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7~80년대 우리의 문학은 분단문학이었다고는 하지만 반공주의라는 도식화된 틀 안에 갇힌 불구의 문학이었다. 그 불구성을 극복하면서 통일에 대한 전망 쪽으로 방향전환이 시작된 것은 80년대 초반 나타난 조정래의 태백산맥(1983년 현대문학 연재 시작)이다. '태백산맥'의 1부가 1987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될 때, 임헌영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수난받는 민중상’에서 ‘이념을 지닌 역사적 당위성으로서의 민중상’을 부각시키려는 분단문학으로 적극적 방향전환을 시도한 작품이다. 분단을 혼란과 관념론적으로서가 아니라 민족사적 갈등과 모순 구조로 인식하는 시각에서 '태백산맥'은 창조되고 있으며 이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처절한 민중사적 대실록이다.
2009년, 조정래는 등단 40년을 기념하여 자전적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시사IN북)을 펴냈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250여명의 젊은이들에게 받은 질문 500여개 가운데 84개를 추려 답하는 형식으로 쓰인 이 책에는 작가의 내밀한 가족사와 화가를 꿈꾸던 고교시절 등 인생의 궤적과 문학관과 인생론이 망라되었다. 특히 태백산맥 등의 집필에 얽힌 비화는 오늘의 작가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그는 이 책을 통해 80년대 초까지는 직접 체험한 것을 써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깨고,오히려 ‘직접 체험한 현실’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하는데, 바로 그 결심이 그를 작가로서 이 시대의 새로운 양심, 새로운 도덕의 중심에 세웠다. '황홀한 글감옥'이 나온 뒤 그는 여러 매체에 인터뷰를 통해 자식에게도 차마 하지 못한 제 삶의 얘기들을 진실되고 솔직하게 썼다 했고, 당신의 인생을 정리한 유언이 될 수도 있다면서 이 책이 이 시대를 사는 미래의 주역들에게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진실되고 솔직한 글쓰기, 즉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작가 본인이 화자가 되어 실존의 인물과 사건을 다루는 장르가 에세이다. 조정래가 '태백산맥'에 나타난 인물들의 실명을 토설한 것도 이 에세이집을 통해서다. 부친이었던 시조시인 조종현이 범일 스님으로, 사촌형이 김범우로, 빨치산 출신 경제학자 박현채가 소년전사 조원제 등으로 그려졌다는 것을 고백했고, 이들 실존인물을 모델로 할 때, 염상진과 같은 허구의 인물을 그려내는 것보다 열배는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당사자의 질타와 불만족, 또는 삼엄한 시대였던 만큼 사회적 불이익까지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알베르 까뮈는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을 통해 자기는 가장 쓰고 싶은 글을 아직 쓰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 그가 심혈을 기울여 쓰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떠난 유고작이 그의 가족사였던 것을 보면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 해도 실존의 주변인물을 다루는 일이 가장 난해한 작업임을 실감케 한다. 분단문학이 70~80년대를 관통했다면 90년대엔 분단을 주제로 한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해 2000년대 초반까지 대히트를 쳤다. 그렇지만 분단이 본격적으로 다뤄진 수필은 아직까지 없었다. 전쟁 세대들이 목격자, 경험자의 입장에서 개인적 아픔을 토설한 몇몇 작품은 있지만 수필을 통해 분단의 불구성을 극복하려고 시도한 작품은 전무하다. 이는 수필의 보수성 때문일 것이다. 수필가들은 국가보안법에 위반되는 내용을 써서 위험에 몰릴 용기나, 가혹한 시대를 반추하여 상처를 덧낼 용기가 없었던 걸까? 그런 자성이나 질책보다는 수필이 실명의 문학이라는 한계성을 문제 삼아야 할 것 같다. 조정래 선생이 '태백산맥'을 출간한 지 20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에세이를 통해 거기 등장한 인물들의 실명을 밝힌 것만 봐도, 수필은 소설이나 시보다 시대의 문제를 거론함에 있어 발화시기가 조금은 늦어질 수밖에 없는 장르인 듯하다.
특집이 나가자, 분단이란 소재는 이제 유행이 지난 것 아니냐고 넌지시 말하는 독자가 있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분명한 것은 아직도 우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점이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정치적 이념이나 역사관이나 지역주의 등으로 개개인을 어느 쪽인가 구분지어 판단하려는 사회적 갈등이 중증의 질환을 드러내고 있다. 박근혜 정부 2기 내각 지명자 검증과정에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질환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실감한다. 이 모든 것은 분단된 조국과 결코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위조된 자기에서 벗어나기
55호 특집작가 안규수 선생은 한때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유신개헌 때, 햇병아리 공무원으로 출발한 그는 마을회관에 주민들을 모아놓고 개헌만이 살 길이라고 주민들을 설득하며 찬성투표를 독려했고, 광주 5・18사건을 지켜보며 김대중 선생이 빨갱이가 아닐까 의심했었다고 한다.
나는 5060반공세대다. 초등학교 때부터 반공, 멸공을 입에 달고 살았다. 거기다 20대 한창 젊은 나이에 월남에 파병되어 소위 베트콩이라는 공산주의자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또한 숱한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 '에세이스트' 49호, 「이런 고백」 부분
필자도 어린 시절, 공산당은 온몸에 뿔이 가시처럼 돋은 괴물이거나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야수라고 생각했지, 사람의 형상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안 것이 언제쯤이었을까. 그들이 바로 우리의 핏줄이고 동포라는 것을, 그들도 우리처럼 가족을 돌보고 사랑을 한다는 것을 안 것은 언제쯤이었을까.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점차 알아갔지만, 막연히 아주 악독하고 나쁜 사람들이라는 생각엔 변함없는 상태로 성장기를 보냈다. 그건 너무나 당연했다. ‘공산당은 무조건 나쁘고 위험하고 잔인무도한 무리니까, 에비! 얼찐 마라. 그들의 사상이나 이념 따위는 알 필요도 없다.’ 우리가 배운 것은 그런 식이었으니까.
그들의 이론서에 대한 호기심 자체가 불온하다는 뿌리 깊은 편견은 화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책적인 교육에 의해 5060세대들의 이성은 가공조작되었다. 화자는 어느 날, 아들의 방에서 김일성 주체사상에 관한 글을 발견했다. 아들은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다 방위병으로 근무하기 위해 순천 집으로 내려와 머물고 있었다. 그때 그가 아들을 질책하는 말은 단순하다. “너 이놈, 네가 빨갱이냐?” 이 발언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성적 판단 주체나 지식 주체라기보단 교육에 의해 세뇌 위조된 이념적 포로에 가깝다. 화자뿐 아니라 그 시대 모든 부모가 그런 식이었다. ‘빨갱이’라든가, ‘좌파’라는 언어가 우리에겐 무지막지할 정도로 인간 이하의 저주와 형벌이 되어버린 지 오래고, 그렇게 오염된 그 말이 본래적 의미를 되찾을 기미는 별로 없어 보인다. 화자의 아들은 복학하여 서울로 갔고,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이한열이 쓰러진 그날 그와 함께 데모를 했고, 이한열 열사의 관까지 메고 광주에 다녀갔다. 하늘을 찌를 듯 울려 퍼진 그날의 함성은 마침내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그때 아들과 나는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나는 한 마리의 조롱새였다. 푸른 숲과 하늘이 정작 자신이 둥지를 틀고 훨훨 날아야 할 공간임을 알지 못했다. 새장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오히려 하늘을 날고 있는 새들을 조롱했다. 거친 산과 들보다 아늑한 우리 안이 편하다는 듯 살았고, 늘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인데,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날개가 퇴화해버린 한 마리의 조롱새는 새장을 나와서도 그 하늘을 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자신의 삶을 자유로이 선택하고 살아왔다고 믿고 싶지만,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의해 끝없는 미로와 같은 길을 걸어온 것이다.
― 안규수, 「이런 고백」('에세이스트' 49호) 부분
조작된 가치에 의해 조정 당한 삶을 살아왔다는 이 고백, 우리 시대 누구도 여기서 자유롭진 못할 것이다. 「이런 고백」 이전의 글들은 대부분 서정성이 짙은 작품들이었던 것에 반해 그 이후 씌어진 이번 특집 작품은 서사성이 두드러졌다. 서정성의 개념은 문학에만 한정해선 안 된다. 밀란 쿤데라도 말하지만 그것은 삶의 태도나 존재의 방식이다. 자신의 고유한 내면을 밖으로 들려주고 싶은 욕망으로 빛을 발하는, 자기애적 구현이 서정성이다. “오래 전부터 나는 젊은 시절은 서정적 시기라고 생각해왔다. 다시 말해서 한 개인이 거의 전적으로 자기한테 집중하고 있어서 주변 세계를 보지도, 이해하지도, 명료하게 판단하지도 못하는 시기 말이다. 이러한 가설(필연적으로 도식적일 수밖에 없는 가설이지만 도식으로서 내가 보기에는 적절한 가설)을 근거로 보자면, 미성숙에서 성숙으로의 이행은 서정적 태도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밀란 쿤데라 '커튼' 부분)” -물론 이러한 서정이란 자연을 아름답게 노래함으로써 현실을 망각하는 태도나 낭만적인 자기 동일성으로 단순화된으로써 철학적 물음이 빈곤해지는 구태의 서정을 가리킨다.
작가 안규수는 서정성의 번데기를 찢고 나오자마자 「이런 고백」을 통해 우선 위조된 자기의 껍데기를 벗어던졌고 이번 특집을 통해 격랑의 시대를 참혹하게 살아내면서 새로운 가치를 구현한 아버지의 삶을 부활시켰다.
그가 서정성의 번데기를 찢고 서사로 이행하기까지 그의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두 권력의 틈에서 불쑥 솟아난 복승적 인물
일단 「손가락 총」부터 읽어보자. ‘손가락 총’은 은어이면서 문학 언어다. 문학 언어는 사회적 제도나 집단의 문법으로부터 일탈하여 기존의 정치와 사회의 문맥 안에 해방의 길을 열어줄 익명의 공간을 포괄한다. 아감벤은 “우리의 임무가 분명히 인민들을 국가 정체성으로 재코드화하거나, 은어를 문법으로 구축하는 것일 수는 없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언어활동―문법(언어)―인민―국가라는 존재 사이의 연결망을 어떤 임의의 지점에서 끊을 때에만 사유와 실천은 시대에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안규수는 ‘손가락 총’이라는 언어를 재활용하지만, 저 낡은 기존의 의미망을 단호히 끊었다. ‘변기’가 뒤샹에 의해 ‘샘’이 되었듯이, ‘손가락 총’은 안규수에 의해 혼란기의 폭력과 무지한 원한과 복수라는 공식을 끊고, 삶의 타자성으로 방향 전환하여 남(타인)의 눈이면서 동시에 무수한 거울의 파편들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거울의 파편은 전체를 비출 수 없고 파편화된 이미지로는 전체를 복원할 수 없다. 그러므로 거울의 파편에 비춰진 나는 나가 아니지만 만약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거울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남 탓하지 말라, 다 내 탓이다. 원하도 복수심도 갖지 말라. 신세도 척도 지지 말라. 이렇듯 안규수의 손가락 총은 각자의 내면을 향하게 한다는 데 새로운 의미가 있다.
그는 모처럼 찾은 고향 어귀에서 뒷산 능선의 재 몬당 소나무가 사라졌음을 목도한다. 나무는 어둡고 슬픈 마을의 역사를, 마을에서 자행된 억울한 죽음을 수도 없이 지켜본 목격자이다. 또 다른 목격자들인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등도 다 세상을 떠났다. “비극의 목격자는 모두 사라졌고 나만 홀로 절해고도에 남겨졌다.”
불현듯 어떤 격정이 내 몸을 휩쌌다. 그 억울한 혼백들은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을까? 이제 안식처를 찾은 것일까? 흰 눈이 쌓인 재 몬당에는 황량한 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이제 누가 있어 그날의 비극을 증언할 것인가. 누가 그 수많은 원혼을 위무하며 씻김굿을 할 것인가. 허무가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손가락 총」 부분
모두가 사라져가는 이 허무의 인식으로부터 그는 새로운 세계로 건너간다. 이는 조정래가 광주 혁명의 자리에서 ‘직접 체험한 현실’을 쓰기로 결심한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의 기억은 다섯 살로 소급된다. 다섯 살의 목격자가 홀로 남겨졌다. 다섯 살이 뭘 알아? 천만에. 다섯 살의 기억이라면 그건 세상에 대한 첫 인상일 수도 있다. 총상을 입어 피범벅이 된 채 신음하는 사람을 보았고, 어머니가 그에게 물을 퍼다 먹인 후 혀를 차며 자기를 집안으로 황급히 끌고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무섭고, 이해할 수 없고, 참혹한 장면이 어린 그에게 각인되었다. 그에겐 그 상처의 현존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무대가 되는 지역 벌교. 대한민국정부 수립 2개월 뒤인 1948년 10월 여수에 주둔했던 14연대에 명령이 떨어졌다. 제주도 4・3 사건의 소요를 진압하러 가라는 것이었다. 당시 14연대 인사 담당이었던 남로당 계열 지창수 상사는 대대를 소집하고 ‘경찰이 우리를 죽이러 쳐들어온다(당시는 군과 경찰의 알력이 심했다)’고 하면서, 진압파병 거부하고 남북통일을 위한 인민군으로 행동할 것을 선동했고 이에 대부분의 대대원들이 동참했다. 10월 19일 밤에 봉기한 이들과 순천의 2개 중대 병력이 합세하여 여수와 순천은 물론 벌교와 구례까지 장악하였다. 이틀 만에 벌교의 읍사무소에도 인공기가 꽂혔다. 그 형벌과 저주의 땅이 바로 작가 안규수의 고향이다.
아버지는 대문 두들기는 소리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대문 밖에는 붉은 완장을 찬 낯선 청년들이 서 있었고 그들은 대문을 여는 아버지를 다짜고짜 연행했다.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가 끌려간 곳은 읍내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는데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끌려와 있었다. 그리고 곱게 물든 단풍잎이 갈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운동장 가로, 끌려온 이들의 가족과 구경꾼들이 운집해 있었다. 놀라서 아버지를 뒤따라온 어머니와 작은누나도 그 군중 속에 끼어 있었다.
-「손가락 총」 부분
운동장에는 재판에 회부될 사람들이 끌려와 있고 운동장 가에는 인민재판이라는 형식을 위해 강제 동원된 왈, 인민들이 운집해 있다. 반군들은 형식적으로라도 인민재판의 과정을 거쳐야 했으므로 주민들을 강제 동원했고, 주민들은 참석을 거부하면 사상이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낙인 찍힐까봐 어쩔 수 없이 구경꾼처럼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권을 행사하는 것은 강제 동원된 인민들이 아니라 이미 반군에 합류한 붉은 완장들이다. 그들의 ‘손가락 총’에 의해 재판에 회부된 사람들은 생과 사가 갈린다.
선고가 모두 끝나자 사람들은 곧바로 굴비 엮듯 묶여져 소화다리(부용교)로 끌려가 그 길로 모조리 총살당했다. (…) 다리 아래 갯바닥에는 시체가 질펀하게 널렸고, 바닷물은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고, 다리 양쪽에 둘러선 가족들의 통곡소리가 세차게 일렁였다.
-「손가락 총」 부분
아버지는 용케 살아남으셨다. 아버지는 머슴을 데릴사위로 들였었는데, 아버지가 구사일생한 것은 그 사위 덕분이었다고 한다. 곧 진압군이 들어오고 반군은 징광산(조정래의 태백산맥에는 진광산으로 표기되고 있지만 징광사澄光寺의 절명으로 미루어 징광산이 맞는 듯하다)으로 숨어들고, 이때부터 마을은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번에는 진압에 성공한 토벌군과 경찰들에 의해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경찰들은 반군(이하 산사람으로 지칭)에 가담한 자들과 죄 없는 그들의 가족들을 죽였고, 자의든 타의든 부역했다는 죄목만 붙으면 누구든 가차 없이 처단했다. 게다가 밤이면 산으로 숨어든 산사람들이 마을로 내려와 남자들을 잡아갔다. 마을의 주인은 밤과 낮으로 바뀌었다. 낮에는 경찰, 밤에는 산사람들이 마을을 공포에 빠뜨렸다. 그 혼란이 주민들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그들은 두 주인에게 순종하면서 갈대처럼 살 수밖에 없었다. 자칫 어느 한 쪽에 밉보이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오직 맹종만이 힘없는 민초들의 살 길이었다. 그때 동네 남자들은 밤이 되면 어린애와 노인만 빼고 모두 읍내 학교로 가서 잠을 자고 아침에 돌아와야 했다.
-「손가락 총」 부분
이 상황은 2년 여 계속되었다. 그 와중에 아버지를 살린 작은매형이 산사람에게 끌려가 재 몬당 소나무 아래서 죽창으로 살해 당했고 남편을 잃은 작은누나는 유복자를 낳은 뒤 실성하여 남편이 죽은 땅을 헤매고 다니다가 병사했다. 그들의 잣대는 무엇이었을까? 분명 그 마을의 유지는 아버지였고 데릴사위는 그 집 머슴이었으니 유지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역할이 바뀌었다. 데릴사위는 장인을 살릴 때 모종의 약속이라도 했던 것일까?
낮밤으로 교차되는 이중 권력의 지배 하에서 당시 벌교의 주민들은 스스로 힘과 의지를 가질 수 없었다. 거시적으로 보면, 인류의 역사란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반복적인 운동에 의해 모든 가치가 만들어지지만,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니라 차이의 반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1948년부터 1950년까지의 벌교는 이러한 거시적 차원의 긍정마저 용납할 수 없는 너무나 잔혹한 사건이었다. 단번에 전체를 바꾸려는 두 권력 사이에서 민중들은 무차별 희생되었다.
이 전란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그들의 죄목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죄란 무엇이었을까. 무자비한 총과 폭력 앞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나약함이 죄였을까? 마을 사람들은 느닷없이 닥친 핏빛 전란에 휩싸여 하루하루가 공포의 연속이었으나 고향을 등지지 못했다. 그 불안 속에서도 고향을 지키며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적응과 순종, 그것이 인간의 유한성이고 한계다. 그 한계가 죄일까. 사상이나 이념 따위는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이념의 파고는 아무 죄 없는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거나 삼켜버렸다.
-「손가락 총」 부분
이 작가의 특장은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분명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겪어낸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삶의 철학이 확고하다.
1) 놈(남) 탓할 것 없어, 모두 다 내 탓이제. 2) 놈한테 신세지지 말고, 척(원수) 지지 말어. 3) 넘어지면 벌떡 일어나 더 힘껏 달리면 돼.
원한과 복수심을 갖지 않기 위해선, 먼저 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좌절을 내려 놓아야 했을 것이다. 과연 그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시대적 혼란을 개인의 책임만으로 귀속시킬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피해 당사자인 아버지는 '남탓'하는 마음을 끊으라하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는 자신을 얼마나 벼리어 왔을 것인가. 그의 저 단순하고 명쾌하지만 어딘지 금욕적이며 초월적인 말, 끔찍한 고통과 절망과 체념의 시간이 농축된 슬픔의 간결한 언어, 그 배면에서 흘러나오는 서늘하고 쓸쓸한 아픔은 두 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말이라기보다 침묵의 빗장이다. 이는 제주민들이 4.3 사건을 겪은 뒤 보여주는 무거운 침묵과 맥을 같이 한다. ‘모두가 내 탓이다’를 깃발처럼 세우신 아버지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것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하셨다.
(아버지는) 읍내에 가다가 어린 학생이 탄 자전거에 치어 그만 넘어지면서 도로변 벼랑으로 굴러 떨어졌다. 읍내 외과의원의 의사는 환도 뼈가 탈골되었다고 바로 큰 병원으로 모시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냥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그날 밤에 가해학생 부모가 집으로 찾아왔다. 이웃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어린애가 그런 걸 가지고 뭘 찾아왔냐고 하시면서 괜찮으니 다신 찾아오지 말라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런 뒤 조용히 이르셨다.
“그 집 얘기는 입 밖에 내지 말어.”
― 「아버지」 부분
아버지는 또 자식들에게 귀가 아프도록 이르셨다. “놈한테 신세지지 말고, 척隻(원수) 지지 말어.” 아버지는 오랜 동안 침묵하며 술만 마셨다. 그는 의도적 침묵 속으로 자신을 유폐한 끝에 터져나온 말들에서 그는 이미 자기 구원을 실현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는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의지의 주체다. 하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권력은 정착과 정형화를 요구하며 유혹의 손짓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 내 탓이라는 말이 내부를 향해 있다면 신세도 척도 지지 말라는 이 말은 외부를 향해 있다. 곰곰이 음미해 보면 꽤나 난해하다. 타인을 괴롭히지 말고 은혜를 입었으면 반드시 보은하라는 교훈적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지만, 왠지 인간에 대한 아득한 거리감이 느껴져서 쓸쓸하고 아프다.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살이가 아닌가, 얼핏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주체에게 ‘남’이란 이웃이라기보다 혼란기에 느닷없이 출현한 기이한 형태의 “권력들”을 지시한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될 것이다.
아버지는 이유 없이 사위와 여식을 비참하게 잃었음에도 그런 걸 따져 물어선 안 되는 시대를 사셨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고스란히 가슴 깊은 곳에 끌어안은 채 세상을 뜨셨다. 사회적 제도에 저항 한 번 해보지 않은,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거창한 이념 같은 것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유순한 민초였던 아버지가 왜 그런 고통을 겪어야만 했는가?
총이 곧 법이었다. 원한과 복수가 그 총을 들고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던 세상에서 누군가의 심장을 구멍 낸 총알은, 시간이 지나 총을 쏜 그 자신의 가슴팍을 관통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혼돈의 아귀다툼 속에서 좌, 우 모두 미쳐서 날뛰던 그때,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죽여야 했던 당시의 그들을 누가 단죄할 것인가? 역사의 수레바퀴는 늘 죄 없고 힘없는 민초들을 가장 먼저 짓밟는다는 사실을 방증할 뿐이다.
― 「손가락 총」 부분
김훈은 삼국사기를 저술한 김일부의 문장이 떨어져 나간 목의 갯수만 챙길 뿐, 떨어져나간 목의 고통을 기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우리는 떨어져나간 목의 고통을 기록해야 할 의무 앞에 섰다. 이번 안규수의 특집은 바로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누가, 왜 던지는 돌인지도 모르고, 누구를 겨냥한 돌인지도 모른 채, 그저 길가다 우연히 그 돌을 맞고 우는 이들이여! 따져 물어야 하리라. 누가 던졌는가, 2014년 팽목항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고 절규하는 것도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민중의 결기 아닌가. 침묵은 미덕이 아니다.
권력이 작동하는 모든 지대, 즉 모든 것을 굳어진 틀로 고착시키려는 지배적 경향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결국 민중 개개인의 의지와 내적 혁명이다.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생산하는 긍정적 생성의 주체는 민중이었다. 민중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는 '아버지'라는 등장 인물을 통해 참혹한 혼란기에 어느 쪽의 권력에도 길들지 않고 오히려 두 권력 사이를 홀연히 빠져나와 그만의 삶의 철학을 구현하는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명징하게 형상화했다. 말하자면 이 주체는 역사의 두 권력(좌우)이 작동하여 생성된 변증법적 통합의 인물이 아니라 두 권력과는 무관하게 그 틈에서 불쑥 솟은 복승적 인물이다.이런 점에서안규수의 글은 탁월하며 미래 전망적이다.
세계는 죽어도 죽지 않는 아버지들의 건축물
아버지는 1890년대 후반에 가난한 집 4대독자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의 격랑을 헤쳐 온 우리의 대표적인 민초에 다름 아니다. 어려서 놋그릇 공장에서 일을 배웠고 서른 넘어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유기장이 되었고, 중년쯤에는 논 20여 두락 정도 장만하여 포실한 살림을 이루었으나 스테인리스가 범람하는 바람에 공장은 문을 닫아야 했다. 그는 동학 교도였다.
어릴 때 나는 어쩌다 새벽에 눈을 뜨면 졸린 눈을 비비며 이상한 정경을 멀뚱하니 바라보곤 했다. 그가 하얀 모시적삼을 입고 마루에 단정히 앉아 주문을 외고 있었던 것이다.
― 「아버지」 부분
동학의 교리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모두를 용서하는 쪽을 택하면서 초월적인 방식으로 당신의 삶을 새롭게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의 영향이었을까.
아버지는 읍내 가는 길에 어린 학생의 자전거를 피하려다 벼랑으로 굴러 떨어져 환도 뼈가 탈골되었다. 큰 병원으로 가라는 시골 병원 의사의 권유가 있었음에도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와 몸져누었다. 아버지를 큰 병원으로 모시려면 땅을 팔아야 했다. 그러나 그 선택권을 쥔 큰아들이 아내의 반대에 부딪혀 갈등하는 중에 아버지는 결국 임종에 이르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애지중지하던 쉰둥이 막내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는 임종 직전에 눈빛으로 말한다. ‘아들아, 미안하다. 어린 널 두고 가기가 힘들구나.’ 소리 없는 그 말은 천둥처럼 크게 다가왔다는 이 역설은 미학적 감동을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에서 달리기하다가 넘어져 꼴찌로 달리는 것을 보고 잘 한다고 소리치며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었던 아버지는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에게 이르셨다. “놈(남)한테 뒤지지 말어. 글고 아까처럼 넘어지면 벌떡 일어나 더 힘껏 달리면 돼. 우리 막내 오늘 너무 잘했다.” 넘어진다 해도 주저앉지만 말아라, 다시 일어나 달리면 된다. 이 대목에서 아버지의 캐릭터는 더욱 분명해진다.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달리기 대회이므로 달리는 것이 목적이다. 삶이란 이러한 달리기 대회 같은 것일지 모른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소 풀 뜯기러 나가는 모습을 대견하게 지켜보며 이르셨다. “몸조심 허야 쓴다.” 무엇보다도 몸이다. 생명이 가장 우선이다. 이 또한 살아남은 자의 언어다.
그때부터 나는 한 인간으로서의 내 몫의 책무를 서툴지만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떠나신 뒤, 나는 생의 고비마다 당신의 음성을 들었다. 당신께서 나를 일으켜주셨고 때로 내 손을 잡아주셨다. 아버지란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다. 이 세계는 어쩌면 죽어도 죽지 않는 아버지들의 건축물인지 모른다.
― 「아버지」 부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질서와 가치와 도덕과 윤리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누 천 년 이어져온 아버지들의 건축물이다. 그 건축물은 낡았어도 다만 조금씩 개보수를 할 수 있을 뿐 전면적인 재건축은 불가능할 것 같다. 왜? 너무 거대하고 오래되었기 때문인가. 이미 인간 개개인이 그 건축물에 알맞게 개조되어 왔기 때문인가. 그보다 그것은 인간의 유전자로 건축된 때문이고 그래서 생명이 이어지는 한 완전하게 소멸될 수 없음이다.
시대의 희생양
「두 여인」은 낳아주신 어머니와 길러주신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아버지에 의해 이성이 형성된다면 감성의 형성은 어머니에 의해서일 것이다. 호칭이 자칫 혼란을 불러올 듯하여 먼저 양해를 구한다. 이 글에선 낳아주신 분을 엄마로 길러주신 분을 큰엄마로 표기하였다. 큰엄마는 4대독자인 남편이 40이 넘도록 외아들만 두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자발적으로 남편에게 시앗을 들이라고 권유했다. 그 시대였기에 그런 결단도 가능했겠지만 얼마나 고통스런 선택이었을 것인가.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림없는 얘기다. 요샌 아들이 하나뿐인 집이 수두룩하므로 독자라는 개념조차 사라졌다. 큰엄마는 새 여인을 통해 얻은 남편의 아들을 당신의 손으로 키웠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작가 안규수이고, 큰엄마는 당신 배로 낳은 친아들보다 그를 더 끔찍하게 아꼈다. 그녀는 사랑스런 막내아들을 얻은 대신, 남편을 밤마다 새 여인에게 보내야 했다. 앞서 「손가락 총」에선 아버지와 매형의 목숨이 교환된 결과를 낳았고, 「두 여인」에선 큰엄마와 엄마 사이에 아들과 남편이 교환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두 작품에서 반복되는 이런 모순적 상황의 포착에 의해 특집 작품 네 편이 긴밀한 개연성을 확보하면서 그 시대상을 깊숙이 전반사한다.
화자는 엄마의 과거에 대해서 엄마에게 직접 들은 바가 없고 큰엄마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깊은 신뢰의 관계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화자가 태어난지 두이레가 지나자 엄마의 젖이 말라 버렸을 때도 정작 애가 타서 적극적으로 움직인 사람은 큰엄마였다. 동네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동냥젖을 얻어 먹였고, 홍역이 퍼져 동냥젖을 얻어 먹일 수 없게 되자 쌀죽을 쑤어 먹였다. 배고파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밤을 새운 것도 큰엄마였다. “죽을 고비를 넘긴 나는 온 집안의 지극한 사랑 속에서 자랐다.” 특히 큰엄마의 무릎에서 옛날 얘기를 듣는 등, 사랑을 독차지했다.
다음은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란 막내의 전형적인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진 대목이다.
내가 대여섯 살 때쯤이었던 어느 날, 골목에서 놀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질 즈음 집에 들어갔더니, 감기에 걸려 며칠째 고생하던 형이 참기름에 왜간장을 넣어 비빈 흰 쌀밥을 정신없이 먹고 있었다. 그때 보리가 덜 섞인 쌀밥은 오직 아버지 밥그릇뿐이었고, 아버지가 남긴 밥은 언제나 아버지와 겸상을 하는 내 차지였다. 그런데 그 귀한 쌀밥을 형이 먹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심통이 나서 그 광경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때 큰엄마가 물동이를 이고 들어오셨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그대로 대문 밖으로 달아났다. 날은 저물어 어둑어둑해지는데 신작로를 따라 얼마를 걷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아무도 날 좇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온몸에 오싹 소름이 끼치고 무서움증이 일어 그대로 길에 주저앉아 ‘엄마’를 큰소리로 부르며 울었다.
― 「두 여인」 부분
큰엄마는 말없이 아이를 업고 집으로 들어갔다. 화자는 그때 큰엄마의 저고리에서 고소함과 배릿함이 어우러진 차 향 같은 냄새를 맡았고 그 냄새는 바로 ‘어머니냄새’였다고 술회한다. 그는 엄마보다 큰엄마를 더 상세하게 그렸다. 산에 들국화를 캐러 갔다가 재 몬당 소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 모자의 모습은 어떤 모자보다도 다정하고 친밀할 뿐 아니라 큰엄마의 육성이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 있다. “나이 열다섯 묵어서 니 아부지헌테 시집이라고 왔는디…”, “니 작은누나는 서방 잃어뿔고 미친 거맹키로 어딜 그리 싸돌아댕긴지 불댕이었제, 워디간지 찾다보면 늘 여그 와 있잖았냐”, “니 아부지랑 작은누나랑 요 산을 이 잡듯 샅샅이 뒤져 느그 매형 시신을 찾으러 댕겼다. 징헌 넘의 시상 그 난리속이 엊그지 같은디, 지옥이 따로 없어야, 워째 고런 일이 다 있을까. 아이고, 에미 팔자가 사납어서 그런다” 하는 식의 큰엄마의 목소리에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화자에게 큰엄마는 어떤 존재였는가, 이다. 여느 모자들보다도 더 다정하고 깊은 신뢰가 형성된 관계다. 큰엄마는 돌아가실 때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친아들을 제쳐두고 막내아들을 염려하셨다.
“배고픈 시절에 에미 젖 떨어지고, 사람되기 힘들 거라 생각혔는디…. 쯧쯧, 넌 명줄이 길 거여.”
당신이 먼 길 떠나시기 전 내게 주신 마지막 말씀이었다. 울컥 설움이 솟구쳐 나도 모르게 그분을 얼싸안고 흐느꼈다.
“어머니!”
날 낳아준 엄마보다 더 살뜰한 정을 주신 큰엄마, 우리는 어떤 인연으로 이렇게 만났던 것인가. 나는 그분의 외로움을 덜어드 리지 못했다.
― 「두 여인」 부분
작가는 엄마와 큰엄마 두 분을 객관화하기 위해 제목을 「두 여인」이라고 붙인 듯하다. 그러나 글의 70% 정도가 큰엄마에 관한 서술이고 나머지가 엄마 얘기다. 어찌 보면 엄마가 조금 축소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은연중 길러주신 분에 관한 기억이 훨씬 진하게 남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큰엄마는 아낌없이 사랑을 쏟는 분이었고, 엄마는 사랑을 일정 부분 절제한 분이다. 바꿔 말하면 큰엄마는 충분히 사랑을 쏟을 만한 입장이었고, 엄마는 모종의 절제가 요구되는 입장이었다.
나는 엄마의 몸을 빌려 태어났지만, 두 엄마의 아들이었다. 엄마에게 가면 큰엄마에게서 멀어졌고 큰엄마에게 가면 엄마에게서 멀어졌다. 두 여인 사이엔 아버지보다도 내가 있었다. 내가 둘을 잇는 끈이면서 동시에 둘 사이의 벽이었다. 그것이 나의 남다른 정체라면 정체다. 이러한 남과 다른 나의 정체에 눈을 뜨게 한 이는 언제나 엄마였다.
(…)
친구들과 동네 뒷골 밤나무 밭에 몰래 들어가 밤을 줍다가 주인에게 들켜 혼이 난 적이 있었다. 며칠 후 그 일이 엄마 귀에 들어갔던가 보다. 엄마는 호되게 날 꾸짖었다. 그렇게 화난 얼굴은 처음이었다.
“니놈이 그라고 댕기면 작은집 아들이라고 사람들이 깔본디, 그걸 와 몰러?”
그날 나는 엄마의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 「두 여인」 부분
엄마는 작은집으로 지칭되는 자신이 아들에게 얹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엄마는 아들의 행복을 위해 아예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고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단 하나뿐인 핏줄을 넘겨주고 먼빛으로만 바라보아야 했던 그 여인은 죽어서도 남편 곁에 묻히지 못했다. “큰엄마는 아버지와 나란히, 엄마는 그 곁에 홀로 누워 계신다.”
패자가 곧 승자
이렇게 하여 아픈 질곡의 역사를 겪은 가족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재 몬당 소나무도 베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또 다른 목격자가 있다. 고향의 옛집이다. 「옛집」은 아버지의 집이다. 아버지에 의해 건축되었고 화자가 자란 그 집은 이제 낡을 대로 낡았다. 오래 비어 둔 '옛집'은 상징적이다. 돌보는 이 없어도 나무들은 건강하게 살아 있다. 나무가 집을 지키는 형국이다. 아니, 나무들이 그 집을 점거하고 있다.
집 스스로 자연으로 회귀 중인 것인가. 그리고 징광사澄光寺라는 천년고찰의 폐사지에 남아 있던 유물들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옛집도, 옛 절터도 부재의 장소다. 새로운 존재는 늘 부재의 바탕 위에서 출현한다. 누군가, 그 새로운 존재는?
그러나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곳에서 유순한 마음을 위로 받고 또 여기에 삶의 터전을 삼고 살았던 사람들, 그들의 생명은 대를 이어 오늘 우리에게 닿아 있지 않은가. 황량한 이곳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내가 바로 그 흔적이고, 현재의 우리가 한때 신령했던 이 터전의 흔적이다. 낡아가는 옛집이나 사라져간 절터가 모두 내 안에 있다. 아버지와 엄마와 큰엄마, 그리고 작은누이며 매형, 떠나간 모든 이들이 일시에 내 안에서 웅성거린다.
― 「옛집」 부분
그 부재한 존재들은 바로 ‘나’의 몸속에, ‘나’의 뼈와 살과 피 속에 흐르고 있다는 인식을 통해 화자인 ‘나’는 새로운 존재로 출현하며 동시에 부재한 존재들을 다시 귀환시킨다. 마지막 작품에서 순환의 고리를 형성시키면서 4편의 작품을 일시에 하나로 묶어내는 이런 작법은 드문 경우이다.
문학에서는 패자敗者가 곧 승자이다. 작가란 패배를 향하여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이가 누구였더라. 누구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는 문학을 일컬어 좌절을 겪는 인간의 실패를 통해서 인간의 근본 국면을 보여주는 예술이라고도 했다. 그런 차원에서 안규수의 특집은 성공적이었다. 등장인물 모두가 상처를 안고 있다. 아들이 빨갱이가 아닐까 의심했던 화자 자신, 사위와 딸을 참혹하게 잃은 큰엄마와 아버지, 남편을 새 여인에게 내어준 큰엄마, 아들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멀찍이 물러난 채 고독하게 살아가는 엄마, 이들은 모두 깊은 상처를 안고 있음에도 그 상처를 통해서 오히려 성숙한 인물들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일테면 이번 특집 작품은 실패한 사람들의 성공적인 삶의 이야기이다. 성공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위조된 자기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진정한 자기를 돌려줄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글을 읽는 동안 고통스러웠지만 행복한 고통이었다. 안규수 선생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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