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난 뒤 햇볕이 도타워졌다. 천지간에 음의 기세가 누그러지고 양의 기운이 퍼져 간다. 어제 산책길에서 만난 바람은 여전히 옷깃을 여미게 할 정도로 차가웠지만 한겨울 그것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잔설 녹은 자리에 복수 꽃이 피고 제주도에서는 유채꽃 소식이 날아든다. 곧 광양의 매화꽃 축제가 열릴 것이다.
오는 봄은 새봄이고 매년 그렇듯 내 생애에서 처음 맞는 전대미문의 봄이다. 봄기운에 피가 더워지고, 봄동 겉절이에 냉이 무침, 된장국 밥상 앞에서 어머니와 둘이 함께한 저녁 식사 광경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J를 만났다. 한때는 시청 고위공직자였던 친구는 명퇴하고 복지회관 같은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소일하고 있다도 했다.
“아직 무슨 일이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는 어디 가나 무용지물에 퇴물 취급이니, 봉사 나가는 곳에서도 젊은 사람들을 더 좋아하더라고. 난 젊은 사람들 앞에서 주눅이 들어.”
허탈하게 말하는 친구에게 나는 대답했다.
“ 친구야, 주눅은 무슨 주눅! 죽자 살자 열심히 살았는데 무슨 죄지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쩐지 그의 말에 내심 동조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껏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겉모습은 씩씩하고 대범하지만 속은 말랑말랑하면서 섬세하고 여리다. 성품이 과묵하고 성실 근면한 성품은 그를 고위직까지 끌어 올린 것이다.
친구와 헤어진 뒤 백화점에 들렀다가 배가 고파 지하 식품 판매장에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1층을 가로질러 가는데 얼핏 화장품 진열대에 놓인 거울에 내 얼굴이 비쳤다. 목주름 하며 팔자 주름은 가뭄에 논 갈라지듯 깊은 골짜기를 이루었고 눈 밑 주름은 자글자글해 보였다. 식당에서 뭘 먹을까, 이것저것 고르다가 여러 가지 색깔의 날치알과 채소로 화려하게 장식된 김밥에 관심을 보이자, 점원이 그건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서, 나이 드셨으니 그냥 프라이드를 드시란다.
그 말이 거슬려 한마디 하려다 나는 금방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야들야들하고 투명한 피부, 윤기 나는 검고 싱싱한 생머리, 그보다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는 당당한 젊은 여성의 위력에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덧 일흔이 되면 얼굴에 하얀 버짐이 눈물처럼 번진다. 자신의 외로움을 숨기려 해도 금방 드러나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조금은 슬픈 존재들, 그건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흔적 때문이다.
이 나이 되니 인생의 맛, 인생이 뭔지도 모르고 인생을 살았다. 봄가을을 일흔 번씩 넘기며 살아보니 그나마 어렴풋이 인생의 윤곽을 그려볼 수가 있게 되었다. 진심으로 부자가 되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꿈을 꾼 적이 있던가? 잘 모르겠다. 현실 조건에 눌리지 않고 평생을 월급을 받으면서 살아온 탓에 크게 이룬 것도 없고 남의 손가락질을 받을 만큼 잘못도 없었다. 그러나 실수 없는 인생은 없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 중요한 ‘지금’을 놓치면서 살아왔다는 게 뼈아프고 슬프다.
요즘은 부지런히 책을 열심히 읽는다. 작은 깨우침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살뜰하게 행동으로 옮기며 살지는 못했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달은 보지 못하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며 살았다. 그런 내게 인생이란 신성하지 않고 그렇다고 아주 느른하지도 않았다.
누군가 인생의 맛을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다만 인생이란 아주 씁쓸한 것만도, 그렇다고 달콤한 것만도 아니었지만,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생의 맛이 고작 어제 남긴 식어버린 카레를 무심히 떠서 먹는 맛이라도 말이다.
나이 드니 새롭게 느끼는 변화가 있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세상의 중심이 나 자신에서 조금씩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자꾸 아내의 흰머리가 마음이 쓰이고, 파릇파릇 자라나는 손주들이 더 애틋하고, 잊고 지내던 친구들 안부가 궁금해지고,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 나뿐만 아니라 남도 보인다. 한마디로 그악스럽게 붙잡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놓아 간다고 할까, 조금씩 마음이 단순해지는 걸 느꼈다.
‘좋은 사람’ 하면 나는 장기려 박사를 생각한다. 북에 부인을 두고 와서 일생을 홀로 지내면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며 살던 그와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유명한 의사라는 호칭을 섰다. 그러자 그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유명한 의사가 되기는 그다지 어렵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정 ‘좋은 의사’가 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제주 여행에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숙소로 돌아오는 중 해변 카페에 앉아 오래 쉬었다. 숙소로 급하게 돌아갈 일이 없다는 것,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 이 한가로움과 자유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편안하기 그지없다. 집에 돌아가면 다시 바빠질 테니까.
나에게 나는 언제나 큰 산이었다. 넘어서려 해도 내가 나를 넘지 못해 늘 안타깝고 초조했다. 모든 게 내 탓이었다. 그걸 깨닫는 데도 오랜 세월이 걸렸다. 나이 들면서 나 자신은 넘어야 할 산이라기보다, 좋든 싫든 그냥 보듬어 안고 사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직 나답게 살면 되는 것이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지금이 시각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는 일이며,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지금’을 강조한 이 말이 나의 ‘새로운 인생길’의 나침반이 아닌가 생각한다. 봄이 오면 지리산 산수유꽃, 섬진강 벚꽃도 만개하고, 순천만 갈대들이 하얀 꽃대를 피울 것이다. 저문 빛 속에서 사각거리는 그 찬란한 꽃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