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선 돈키호테
안규수
나는 문학이라는 길 위에 선 돈키호테였다. 주인공 알론소 키 하노는 기사에 대한 소설을 읽고 상상 속에 빠져들어 그만 정신이 이상해지고 말았다. 그는 스스로 "돈키호테 라만차"라 칭하며, 그의 하인 산초 판사와 함께 정처 없이 모험을 떠난다.
나는 늦된 사람이다. 무언가 배우고 깨우치는데 더딘 축이다. 여린 성정처럼 삶의 여정도 그랬다. 늦되고 뒤처진 현실을 깨달은 때도 불혹을 넘긴 뒤였다. 순탄한 삶 덕분에 겨우 곳간은 반쯤 채웠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공허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자꾸 날 따라온 것 같아 뒤돌아보니 내 그림자였다.
정년 퇴임 후 유달리 하늘이 희부연 한 어느 봄날, 거울 속에서 낯선 내 얼굴을 보고서야 잃어버린 꿈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곧장 순천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시인 송수권 곽재구 교수가 시론을 강의하고 있었다. 내 생애 중 가장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시詩를 모르고 문학을 한다는 것은 문학적 교양 없이 글을 쓰려고 하는 것과 같다는 송 교수의 강의에 심취하여 4년을 열심히 듣다 보니 만물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말문이 트이고 귀가 열린 것이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송 교수가 날 불렀다.
“자네 시 써놓은 것 있지?
그동안 이 한 마디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어쩜 나도 시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이제나저제나 무슨 하교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기다린 지 어언 두 달이 지났다. 궁금하던 차에 연구실을 찾아갔다.
“어, 자네 시…, 그렇지. 어디에다 뒀더라.”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나는 낯선 그곳에서 와서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다. 이방인은 고향을 떠나 이곳과 저곳의 사이를 자기 영역으로 선택한 사람,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주변인이었다.
이곳저곳 틈새 그 시간이라는 강물이 나를 키워 지식, 실수, 습관, 삶의 지혜, 이러한 일들의 무한한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남은 생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가르침을 주었다. 고치 속의 애벌레가 우화羽化를 하고 공중으로 날아가듯이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수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나를 이끄는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무엇이 나의 잠재된 무의식 세계 속에 잠들고 있는 욕망을 깨우고 있을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자면, 수필 쓰기는 나의 내면의 삶과 의지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라는 점이다. 자기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라는 어떤 기물인가? 자기의식의 거울, 꿈을 찾아 부단히 방황하던 시절의 거울, 여명과 번개의 거울, 이 혼돈의 시대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 거울이 아닌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진달래가 피고 냇가에서 물놀이하고 단풍이 지고, 눈이 내리는 시골 풍경은 아름다웠다. 뜨거움이 나를 휘감는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동무들 목소리는 날 들뜨게 한다. 그 속에 몰입하면서 시간의 흐름조차 잊는 것, 새벽녘 글을 쓰다가 동쪽 창문에 여명이 밝아오면 새 세상이 열리는 듯한 환희, 나는 수필의 매혹에 깊이 빠져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매운바람 소리가 우수수 감나무를 할퀴고 지나가는 겨울밤, 방안은 화롯불의 온기로 그지없이 안락했다. 큰엄마는 평소 들려주시던 장화홍련전 심청전 등 이야기와 달리 해방 전후 요동치던 격랑의 풍파 속에서 마치 지옥 같았던 인민재판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벌교 학교 운동장에 수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인민재판을 열었어야. 거기서 ‘손가락 총’을 당한 사람들을 소화다리(부용교)로 끌고 가 난간에 한 줄로 세워 철삿줄을 묶어 놓고 총소리가 울리면 그들이 가을바람에 낙엽이 지듯 다리 밑으로 굴러떨어졌어야. 양옆 강둑에서 이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가족들은 혼절했고,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아이고 이런 시상이 어딧냐, 생지옥이여 생지옥!”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큰엄마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그 눈물이 긴 세월 내 속에 잠들어 있다가 어느 날 새벽 나를 흔들어 깨웠다. 영원히 땅속에 묻힐 뻔한 '손가락 총'이라는 당시 유행어가 다시 햇빛을 본 순간이다. 어떤 소명 의식이 내 속에서 꿈틀거렸다. 그 운동장에서 간신히 손가락 총을 면한 아버지는 혼돈의 시대에서 “모든 일이 다 내 탓이다”라는 체념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내 문학의 고향은 어디일까? 그 정서의 뿌리는 잃어버린 유년 꿈의 세계와 아버지의 삶이 내 이야기의 바탕임을 나는 명료하게 깨닫고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습관적으로 밑줄을 긋고 메모한다.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 지식사회에서는 메모하는 사람이 생존한다는 말이 있다. 연암 박지원은 말 위에서 졸면서도 풍경과 담벼락 글씨를 메모했다. 그 일이 이 시대 최고의 기행문 ‘열하일기’가 탄생하는 원동력이었다. 메모는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경험적 자아를 창출하는 매개체가 되고, 새로운 창작 동기가 되기도 한다.
최근 작고한 이어령 선생님은 ‘마지막 수업’에서 “작가는 감추고 싶은 욕망, 속마음을 광장으로 끌어내 노출 시키고 깨진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엄마의 슬픈 삶은 평생 나를 괴롭히는 아픈 응어리였다. 깨진 거울로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니 심연에 감춰진 상처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엄나무 가시’라는 글을 쓰면서,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수필은 곧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 벽을 넘는 순간 정서적 위안을 얻을 수 있었고, 평생 아물지 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나는 동굴을 탐사하듯 나의 내부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려 한다. 동굴의 길이가,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 불안 매혹이 없는 일상은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남은 인생,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알 수 없으니, 오늘도 매혹에 떨고 불안에 잠길 생각이다.
수필은 노련한 검객이 칼 한번 휘두른 단면 같은 것이 아닐까. 그 단면에 수많은 삶의 무늬와 결이 퍼덕거린다. 나는 그 단면을 찾아 돈키호테처럼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따기 위해 자신을 던지려고 한다. 돌고 돌아서 내 자리에 오는 것, 그 수단이 수필이다.
<*수필미학 22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