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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작 수필

지구는 큰일 났다!

by 안규수 2023. 12. 1.

         

        어린 시절 살던 시골은 완전 들판이었다. 너른 들과 마을 뒤 우뚝 솟은 징광산 밖엔 볼 게 없는 농촌, 나지막한 언덕이 있고 끝 간 데까지 들판이 펼쳐진 곳이 내 고향이다. 대숲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대숲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이 참 좋다. 바람에 사운거리는 소리, 큰바람이 일 때 대숲 일렁이는 소리는 지금을 잊을 수 없다. 그 소리는 묘하게 내 무의식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어느 날 TV에서 프랑스 지역에 있는 알프스의 고원 하얀 눈이 붉게 물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알프스, 흐린 하늘과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흰 구름, 멀리 펼쳐진 검은색 바위가 담아낸 신비로운 풍경은 나의 시선을 단박에 빼앗는다. 알프스 고원지대의 설산은 나의 버킷리스트 1위 이기도 하다. 그런 설산의 눈 색깔이 예사롭지 않다. 빨간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여기저기에 다홍빛이 감돈다. 한 남성이 손으로 눈을 깊게 파자 지표면에서 족히 10㎝는 될 법한 깊이까지 붉은 물이 든 현상이 보였다.

  이산화탄소를 먹고 자란 녹조류…‘카로티노이드 색소’가 자외선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방어무기가 된 셈이라고 해설한다. 선혈이 낭자한 현장 같은 이 모습은 사람이나 동물이 만든 게 아니라지만 너무 끔찍하게 보였다. 과학계에선 눈에서 나타난 이런 색상 변화 현상을 ‘빙하의 피(Glacier blood)’라고 부른다고 한다. 알프스에서 미세조류가 번성한 이유는 뭘까. 연구진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19ppm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사상 최고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봉쇄와 산업활동 위축에도 이산화탄소 농도에는 쉽사리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 인간 생존에 ‘악조건’인 이산화탄소 증가가 알프스 눈 속의 미세조류에는 ‘호조건’이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빙하의 피’는 이산화탄소 증가라는 기후변화의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기후변화를 추가로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지구 위기가 남의 일이 아니다. 지구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마치 무제한 공급되는 것인 양 소비하면 지구는 더 빨리 황폐해진다. 자연은 정직하다. 자연도 자존심과 질서가 있다.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 역습을 받는 것은 사람들의 어리석고 오만한 생활 방식이 불러온 자업자득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당한 만큼 반드시 되갚아 준다.

 

  숲을 사랑하는 일도 숲이 우거진 시골 삶을 기꺼워하는 것도, 삶의 정수를 받아들이고, 깊고 품위 있는 삶을 살기 위함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시골은 슬프게도 그 어디에도 없다. 갓난애들의 울음소리가 끊기고, 스산한 적막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울울창창하던 마을 뒷산은 개발이란 명목으로 헐벗은 채 벌건 황토가 바람에 날리고 그 넓은 들은 저수지가 생겨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내 주위에는 아이엠에프를 겪고 유동성 위기를 겪은 뒤부터 실용주의에 쏠리고 있다. 환경, 생태 문제는 그다음이라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절박성이 없다. 그러면서도 친구들은 웰빙을 이야기하고, 노년의 건강한 삶을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의 건강과 개인의 건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밀접하게 연동되어 움직인다는 걸 모른다. 환경이 병들면 나도 병들고, 환경이 건강하면 나도 건강하다. 당장 필요와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삶, 천박한 실용주의가 퍼져 나가면서 환경에 대한 의식이 엷어진 것 같다.

  요즘 환경문제, 생태 문제가 내 삶의 진지한 화두가 되었다. 화석 연료로 만드는 에너지를 덜 쓰는 실천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구온난화 문제라든지 물과 땅, 대기오염에 대한 말은 많이 하지만, 생활과 의식 사이의 틈은 크다. 지구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마치 무제한 공급되는 것인 양 소비하면 지구는 더 빨리 황폐해질 뿐이다. 기후변화 같은 환경 역습을 받는 것은 사람들의 어리석고 오만한 생활 방식이 불러온 자업자득이다.

  노자나 장자가 이야기했듯, 인간은 자연에 대한 공손함이 필요하다. 우리는 결코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그 일부일 뿐이다. 사람이 인격을 가졌듯 자연에도 나름대로 삶의 방식이 있다. 아버지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들과 산에서 풀을 베어 마당 가에 집채만 한 거름더미를 만들어 경운기가 없던 시절이라 손수 지게로 거름을 논과 밭으로 져 날랐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순수한 퇴비만으로 농사를 지어도 가을이면 늘 풍년이 들었다.

  청정한 지구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나부터 불편함을 조금 더 받아들일 생각이다.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모든 상품이 과잉 포장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개인도 그렇지만 기업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가공된 식품보다는 자연에 가까운 것, 가공되지 않은 것을 주로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집 안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 거름으로 만들어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에어컨보다는 선풍기를 쓰고, 물건을 아껴 쓰고 될 수 있는 대로 재활용할 것이다. 이런 일들이 결국 지구 자원을 아끼고, 탄소를 줄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나무와 숲에 늘 빚을 지고 있는 나는 휴지 한 장이라도 아껴 쓴다.

 

  이 사회에 퍼져 있는 반 생태, 반환경의 물줄기 고리를 하루빨리 끊어야 한다. 녹색 의식이 강물처럼 흐른다면 병든 지구를 사릴 수 있다.

  ‘지구는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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