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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감각주의와 소비주의의 끝은 고독과 허무, 절망입니다. 탐스러운 치즈가 있는 덫에 들어가면 죽게 됩니다

by 안규수 2024. 3. 8.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 하루도 저를 통해 누구를 사랑해 주길 원하십니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나는 난임으로 제법 가슴앓이를 했다.

첫아들을 10년 만에 만났다.

아이를 낳고 오랜 시간 모유 수유를 하면서 자궁 건강이 많이 좋아져, 
둘째는 다를 거라 기대했다. 
기대처럼 둘째가 빨리 찾아왔다. 
그런데 7주 차에 유산을 했다. 
그때의 슬픔과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후로 2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 둘째는 찾아오지 않았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크게 낙망한 적이 있었다.

가장 소중한 골방 기도 자리에 나아가도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니, 주님을 향한 서운함과 원망이 있었다. 
그 마음을 쏟아내며 실컷 울었다. 
그런 나를 아버지께서 불쌍히 여기시며 안아주고 토닥여주시는 듯했다. 
그리고 기도 끝에 성령께서 예수님을 보게 하셨다. 
내 안에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이 가득 찼다.

‘내가 주님 앞에 서운할 게 있는가.
감히 아버지께 원망할 것이 있는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고초를 당하신 예수님 앞에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얼어붙어 나를 주장하지 못했던 복음이 다시 살아나 내 영혼을 붙들었다. 
서운함과 원망이 죄송함과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눈물이 복받쳤다. 
내 시선이 ‘임신’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옮겨가자 타는 목마름이 순식간에 해갈되었다.

주님은 아직 둘째를 주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문제에 내 갈망을 두지 않는다. 
아버지께 믿음으로 소원을 구하되, 그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내게 가장 중요한 갈망의 대상은 주님이시요, 하나님의 나라와 의다.

내 시선이 온전히 주님께 머무를 때, 문제로부터 자유해진다.

주님을 갈망할 때 영혼이 살아난다. 
문제로부터 건짐을 받는다. 
최고의 해답을 얻으며, 문제를 초월하는 생수의 강이 다시 흘러나오게 된다. 
내 영혼의 만족을 원수가 감히 빼앗지 못한다.

요한복음 4장에, 5명 넘게 남자를 만났지만 
끝내 사랑을 찾지 못한 우물가의 여인에게 예수님이 찾아가신 장면이 나온다. 
그 주린 인생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영생토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겠노라 말씀하신다. 
바로 예수님 자신이셨다.

우리에게도 그분 자신을 주셨다.
영생토록 목마르지 않은 진정한 배부름을 주셨다. 
우린 참으로 복 있는 자다!

- 육이 죽고 영이 사는 40일 작정기도, 유예일

† 말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히브리서 12:2

† 기도
하나님, 완전한 공의이신 예수님을 통해 제게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유일한 갈망이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눈앞의 문제를 초월하는 믿음과 은혜가 부어질 줄 믿습니다.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주님 안에서 평안하게 해주세요.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대상 16:27 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즐거움이 그 처소에 있도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천재 여류작가 프랑수아 사강(Francoise Sagan)은 
말년에 마약 복용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강은 이른 문학적 성공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사치와 낭비, 
잦은 이혼과 도박, 마약 중독으로 노년에는 완전히 파산해 아들 집에 얹혀살았습니다.
사강은 끝까지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18살에 프랑스의 문학비평상을 수상하며 
‘지나칠 정도의 재능’을 타고났다고 평가받았음에도 작품 활동을 오래 이어가지 못하고 재능을 썩혔습니다.
저명한 문화비평가인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은 현대인들의 쾌락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오직 즐기기만을 원합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말초적인 감각의 충족이기 때문에 영혼의 깊은 곳을 채우지는 못합니다. 
그 결과 아무리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도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감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과 영성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감각주의와 소비주의의 끝은 고독과 허무, 절망입니다.
탐스러운 치즈가 있는 덫에 들어가면 죽게 됩니다. 
주님의 빛이 비추이는 넓은 들판으로 나가면 삶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기쁨과 은혜가 가득합니다.
내 영혼을 좀 먹는 가벼운 즐거움을 끊어버리고 영혼의 깊은 곳을 만족시키는 주님의 기쁨으로 채우십시오.
 아멘!!!

주님,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주님의 은혜로 가득한 삶을 살게 하소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주님의 기쁨으로 가득 채웁시다. <김장환, 나침반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