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시간에 의해 생긴 음영과 굴곡이 있다. 시간의 지배 아래서 제 삶을 꾸리는 까닭이다. 탄생과 죽음도 시간 속에서 겪는 실존 사건이다. 이 시간은 균질하지 않으며 그 속도와 길이와 느낌도 제각각이다.
지금 나는 “시작보다 끝이 더 많아지는” 인생의 오후에 당도했다. 설렘과 희망으로 시작하는 아침은 저 멀리 사라지고 없지만 지금 당도한 이 ‘오후’가 그다지 싫지 않다. 안타까운 건 오후의 시간이 빠르다는 점이다. 손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는 듯 시간이 줄어든다. 더러는 오후의 빛 속에 서서 슬픔과 무無 사이에서 서성이는 내 그림자를 보고 놀라기도 한다.
고대 인도 경전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다.
“벌들은 사방 여러 나무와 꽃에서 그 즙을 가져다가 하나의 꿀로 만들지 않느냐. 꿀이 만들어지고 나면 ‘나는 이 나무의 즙이오’ 나는 이 꽃의 즙이요‘하는 개별 의식이 없다.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든지, 그 무엇이든 모두가 그 존재가 된다. 그 아주 미세한 존재, 그 존재가 곧 진리이다. 그 존재가 바로 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보리수나무에서 열매 하나를 따오라고 한다. 아버지의 말대로 그것을 쪼개고, 그 속에 든 씨앗 하나를 또 쪼개어 본 아들은 그 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네가 볼 수 없는 미세한 것, 그 미세함으로 이렇게 큰 나무가 되어 서 있는 것을 보아라. 그 존재가 곧 진리이다. 그것이 바로 너다.”
가장 놀라운 건 진리의 설명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바로 너다’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토록 간명하게 우리를 서로에게, 또 나를 우주에 연결하는 문장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개개인과 모든 동식물과 자연물 하나하나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직관적으로 일깨우고 있다. 작은 모래알 속의 나이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어느덧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첫날 새벽 미명의 시간, 깊은 명상에 잠겨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을 들여다본다. 삶 속에서 내가 볼 수 없는 미세한 것, 그 미세함을 나는 깨닫지 못했다. 그러니 인생의 수레바퀴에는 스쳐간 감회들, 빛과 어둠, 기쁨과 약동들, 허무와 불안이 섞여 만든 부피가 가득 묻어 있다. 그동안 나는 일상의 조촐한 일들 작은 보람과 기쁨만 보았지, 이웃의 아픔을 보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 했다. 행동은 몸으로 하는 것이고, 말은 입으로 하며, 생각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건 내가 몸소 몸과 입과 마음을 부려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한다. 모든 행위의 결과는 오로지 나로부터 비롯되는 ‘존재의 진리’에 있다는 뜻이다.
강물은 언제나 평온하게 흐른다. 스스로 어디로 가는지 잘 알고 있다. 정작 나는 인생의 맛,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고 살았다. 봄가을을 일흔 번을 훌쩍 넘기고 살아 보니 그나마 어렴풋이 인생의 윤곽을 그려볼 수가 있게 되었다. 무지와 욕망,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망 속에서 헤맨 게 바로 나인 것이다. 이제 이웃이 보인다. 작은 것이지만 그들과 나누고 함께 살고 싶다.
존재가 진리이니 그것은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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