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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작 수필

절대로 꺾이지 않은 인생

by 안규수 2025. 8. 23.

 

                                                  절대로 꺾이지 않은 인생

                                                                                                                      안규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서시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 어지럽고 황잡한 시대에, 서시는 마치 고요한 물속에 돌을 던지듯, 잔잔한 울림을 남겼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나는 더 자주 그의 서시를 읽는다. 그것은 나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한 작은 의식이다.

   시인의 삶은 짧았다. 그러나 그의 시는 길다. 일제 강점기, 조국은 짓밟히고 말조차 금지되던 시대에 그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면의 언어로 저항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 말은 단지 시의 시작이 아니다. 그의 삶 전체를 꿰뚫는 윤리이자,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등불이다. 사람들이 침묵하거나 고개를 숙이던 때, 윤동주는 눈을 들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쓰고, 시를 남겼다.

   스물네 살의 청년이 감당하기엔 너무 버겁고 외로운 언어였지만, 그 무게를 끝까지 짊어진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그의 시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그는 짧게 살았지만,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 그것만으로도 시인은 시대보다 깊고 오래 남는다.

   모든 죽음은 결국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겪어야 할 일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먼저 떠나셨고, 형과 형수 또한 저 먼 그곳으로 가셨다. 이제 남은 차례 일 순위는 나. 그분들이 가신 나이보다 훨씬 오래 머물러 버린 탓일까. 병마를 이겨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허무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나는 나이 들어, 책장을 넘기는 손길마저 조심스러워졌다. 비문증이 찾아오고, 노안이 덧붙으면서 세상이 전처럼 선명하지 않다. 눈앞을 스치는 작은 점 하나에도 시선이 머물고, 문장 하나를 읽는데도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 예전에 빠르게 흘러가던 시간의 흐름 속에 나도 바쁘게 휩쓸려 다녔다. 이제는 느려진 세계 속에서, 마치 안경을 닦듯 내 삶을 천천히 닦아 낸다. 흐려진 시야를 바로잡는 그 사소한 움직임이, 나를 다시 중심에 놓이게 한다.

   매일 힘겹게 살아가지만, 시간은 모래알처럼 스르륵 빠져나가고, 손을 펴 보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윤동주도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라는 시가 내 가슴에 머문다.

 

   소설 노인과 바다는 그레고리오 푸엔테스라는 어부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진 미국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표작이다. 주인공 노인이 작은 배를 끌고 나가 84일째 물고기 한 마리도 낚지 못한다. 85일째 새벽 배를 끌고 나가면서 미풍이 불어올 때처럼 희망과 자신감이 솟구치고 있었다라는 노인의 모습은 숭고해 보인다. 매일 실패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바다에 나가는 노인의 모습에서 내가 보인다.

   그에게 청새치 한 마리가 걸려든다. 미끼를 끌어당기지 않고 청새치를 끌고 오면서, “이보게, 늙은이.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 이 늙은이야. 침착하게 기운을 내란 말이야.” 하고 중얼거린다. 이 소설의 매력은 그다음에 펼쳐진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상어 떼의 습격을 받고 청새치 고기를 뜯어 먹는 상어를 물리치기 위해 노와 짤막한 몽둥이로 끝까지 싸워 보지만, 결국 청새치의 살점은 모두 뜯기고 싸움은 패배로 끝난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직이 읊조린다.

   “좋은 일이란 오래가는 법이 없구나.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할 수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헤밍웨이는 허무를 넘어 빛으로, 삶에 대한 긍정으로 살 그것을 나에게 속삭이고 있다.

 

   나는 늘 목적 없이 살아왔다. 삶의 길 위에서 나를 어디로 이끌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주어진 일을 감당하며 하루를 또 하루에 얹어 왔다. 마치 바람에 밀려가는 나뭇잎처럼 스스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흘러온 것이다. 그 사이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공허가 자라났다. 그것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깊이를 더해 어느새 나를 삼킬 듯 커져 있었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들여다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외면한 채 살아온 거다. 나는 비로소 멈춰 서서 묻는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 지금 이 삶은 정말 내 삶이라 할 수 있을까.”

   황혼의 산마루에 걸려 있는 지금 오히려 삶은 더욱 또렷해진다. 순간마다 덧없음을 알면서도, 그 덧없음 속에서야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은 견디는 그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임을 이제야 알겠다. 비록 늦게 찾아온 자각일지라도, 이것이 나에게 남겨진 마지막 여정이리라.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고통 속에 있지만, 남은 날만큼 허무에 잠식되지 않고, 제 삶을 살고 싶다. 그것이 이 싸움의 끝에서 내가 붙들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되뇐다.

 

   "나는 실패한 인생일지도 모르지만, 절대로 꺾이지 않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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