산의 겨울을 나는 좋아한다. 그 풍경은 어린 시절의 동심을 불러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무어라 해도 겨울이 겨울다운 서정은 흰 눈이다.
그 옛날, 내 고향은 눈이 제법 많이 오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이 내리지 않는다. 그 시절 한겨울 아침, 마당에 흰 눈이 소복이 내리는 날이면 아버지는 집 아래 우물까지 빗자루로 눈을 쓸고, 엄마는 물동이를 이고 그 뒤를 따라가 샘물을 길어 오시곤 했다. 온통 세상이 잠시 낡은 껍질을 벗고 현란한 흰옷으로 갈아입는 날이면 강아지가 좋아서 껑충껑충 뛰어논다. 나는 학교에 가는 길에 책가방을 등에 둘러매고 동무들과 눈싸움하던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차로 올라갈 길인 영실매표소에서 금강소나무 숲 입구까지는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이라 차량 통행금지란다. 그 눈길 걷기는 경사가 급한 영실 능선보다 더 힘들었다. 하지만 설산을 볼 수 있다는 설렘에 몸은 무거워도 마음은 마냥 즐거웠다.
영실은 백록담 남서쪽 산허리에 있는 골짜기로 깎아지른 영실 계곡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암이 말발굽 모양으로 빙 둘러서 있다. 신들의 거처라는 이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병풍바위 쉼터에서 평원의 산길로 접어들었다. 능선에 오르니 매서운 칼바람이 귀를 할퀸다. 선작지왓의 5, 6월이면 1,700고지 위에 털진달래, 철쭉꽃이 만개해 천상의 화원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백록담 남벽 주상절리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공간적인 경계를 허문 채 흰 눈 세상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설 정원은 신천지인 듯싶다. 모든 건 성화 되어 새롭고 정결하고 젊고 정숙하게 소생되어 있다. 나의 가슴은 동심에 젖어 오직 찬탄을 노래할 뿐이다. 먼 옛날 주민들이 여름이면 소를 먹이던 목장이었다고 한다.
선작지왓 평원의 찬란한 겨울 왕국은 눈이 부시다. 좁은 길 양편에 눈이 내 허리춤까지 차올라 나무 데크로 된 길 외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하얀 눈꽃이 나뭇가지, 풀잎에 하얗게 얼어붙어 상고대를 연출하고 있다. 구상나무는 눈을 뒤집어쓰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맑은 날씨에 찬란한 금관을 쓴 듯한 해의 모습이 점점 더 드러난다. 반원이 되더니 백록담 위에 얹힌 완벽한 한 게의 원 모양이 된다. 주위가 온통 빛 속에 눈부시게 하얀빛 덩어리이기도 하고, 주변의 황금빛에 둘러싸인 원일 때도 있다. 그건 누구를 위한 단심丹心일까. 하늘의 잔치, 해의 연출이다. 이 설원의 찬란함도 해가 빚은 아름다운 경관이 아닐 수 없다. 이 경건한 순간, 내 온몸에 지상 최고의 열락悅樂이 부르르 전율로 흐른다. 태초와 이 순간이, 하늘과 나의 몸이 한 끈에 연결되어 있다는 경외감이 느껴진다. 내 영혼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 같다.
백설이 바람에 어지럽게 춤춘다. 백록담이 연출한 현란한 흰 눈 군무는 오히려 아름답다는 말이 궁색하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눈길을 힘들게 올라온 사람들도 환호한다. 백록담의 위엄은 묵언 정진하는 수도승을 닮은 듯하고, 백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하얀 밀어가 되어 바람에 흩날린다. 사계 중 어느 계절 한라산이 가장 아름다운가 하는 물음은 어리석다. 사시사철 그 풍경과 매력이 다르고, 영실 단풍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환상의 세상인 선작지왓의 설원을 대신할 수 없다.
천의 얼굴을 가진 한라산의 그 오묘함이 우주의 질서 속에 나의 왜소함을 알게 한다. 나는 영원 속에서 작은 티끌 하나일 뿐이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온 몸속으로 퍼져나간다. 황홀의 무아 상태다. 모두가 한라산이 뿜어대는 영묘한 기운 때문이다.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세계요, 경지가 아닐 수 없다. 자기에게서 해방되어 비로소 자기를 만나는 것이 여행의 보람이다. 가장 가까운 나를 만나려고 바다 건너 섬으로 떠나왔다. 내 어딘가의 ‘숨은 자아’를 만나는 것, 이게 풍경의 먼 곳, 혹은 먼 곳의 풍경이 만들어 내는 효과다. 여름의 한라산 풍경도 아름답지만 나는 겨울의 설산이 더욱 아름답다.
섬 속 ‘이어도’를 사랑한 사진작가 김영갑은 이런 순간을 ‘찬란한 황홀’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가난 속에 20여 년을 홀로 사진기를 둘러메고 한라산과 오름의 황홀한 순간을 찾아 헤매다 마흔아홉 젊은 나이에 죽었다. 선작지왓의 사계가 이토록 아름다우니, 이를 아끼고 사랑한 「오름 나그네」의 시인 김종철은 등산객들의 발길에 산이 훼손되어 가는 걸 막아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나 그의 육신은 이곳에서 영원히 잠들고 있다.
한라산은 오랜 세월 묵은 사연의 저장고이다. 그동안 이곳을 찾은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와 생각들이 곳곳에 스며 있을 것 같다. 나에게 한라산은 오랜 친구이자 어머니이다. 나의 모든 걸 받아주니 나의 치기 어린 독무대가 되곤 한다.
오늘 설산 산행은 말없이 따라와 준 아내가 있어서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내 발자국을 따라오는 그가 있어 나는 힘을 얻고 미끄러운 눈길을 완주할 수 있었다. 덧없는 세월은 앞으로 우리에게 이런 날을 몇 번이나 더 허락해 줄지 알 수 없다.
어릴 때 눈밭에서 함께 뒹굴던 동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설산에서 설원을 바라보니 그 동무들 얼굴이 흩날리는 바람 속에 어디론가 흘러간다. 오늘 산행도 어느덧 하산 길 병풍바위 쉼터에 서 있다. 몸은 눈에 젖고 바람에 젖어 후줄근하다. 흰 눈 속에 묻힌 천상을 떠나 천천히 속세로 내려가는 내 발길은 천근만근 무겁다.
섬사람은 한라산이 구름에 묻혀야 바라본다고 한다. 평소에는 거기 한라산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없단다. 나처럼 뭍에서 건너온 한량이 한라산을 들먹이니 멋쩍고 쑥스럽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구상나무야,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