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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너는 바라는게 너무 많아. 아냐 내가 바라는 건 하나야

by 안규수 2024. 3. 6.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 하루 저를 통해 누구를 사랑해 주길 원하십니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로 표현합니다.
신랑과 신부의 관점으로 보니 구약의 많은 부분, 
특히 어렵게 여겨지는 예언서의 많은 부분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을 음행한 여인으로 비유합니다.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_호 2:7,16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_렘 31:32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을 아내로 대우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어리석게도 남편 되신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갔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불같이 화를 내시는 모습으로 묘사된 부분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런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생각합니다. 
스스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이 왜 그러시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_출 34:14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_슥 8:2

그런데 이 말씀을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읽으면 달리 읽힙니다. 
어떤 아내가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데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면서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어떤 남편이 아내가 외도를 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 있습니까. 
만약 그런 반응을 보인다면 그 관계에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란 독점적인 관계입니다. 
“나는 당신만을 사랑하니 당신도 나만을 사랑하라”고 서로 언약을 맺는 배타적인 관계입니다. 
다른 사람이 절대 끼어들 수 없는 한몸의 관계입니다.

그런 사랑의 관계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는데 “하나님이 너무 무섭다, 심하다” 
이렇게 반응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나 모르는 것입니다. 
고멜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호세아 선지자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음란함을 버리고 본 남편에게로 돌아오라는 
에스겔, 이사야, 예레미야의 호소는 주님의 안타까운 음성이었습니다.

<기도를 송두리째 바꾸신 예수 그리스도> 박리부가

사실 글의 제목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노래의 한 부분입니다.
노래를 들으며 마치 우리가 주님한테 말하는것 같았습니다. 
"주님 내게 바라는게 너무 많으신거 아닌가요??"
그런데 주님은. 아냐. 내가 바라는건 하나란다..
사랑 노래일진데 주님이 생각나고 우리의 부부관계에서도 
언약을 맺은 배타적인 관계, 한몸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길 원합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딤후 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천국은 이런 곳이다」를 비롯해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발표한 작가이자 빈민구호 운동가인 
랜디 알콘(Randy Alcorn)은 무신론자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 한 대학의 윤리 강의를 청강했습니다.
강의를 맡은 교수는 무신론자로써 매우 뛰어난 석학이었습니다.
강의 내용은 매우 유익했지만 랜디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교수는 어떤 말이든지 단정을 짓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나쁜 일이다”라는 말을 할 때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나쁜 일인 것 같다”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했습니다.
상황과 시대에 따라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될 수 있고, 때로는 그 경계가 애매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한 가지 사건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으로 접근할 뿐 ‘옳고, 그름’이나 책임질 말은 철저히 피했습니다.
랜디는 이때의 경험으로 사람은 결코 선과 악을 바르게 구분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만든 모든 기준은 시대와 주관에 따라 변하는 허울입니다.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성경 말씀이며, 우리를 바르게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나의 생각과 지식으로는 세상의 옳고 그름을 결코 바르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유일한 진리는 오직 성경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진리를 따라 살며 세상의 모든 유혹을 뿌리치십시오. 아멘!!!

주님, 하나님의 말씀을 차근차근 공부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게 하소서.
내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진리는 오직 성경뿐임을 고백합시다. <김장환, 나침반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