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변하지 않는다.
안 규수
연일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재앙이 되어버린 극단적인 폭염은 어느 정도 참아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태양은 매일 같은 자리에 떠 있지만, 이제 그 열기는 마치 분노라도 품은 듯 도시를 짓누르고,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거리는 공기조차 뜨겁고, 아스팔트는 발밑에서 타오른다. 선풍기와 에어컨, 그마저도 끊임없이 돌아가지만, 더위는 틈을 비집고 들어와 땀과 피로를 남긴다.
이제 여름은 계절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 되었다. 텃밭의 풀도 말라 죽고, 노인들의 숨소리도 무거워진다. 지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이 가장 큰 경고가 되어 돌아온다. 뜨거운 바람, 식지 않는 밤, 타들어 가는 땅, 그것은 어떤 시위보다 더 분명한 항의다. 그리고 나는 문득 묻게 된다. 우리는 이 된더위 속에서, 무엇을 견디고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 또 얼마나 더 뜨거워야 져야, 우리가 깨닫게 될까.
그럴수록 마음은 작고 조용한 것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늘에 잠시 앉아 쉬어가는 노인의 땀을 닦아 주는 손길, 마트 앞 그늘을 나눠 쓰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짧은 웃음, 그리고 누군가 건넨 시원한 물 한 잔. 바람 한 줄기에도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고, 누군가 미리 켜둔 선풍기 바람에 마음이 놓인다. 우리는 거창한 해결책보다 이런 아주 작고 느린 온기로 이 여름을 견뎌내야 할 것 같다.
이 땅의 근본적 위기는 지구온난화 있다. 그중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며 지구온난화의 원인 기체로 알려져 있다. 지구 온도가 2도 이상 올라가면 지구는 멸망한다는 설이 있다.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인간의 교만이 자초한 재앙으로 대멸종 시대를 재촉하고 있다. 지금까지 네 번의 대멸종은 자연재해에 의한 결과였지만, 지금 우리 눈앞에 다가오는 대멸종은 자연 파괴의 주범인 인간이 저지른 업보다.
기후변화가 더 이상 예측이 아닌 혹독한 현실이 되어버린 2025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심한 재해가 고민되는 여름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도 앞으로 7년 정도 지속되고 그 이후는 아무도 예단 할 수 없다고 말한다.
1970년대 초 우리 농촌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농촌의 기존 패러다임이 달라진 것이다. 초가지붕이 슬레이트로 바뀌면서 온 마을이 한 식구처럼 오순도순 살아가던 인정 사회가 삭막하고 메마른 농촌으로 바뀐 것이다. 농촌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 도회지로 떠나 마을에는 노인들만 남게 되었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자연을 한 번 파괴하면 다시 회복될 수 없고, 자연은 인간에게 당한 만큼 반드시 갚아준다. 꿀벌은 꽃내음과 빛깔을 다치지 않고 꿀만 따 간다. 얼마나 멋있는가. 이 꿀벌의 수효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불이(不二), 세상의 모든 것은 한 몸이다. 그러니 밭에 심은 곡물이나 잡초는 좋은 것과 나쁜 게 따로 있겠는가. 어머니 생전에 가꾸던 밭이 지금은 무성한 잡초에 묻혀 있다. 나는 여름이면 어머니를 힘들게 한 그 잡초를 바라보면서 잡초라는 말부터 인간이 세운 기준에 따라 편을 가르는 습관일 뿐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주인을 잃은 그 밭의 토양이 유실되지 않도록 잡초가 지켜주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난해 오월, 서울 아산병원에서 담도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 마음이 심란하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는 제주로 향했다. 도망치듯 떠난 여행이었다. 그날 밤, 어두운 해안가를 홀로 걷고 있었다. 바람은 조용했고, 파도 소리만 귓가에 부서졌다. 그때, 문득 고개를 들자, 성산일출봉이 어둠 속에 우뚝 솟아 있고 칠흑 같은 거대한 암벽이 내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것이 공포라는 감정인가 싶을 정도로, 무서움이 나를 전율처럼 덮쳤다.
“만약 오늘, 종말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질문이 번개처럼 스쳤다. 해답은커녕, 질문 하나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그 밤, 나는 깨달았다. 자연은 언제나 그대로인데 내가 어떤 처지에 있느냐에 따라 그 자연은 완전히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는 것을. 어떤 날엔 평온한 풍경이었고, 어떤 날엔 두려움의 실체였으며, 이날 밤엔 나에게 ’죽음‘을 묻는 화두였다. 그것은 단지 경치가 아니었다. 내 삶을 뒤흔든 한 장면이었고, 자연이 내게 건넨 말 없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언제가 모두 죽음의 문턱에 선다. 누군가는 그것을 끝이라 하고, 누군가는 시작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죽음 이후의 삶이란, 지금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어쩌면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그 너머도 지금의 삶이 던지는 방식 그대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두려움을 살아왔다면 두려움을, 평온 속에 행복하게 살아왔다면 행복을 그곳에서도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그날 밤, 성산일출봉 앞에서 나는 한 인간으로서 작아졌다. 그러나 그 작음은 초라함이 아니라, 삶이란 신비 앞에 서 있는 겸손이었다. 죽음은 여전히 두렵지만, 그것이 삶을 더 진실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 암벽 아래서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고사에 망본초란(忘本招亂)이라는 말이 있다. 근본을 잊어버리면 망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삶에서 땅의 건강에 관심을 두고 돌보는 일보다 더 근본적인 건 없다. 자연도 자존심과 질서가 있다.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 역습을 받는 건 어리석고 오만한 생활 방식이 불러온 자업자득이다.
누군가는 묻는다. 내가 실천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그러나 분명히 달라지는 건 하나 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단순한 삶이 아름답다는 걸 깨닫고 자연에 순응할 때 분명 내가 변한다. 자연의 오묘한 지혜는 인간은 절대 헤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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