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 하루도 저를 통해 누구를 사랑해 주길 원하십니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저는 요즘도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겠다는 고백을 수시로 합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새벽기도 나올 때도, 시간이 날 때마다 고백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제가 너무 나약하고,
제가 여전히 가지고 있는 육신의 욕구와 충동들을 계속해서 느끼니까
할 수 있는 방법이 믿음의 고백으로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주님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속죄함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주님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속죄함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매 순간 주님 안에 거해야 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순종을 자신의 힘, 자신의 노력으로 하라고 하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조차 전적인 성령의 역사로 주님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께 귀 기울이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대로 살 힘을 주십니다.
저는 연약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순종하겠다고 작정하고 또 결심하며 나아갔습니다.
저는 연약해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순종하겠다고 작정하고 또 결심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저에게
“너는 너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냥 인정해라. 오히려 그것을 감사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결국 제힘으로 순종하겠다는 것이 정말 무익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저는 너무나 못돼서 감사합니다”라는 이상한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저는 너무나 못돼서 감사합니다”라는 이상한 고백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못된 저를 통해 예수님의 역사하심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제 고집과 어리석음, 육신적인 연약함과 속물적인 근성 전부 그대로 있는데도 목사로서 설교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제가 그 모든 것을 다 해결하고 어떻게 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육신에 끌려가지 않고 주님 뜻대로 살 힘을 주실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제가 뭔가 그럴듯한 좋은 일을 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주님이 하신 것 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주님,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육신에 끌려가지 않고 주님 뜻대로 살 힘을 주실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제가 뭔가 그럴듯한 좋은 일을 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주님이 하신 것 입니다.
저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주님이 하셨다는 간증의 삶을 살아갑니다.
- 내 안에 거하라, 유기성
† 말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장 20절
† 기도
주 예수님, 어리석고 연약하고 속물인 제가 스스로 할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 내 안에 거하라, 유기성
† 말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장 20절
† 기도
주 예수님, 어리석고 연약하고 속물인 제가 스스로 할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살아서 예수님 뜻대로 살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안셀무스(Anselm)는 스콜라 철학의 창시자이자 하나님의 실존을 대중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습니다.
다음은 안셀무스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쓴 「왜 하나님은 사람이 되셨는가?」(Cur Deus Homo?)라는 글입니다.
『하나님은 왜 사람이 되셨는가?
유능한 화가도 그림을 망치면 캔버스를 버리고 다시 그린다.
누구보다 유능한 화가인 하나님은
왜 스스로 망친 캔버스가 되기를 선택하셨는가?
캔버스의 일부분이 되어 찢기고 버림받는 고통을 참으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시고, 가장 가치 있게 여기셨다.
그렇기에 망가진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버리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서라도 구원하고자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이유,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더’ 할 수 없는 온전한 사랑 그 자체입니다.
가장 귀한 희생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신 주님께 내 모든 사랑을 드리며 평생의 구주와 주님으로 섬기십시오. 아멘!!!
주님, 사랑의 마음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잊지 않게 하소서.
가장 귀한 희생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신 주님께 내 모든 사랑을 드립시다. <김장환, 나침반 출판사>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더’ 할 수 없는 온전한 사랑 그 자체입니다.
가장 귀한 희생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신 주님께 내 모든 사랑을 드리며 평생의 구주와 주님으로 섬기십시오. 아멘!!!
주님, 사랑의 마음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잊지 않게 하소서.
가장 귀한 희생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신 주님께 내 모든 사랑을 드립시다. <김장환, 나침반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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