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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하나님이 살아 계신 증거는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by 안규수 2024. 1. 24.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0^ 
 
오늘도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  하루 저를 통해 누구를 사랑해주길 원하십니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 일로 두 가지 은혜를 받은 적이 있다.
하나님께 맡기게 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던 그 자체가 은혜였다.

믿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봐야 하고, 
그러려면 내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그리 어렵진 않은데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맡겨야 하는지 몰라서 어려워하기도 하고, 
맡긴 후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올바르게 반응하지 못하기도 한다.

먼저 할 일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지만, 실은 맡긴 후가 더 중요하다. 
하나님께 실제로 어떻게 맡기는지, 
또 맡긴 이후에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누군가에게 물건을 맡길 때 어떻게 하는가? 
그것을 건네며 “맡아주세요”라고 한다. 
문제도 그렇게 맡기면 된다.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로 자세하게 말씀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라는 말씀에서 보았듯이, 
문제가 생겨 기도해야 할 때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게 불안, 염려다. 
‘이거 어떻게 하지. 어쩌면 좋을까?’ 
걱정하며 계속 발만 동동 구르다 기도까지 연결이 안 되는 것이 문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7,8

성경은 염려를 맡기라고 권고하면서 하나님이 돌보신다고 약속한다. 
곧이어 다음 구절에서 염려에 대한 영적 지식을 준다. 
마귀가 사자처럼 울며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한다.

그런데 앞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염려다. 
그러면 마귀가 삼키려고 찾는 자는 염려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염려는 마귀가 삼킬 수 있는 안 좋은 상태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설교를 듣고도 우리는 염려한다. 
하나님께 맡길 때 가장 먼저 만나는 난관은 염려와 걱정이 확 밀려올 때 어떻게 기도로 연결시키냐는 것이다.

염려가 발생하면 나는 운전할 때 차 안에서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고 소리도 지르고, 찬양도 부른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 도와주세요. 인도해주세요”,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세요”, “살려주세요” 
이렇게 기도가 나오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를 놓치지 말고 내 상황을 하나님께 정확하게 말씀드려야 한다. 
물론 하나님은 다 아시겠지만 그래도 내 입술로 상황을 말씀드려야 한다.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천천히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동안 정리가 되는 경험을 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어려움이 왔든지, 현재의 내 상황을 기도로 하나도 빠짐없이, 천천히, 
그리고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대로 정확히 하나님께 말씀드리자.

일단 이렇게 기도로 연결이 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흐름을 탄 것이니 잘한 것이다. 
이 부분을 익숙하게 해야 한다.

혹시 이렇게 기도하지는 않는가? 
“하나님, 이번에 이 문제만 해결해주시면 제가 헌신할게요”, 
“이번만 도와주시면 정말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을게요” 등 
주님과 협상이나 거래를 하듯 이거 하겠다, 저거 하겠다 하는 기도.

나 역시 그런 기도를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큰 어려움을 당했을 때는 그런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기도하도록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

“하나님, 지금 이런 상황입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대로, 해결해주시는 대로, 
아니, 인도하시는 대로 제가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그렇게 따르겠습니다.”

맡길 때 하나님 앞에 제한을 둔다면 그것은 맡기는 게 아니다. 
내가 ‘A 해주셔야 한다’, ‘B 해주셔야 한다’ 
이렇게 결정하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낙심이 오고 
“하나님, 제가 이렇게 했잖아요”라며 원망도 나온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내가 생각한 그 가운데 있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더 놀라운 뜻과 인도하심이 있었다.

그러니 좀 힘들어도 이렇게 해보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래,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주시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법이 가장 좋은 거지’ 이렇게 생각하고, 
그 마음을 붙잡고 내 입술로 고백한 다음 그렇게 결정하라. 이것이 맡기는 것이다.

어떤 조건과 제한도 두지 말고, 
‘하나님이 어떤 결정을 하시든지 저는 따르겠습니다’ 하고 그냥 다 하나님께 맡겨라.

<편안한 말씀식당> 장일석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고전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연구 중심인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VU Amsterdam) 미술사 교수 한스 루크마커(Hans Rookmaaker)가 
쓴 대중을 위한 미술사의 중요 순간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19세기 일본을 대표하는 천재 화가 후쿠사이에게 하루는 죽마고우가 찾아와 수탉 그림을 부탁했습니다. 
후쿠사이는 그동안 수탉 그림을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어 1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1주일이 지나고 친구가 찾아오자 후쿠사이는 다시 약속을 미뤘습니다. 
그러나 2주 뒤에도, 한 달 뒤에도 수탉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미루는 날짜가 길어져 어느덧 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후쿠사이의 죽마고우는 크게 실망해 후쿠사이의 작업실로 찾아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림을 그려주기 싫으면 거절하면 되지 왜 시간을 낭비한단 말인가?”
후쿠사이는 멋지게 그려진 수탉 그림을 친구에게 건네며 작업실 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그동안 습작한 수탉 그림을 친구에게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작품에는 입이 달려 있지 않아 변명할 수 없기에 3년이 걸려도 연습할 수밖에 없었네.”

루크마커 교수는 이 일화에 감명을 받아 책의 제목을 후쿠사이의 대답을 응용해 
「예술에는 변명이 필요 없다」(Art needs no justification)라고 지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에게 변명이 아닌 증거로 보여줘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는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잘못에 대한 변명보다는 변화된 분명한 삶으로, 충만한 기쁨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주십시오. 아멘!!!

주님, 변명하지 않는 변화된 삶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게 하소서.
충만한 기쁨과 변화된 삶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증거합시다. <김장환, 나침반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