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잠시, 입동을 지나자 매서운 한파가 몰려왔다. 11월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저무는 계절, 하루가 다르게 어둠이 빨리 찾아오고, 싸늘한 바람에 마음도 심란해진다.
집 근처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뒤적이며 간간이 떠오르는 착상들을 종이에 끼적이고 있었다. 이처럼 자신만의 시간 속에 사색의 나래를 펼치는 자유로운 시간은 감미롭다. 한 점의 죄의식도 없이 시간의 호젓함에서 빈둥거리며 흘려보내는 순간 나를 잊고 시간을 잊는다.
시간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정보화시대라지만 요즘 인생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아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시간병(Time-Sickness)’에 걸린 걸까? 시간 병은 시간이 달아나는 것 같아 초조함을 느끼는 현상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가질 수 있는 건 시간이다. 시간은 나를 그악스럽게 거머쥔 채 흐른다. 새벽인데 금방 저녁이 오고, 월요일인가 싶더니 어느새 토요일이다. 하지만 시간의 속도에는 차이가 있고, 빠르게 흐르는 시간은 어떤 자원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오늘 사이에 놓인 시간이 무겁게 압축되어 가슴을 짓누른다. 어떤 시간은 꿀처럼 달콤하고, 어떤 시간은 담즙만큼 쓰다. 인생에서 겪은 시간은 예속이고 은총이며 저주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의식하며 살지만, 시간의 주인은 아니다. 시간의 주인은 항상 시간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동무들과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닐 때는 지루할 정도로 느리고 따분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 빠른 시간의 횡포에 엄습해 오는 허무감을 느낄 때도 있다.
며칠 전 고교 동창 친구가 심정지로 갑자기 죽었다는 부음을 듣고 펄썩 주저앉은 채 일어서질 못했다. 속마음을 스스럼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열흘 전 만나 식사를 같이했고 사흘 전 아침에도 전화를 걸어와 12월에 눈 덮인 한라산을 오르자던 그가 이렇듯 먼 길 떠나다니, 꿈을 꾸듯 믿어지지 않았다. 남기고 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시간의 흐름에서는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라는 걸 절감했다.
야구에서 높은 타율을 자랑하는 선수는 타석에서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날아오는 공을 최대한 오래 바라보면서 방망이를 휘두른다. 공이 포수의 미트에 들어가는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투구가 어디로 오는지 정확하게 판단해서 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시간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이다. 중국 고사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스승 아래 제자 둘이 있었다. 둘은 서로에게 경쟁자 의식이 존재하고 있어서 사사건건 의견이 충돌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다른 제자에게 말했다.
“바람이 부니깐 나뭇가지가 움직이네.”
그러나 다른 제자가 정색하며 말했다.
“식물인 나무가 어떻게 혼자서 움직이겠어. 저것은 나무가 아니라 바람이 움직이는 거야.”
움직이는 것은 바람이다. 아니다 나뭇가지가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말싸움이 큰 싸움으로 발전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스승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나뭇가지도 아니다. 바람이 불고 있는 곳은 마음속에 움직이고 있는 너희 마음이다.”
어떤 것이든 마음의 문제다. 정작 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드러남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깊이’라고 했다. 그런 시간이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한데, 정작 시간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
추수가 끝난 빈 들판, 로버트 오웰의 우수 어린 눈빛 같은 하늘, 조금은 수척해 보이지만 슬퍼 보이지 않는다. 이제 곧 겨울이 오니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여름내 분별없는 헛된 약속들, 감정의 겉치레들, 연민과 미련을 지는 낙엽과 함께 모두 떨어버리고, 조금씩 가벼워져야 한다. 석양을 등진 갈대밭의 억새는 하얀 꽃잎을 찬 바람 불어오는 겨울이 오면 날려버릴 줄을 안다. 씨앗을 털고 비대해진 마른 줄기도 풍장 하듯 바람에 맡긴다.
시간에 쫓기는가, 시간을 다스리는가. 아니다.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게 아니라 문제의 근원은 마음의 중심이다. 시간은 신념이다. 신념은 명사이면서 동사다. 신념은 실천하면서 얻어지는 것이지 말로써 얻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은 끝없이 도전하는 삶보다는 현실에 타협하면서 적당히 살아온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 가난한 11월을 나는 사랑한다. 그 들판에는 시간의 결핍 속에서 느끼는 충만감, 부드러운 우수와 쓸쓸한 해방감, 그런 체념의 그림자와 새봄을 기다리는 설렘의 기이한 빛이 서려 있다. 아깝게도 흘러가 버린 세월을 후회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갔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에는 남은 날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 이런 덧없는 인생을 인디언들은 ‘천 줄기 바람’이라고 명명했다. 어차피 인생은 정처 없이 흘러가는‘천 줄기 바람’이다.
인생의 중요한 부분은 시간이 아니고, 순간이다. 순간을 의식하고 즐기면서 단순하게 살련다. 제주 한라산 선작지왓 평원에서 끝없이 펼쳐진 풍경 너머에서 자신을 보고, 그대로의 삶에 만족하는 게 앞으로 남은 인생의 덕목이지 싶다. 이제 살아가는 이치를 조금은 알 듯하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봄은 온다는 것을. 앞으로 시간을 넘어 넉넉한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걸어갈 것이다.
이제 한 달이 지나면 여의주를 문 해가 새해의 테이프를 끊을 것이다. 그 해가 더 찬란하게 보인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