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노래 / 안규수
9월의 아름다운 햇살과 바람은 뜻 모를 아쉬움을 추억 저편에서 불러내곤 한다.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이 옷깃을 스친다. 가을이 저만치서 손짓하고 있다.
찬란한 색채로 물들어가는 가을이 단조롭거나 지루할 리 없다. 아직은 태양이 뜨거운 햇빛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어느 순간 악센트 없고 단조로운 상실감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살아오면서 내가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나는 가을 달밤, 바다, 대숲, 제주 곶자왈 숲 풀벌레 울음소리를 좋아한다.
이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모든 것이 침묵한다. 벌레 소리가 침묵하고, 나뭇잎이 침묵하고, 나도 침묵한다.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이 이런 날 제격이다. 달콤한 전주에 이어 클라리넷 솔로는 기억 뒤편의 먼 시간,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비쳐 들던 9월 오후의 햇살을 떠올리게 한다. 바이올린 현악기가 펼쳐내는 서늘한 두 번째 주제는 가을의 끝없이 깊고 푸른 하늘, 가슬가슬 살갗을 어루만지는 바람을 느끼게 만든다.
창밖에는 비바람이 몰아친다. 뜰에 목련이 바람에 몹시 흔들리며 시달리고 있다. 이 비가 그치면 9월은 한층 깊어지고 바람은 더 산뜻해질 것이다. 산길에서 떨어지는 돌감 한 알이 문득 내 마음을 흔든다. 나는 누구인가. 존재의 뿌리까지 울리는 이 실존적 물음이다. 이런 소리는 혼자 들어야 한다. 아니면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브람스의 피아노 소품집 작품 118중 제2곡. 간주곡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다. 이 작품은 ‘하염없다’라는 형용사를 떠올리게 한다.
9월의 밤은 외롭다. 마치 어린 시절 엄마가 집을 비워서 어서 들어오시길 기다리고 있던, 유난히 짧아진 해가 능선 너머로 잠기고, 땅거미가 길어지던 그런 저녁나절을 생각하게 한다. 누구나 힘들어도 외로워도 기쁘거나 즐거워도 먼저 생각나는 것은 고향이다. 도둑맞은 세월이 한스러워 외로움에 젖어 사는 나를 위로하듯 정지용의 시 ‘고향’에 채동선이 작곡하고 바리톤 황병덕의 묵직한 감미로운 선율이 가슴 저 밑바닥의 추억과 열정을 길어 올리기 시작했다.
고향의 골목은 옛길 그대로인데 동무들은 오간 데 없고, 노인들의 기침 소리만 들린다. 유한한 생을 사는 인간에게 나이 듦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무엇보다도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세월의 회한이 가슴을 파고든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가는 길인 것을 …. 잠 못 이루는 늦은 밤 어쩐지 옆구리가 허전해 헨드폰 Youtube를 켜니 최백호의 ‘청사포’의 청아한 목소리가 애절하게 다가온다.
“지금은 외로워도 괜찮다. 우린 너무너무 사랑하니까.”
기형도의 시, ‘빈집’이 떠오른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시 구절이다. 시인은 사랑을 잃고 자신을 표현할 길이 시밖에 없었다. 이처럼 절절한 사랑이 나의 옛 시절을 소환한다. 고교 시절, 점심시간이면 교정 가득 울려 퍼지든 베르디의 <리골레토>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여자의 마음>이 흐를 때 우리는 동산 숲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가을 하늘 기러기처럼 멀리 날아갔다. 밤하늘 은하수가 흐르고 동이 틀 무렵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찬란한 젊음이 푸르고 싱싱한 그런 시절이 새삼 그립다.
모든 예술은 끊임없이 음악의 상태를 지향한다. 음악은 추상적인 소리만으로도 마음을 움직인다. 다른 예술 장르는 좀처럼 따라잡기 힘든 경지다. 동양의 이솝우화라 불리는 열자列子 이야기이다.
진청과 설담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 제자는 어느 정도 노래를 하게 되자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하고 스승에게 하직 인사를 했다. 스승은 말리지 않고 큰길까지 나가 제자를 전송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어찌나 슬프던지 숲이 일렁이고 흘러가든 구름이 멈췄다. 제자가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부끄러웠다. 자신이 아직 멀었다는 것을 깨닫고 곁에 남아 더 배울 수 있게 해 달라고 스승에게 간청했다.
스승은 그에게 한아라는 뛰어난 가객에 관한 얘기를 해줬다. 그 가객이 어떤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답례로 노래를 불렀다. 그가 떠나고 사흘이 되어도 노래의 여운이 남아 그 집 대들보에도 소리가 밴 것 같았다. 또 그가 어떤 여관에 들렀을 때였다. 동네 사람 중 누가 그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자 그는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그곳을 떠났다. 그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 모두가 슬픔에 잠겨 사흘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울었다고 한다.
숲이 일렁이고, 흘러가든 구름이 멈추고, 사람들의 마음은 물론이고 대들보에도 소리가 배이게 하는 힘. 조금은 과장이지만 음악은 외로운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힘이 있다. 소리 하나만으로 기쁨과 슬픔을 추상적으로 재현해내고 위로와 치유의 기능까지 수행하는 음악의 기적, 보이지 않는 그 놀라운 힘 때문이다.
해가 지는 어스름이 깔린 황혼 녘에 박인수, 이동원이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인 ‘향수’가 오랫동안 가슴에 머물다 흩어진다.
“그리운 고향 꿈엔들 잊으리라…”
아름다운 하모니가 덧없는 인생의 영상 뒤에 잔잔히 번져오는 배음背音 같다. 사는 게 꿈속의 일 같다. 아침 해가 어느덧 서산에 지고 있다. 인생이 이토록 빨리 지나가니, 모든 게 덧없다. 바람에 우수수 낙엽 지는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느끼는 우수와 쓸쓸한 해방감, 가을에는 그런 체념의 그림자와 알 수 없는 황혼의 기이한 빛이 서려 있다. 내 안의 맑은 본성이 갈망하는 삶, 바로 노래가 있는 삶이다.
그런 9월이다. 부드러운 바이올린 선율, 이상한 향수鄕愁, 천 개의 목소리가 부르는 매혹이 우리를 마법처럼 꾀는.
<에세이스트 '23 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