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장애인도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평등하다는 의식이 잠재된 주인공 영우의 독특한 인사법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영우는 강점과 약점을 한 몸에 지닌 캐릭터로 강점은 보통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지만, 약점도 깜짝 놀랄 만큼 취약하다. 164의 높은 IQ, 엄청난 양의 법조문과 판례를 정확하게 외우는 기억력, 선입견이나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그의 강점이다. 감각이 예민해 종종 불안해하고, 몸을 조화롭게 다루지 못해 걷기, 뛰기, 신 발끈 묶기, 회전문 통과 등에 서툴다. 영우는 극도의 강함과 극도의 약함을 한 몸에 지닌 인물이자 높은 IQ와 낮은 EQ의 결합체이며 보통 사람들보다 우월한 동시에 열등한 존재이다.
이 드라마는 서울대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에 수석 합격한 영우가 대형 로펌 법무법인 한바다의 변호사가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영우와 한바다의 변호사들이 한 회에 한 개씩의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다. 매회 흥미진진한 새 사건이 도전장을 내밀면 주인공이 멋지게 문제를 풀어내는 모습을 보여 준다. 언제나 우울한 일상에서 시작해 결론은 상쾌함을 선사해 좋았고 일화 중심의 법정 드라마여서 매력적이었다.
배우 박은빈이 아니었으면 성공할 수 없는 드라마였다. 장애가 있어서 선천적으로 감정교류를 잘못하면서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공감 능력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기존 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웠던 이상하고 사랑스러웠던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구현해낸 것은 배우 박은빈의 연기력 덕분이었다.
박은빈은 영우를 연기하기까지 시간이 꽤 필요했다. 배우로서 우영우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겠다 하는 두려움에서 배역을 한 차례 고사했다고 한다. 대본을 받아 들고 장애인 역을 그만큼 잘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던 것도 또 다른 이유였다.
<우영우>는 기존 드라마의 캐릭터와 확실히 다르다. 어느 드라마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강한 흡입력이 있었다. 방영 후 박은빈은 대담에서 이 같은 인기 비결을 묻자 “평소 재미나 웃음은 문화적 코드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뛰어넘는 시청자 감수성이 있던 것 같다”라고 겸손해했다.
드라마에서 자폐가 있는 여성을 관찰자가 아니라 직접 소통하는 여성으로 내세운 다. 그 인물이 대형로펌이라는 곳에 던져져서 어떻게 그 세계에 스며들고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성장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영우를 아끼고 이해하는 팀장 정명석, 영우를 사랑한 꽃미남 이준호, 동료 변호사 최수연, 권민우의 연기도 드라마의 흥미를 끄는데 크게 한몫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그 양상이 매우 다양하다. 자폐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강박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의사소통 능력 미숙한 정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박은빈은 통상적인 자폐인 캐릭터를 전혀 참고하지 않고 억양이나 행동에 있어서 자신만의 독특한 연기를 펼친다. 이에 따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뜨겁게 불러일으키고 사회적 편견을 해소해 그들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회차마다 다른 법정 에피소드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나에게 15화 중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를 꼽아달라고 하면 4화, 15화를 꼽겠다. 4화는 절친인 동그라미(주현영)의 가족 송사를 해결해주는 내용이고, 마지막 15화에서 자기를 낳고 버린 대형로펌 회장이면서 법무부장관을 꿈꾸는 친엄마를 태어나서 처음 만난다. 잘 나가던 회사를 해킹해서 궁지에 몰린 이복동생 상현이의 변론을 위해서다. 꿈에도 그리워하던 엄마를 만난 영우는 마음을 털어놓는다.
“저에겐 좋은 엄마가 아니었지만, 상현이에게는 좋은 엄마가 되어 주세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드라마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대사다. 영우의 이 말을 듣고 비록 핏덩이를 버린 엄마이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찬란한 봄, 나무들은 겨우내 모진 추위를 견뎌 낸 아픔을 안고 꽃을 피운다. 영우는 고교 시절 장애인이고 공부 잘한다는 이유로 동료 학생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아 극심한 괴롭힘을 당한다. 흰고래무리 속에서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외뿔고래였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학기 초에 시골뜨기에다 키가 크다는 이유로 읍내에 사는 동급생으로부터 언어 신체적 폭력에 시달렸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남녀 공학인 반에서 이런 일은 창피하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다. 오월, 어느 날 수업이 시작되기 전 그들의 놀림에 그들과 맞붙어 죽지 않을 만큼 얻어맞고 교실이 난장판이 되고, 병원에 실려 가면서 사태는 진정되었다.
그때는 그게 학교 폭력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깊어 오랫동안 낫지 않았다. 영우도 갖은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모든 걸 자신이 짊어져야 할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자신과 일체화할 때 생기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외롭고 고달플 때 영우에게는 친구 외뿔고래가 있었다.
마지막 장면, 영우는 승진하고 처음 출근하는 날 아침 연인 준호를 만난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뿌듯함입니다”라고 말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이 ‘뿌듯함’이라는 단어에 드라마가 하고 싶은 말이 함축되어 있다. 삶은 반복되는 꿈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복되는 꿈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