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노래
안규수
먼 하늘을 바라보던 그 시절의 그리움은 여전히 나를 길 위로 불러낸다. 길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이 향하는 곳, 그곳이 곧 길이 된다, ‘떠남과 돌아옴’ 그 끝없는 순환 속에서 나는, 쉼 없이 길을 걷는다.
인간은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끝없이 길 위로 나서는 순례자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이 「호모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은 삶을 고정된 자리가 아닌 흐르는 강물처럼 미지의 세계를 걷는 여행이라고 말한다.
올해 8월, 한여름의 절정기에 나는 제주를 찾았다. 한여름 불볕을 피하려고 아내와 함께 떠난 6박7일의 여정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 발을 디디는 순간, 국경을 넘은 것도 아니고 그저 바다만 건넜을 뿐인데 얼굴을 스치는 공기의 감촉이 달랐다. 섬 특유의 낯설고도 친근한 공기는 나를 따뜻게 맞아 주었다. 바람은 짭조름한 갯내를 실어 나르고, 하늘은 한층 더 푸르고 선명했다.
영실에서 사흘은 한라산의 숨결과 마주한 시간이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 병풍바위를 향해 가파른 비탈길을 오를 때, 제주의 창조 여신 설문대할망과 오백나한의 설화가 서려 있는 기암절벽에는 마치 불상을 닮은 바위들이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나는 그 전설이 단순히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건 섬의 바람과 파도 속에서 버텨온 사람들의 숨결이며, 핍박과 고단한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그들의 애환이 돌에 스며있는 듯했다.
선작지왓 평원을 가로질러 노루샘에서 한라산 정기가 담긴 시원한 물 한 컵 마시고, 윗세오름을 지나 남벽 앞에 섰다. 백록담암벽은 오락가락하는 구름에 가려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바람이 스치면 수줍은 듯 잠시 얼굴을 내밀었다가, 다시 몸을 숨기곤 했다. 그 웅장하고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운기(雲氣)가 감도는 남벽 앞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즐거웠다. 하지만 머물 듯 가는 게 세월인 걸 어찌 탓하랴. 한 치 앞일도 알 수 없는 현실에서 내 두 발로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는지 알 수 없다.
이어지는 사흘은 절물휴양림의 삼나무와 소나무, 활엽수 숲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곧게 솟은 삼나무숲으로 들어서면 가끔 나무 사이로 흐르는 빛조차 부드럽다. 숲 밖은 불볕더위인데도 여긴 마치 초가을 날씨처럼 선선했다. 이런 피서지가 어디 또 있을까. 가끔 관광객도 보였지만 대개는 제주도 현지인들의 피서지였다.
나는 삼나무 숲속 침상에 누워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었다. 소로는 거짓과 자기기만을 벗어날 일, 오롯이 자존감을 높이고, 도덕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가만히 속삭인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기울면 나무로 잘 다듬어진 숲길을 걸었다. 울창한 숲의 나무들이 내 품는 상큼한 향이 코를 찌른다. 그때 귓가에 ‘Josh Groban’이 부른<You Raise Me Up, ‘당신이 나를 일으켜 세워 주시네’>라는 노래가 잔잔히 흐른다.
당신이 날 일으켜 세울 때
나는 무너져도 다시 일어선다.
험한 산도, 거친 바다도
그 순간이 두렵지 않다.
이 노래는 곧 내 발걸음이 되고, 숲길은 어느새 희망의 길이 된다. 삶에 대한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진다.
여행은 반드시 발걸음으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를 마음속에 그려 보는 것 또한 하나의 여행이다.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펼쳐지는 낯선 풍경은 곧 나의 길이 되고, 나는 화면 속 여행자들과 함께 걷는다. 그 순간 나는 ‘길 위의 인간’, 곧 「호모비아토르」가 된다. 동시에 광활한 지구 앞에서,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이며 유한한 생명인가를 절실히 깨닫는다.
며칠 전 TV 다큐에서 브라질의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무참히 파괴되고 불태워지는 모습을 보았다. 숲은 조용히 쓰러지고, 바람의 숨결은 잿빛 속에 묻힌다. 숲의 노래가 사라진 자리, 새의 날갯짓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숲을 잃는다는 건 곧 자신의 내일을 잃는 일임을 사람들은 왜 모를까?.
여행의 끝은 언제나 나의 집이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음에 담은 풍경이 내 안에서 살아난다. 나는, 현실로 돌아와 깊은 그늘만큼 지나간 세월과 다가올 시간이 내 마음에 고스란히 스며있음을 알았다.
내 삶은 수없이 떠나고 돌아오는 길 위의 여정이었다. 바람처럼 흘러가며, 별빛처럼 스며들고, 강물처럼 이어져 오늘의 나를 빚어낸 것이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숲의 ‘자유’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안을 느끼며, 내 삶의 의미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 숲은 언제나 깊은 호흡으로 나를 위로하며,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 노래는 영혼을 흔드는 울림이고, 시간의 강을 건너는 조용한 항해이며, 시들했던 내 마음에 생기와 활력이 되었다. 한여름 아주 짧게, 그 무게가 얼마나 오래도록 내 가슴을 짓눌린 지를 아, 숲은 모를 것이다.
자신을 돌아 볼 일이다. 나는 변한 것이 없는데, 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다르다는 걸 요즘 느낀다. 그러나 길 위에서 헤맨 모든 순간이 헛된 방황이 아니라, 삶의 의미로 이어지는 작은 파문이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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