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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서평 글쓰기 요령

수필로 읽는 삶 (안규수님) /박 춘                                                                 박 춘

by 안규수 2017. 1. 22.

수필로 읽는 삶 /박 춘
-안규수의 문학세계 소고-

 

 

 

늦으막히 수필을 써보고 싶고,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혹시 그동안 살아오면서 당연해서 지나쳤거나 망각하고 있었던 존재에 대한 의문. 삶에 대한 물음의 길 위에 서있음을 자각한 것은 아닐까. 그것이 이제 자신에게로 돌아갈 길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닐까.

 

 한 사내아이가 근대가 저물어가는 황혼의 막바지와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현대의 초입. 그야말로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혼돈의 시대에 한반도 남녘땅에 태어났다. 그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한 그곳은 현대사에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여순반란사건’의 주요무대인 벌교다, 그 시대 대부분의 민초들이 제대로 된 뜻은 모르지만 오직 자신이 꿈꾸는 세상이 그런 것이어야 할 것이라는, 기어이 와야 할 것이라는 수 백 년 묵은 희망이, 죽일 놈의 이념이 되어 최초로 서로에게 총을 겨누었던 곳이다. 저물어 가는 시대가 남긴 잔광과 새로이 다가오는 시대의 꿈. 민주와 공산주의이념이 황홀했던 만큼 참혹한 모습으로 으깨어진 곳이다.

 벌교인근의 아이들에게 가장 두려움을 주는 말은, 울던 아이 울음을 그치게 하는 묘약은 간단했다. “니는 느그 엄마가 벌계(벌교) 횡게(홍교)다리 밑에서 주워왔어야. 울머는 다시 횡게다리 밑에 갖다 내뿐다.” 잘 놀고 있는 아이를 골리고 싶을 때도 ‘횡게다리 주워온 아이’ 한 마디면 무조건이었다. 그 공포의 근원은 ‘느그 부모는 벌계 횡게다리에서 죽창이나 총에 맞아죽었고 너만 용케 살아 울고 있는 것을 데려와서 키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아이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밤이면 산으로 숨어든 산 사람들이 마을로 내려와 마을주민들을 괴롭혔다. 마을의 주민은 밤과 낮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낮에는 경찰 밤에는 산 사람들이 마을을 공포로 떨게 했다. 그 혼란이 주민들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죄 없는 민초들은 두 주인에게 순종하면서 갈대처럼 살 수 밖에 없었다. 자칫 어느 한 쪽에 밉보이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오직 맹종만이 살 길이었다. 그때 동네 남자들은 밤이 되면 어린애와 노인만 남고 모두 읍내 학교로 가서 잠을 자고 날이 밝으면 돌아와야 했다. 당시 경찰은 보호차원에서 마을주민들을 소개한 것이다. 이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그들의 죄목은 알 수 없다. 그들의 죄란 무엇이었을까. 무자비한 폭력 앞에 순종할 수  밖에 없었던 나약함이 죄였을까. 역사의 수레바퀴는 늘 죄 없고 힘없는 민초들을 가장 먼저 짓밟는다는 사실을 방증할 뿐이다.’ (손가락 총에서)

 

 그의 집안 역시 폭력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한집에 살던 매형은 살해당하고 그로인해 병을 얻은 작은누이가 아이를 남겨두고 세상을 뜬다.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죄는 꿈이었을 것이다. 질곡의 세월을 벗어날 수 있다는 환장하게 좋은 꿈이 만든 벽(癖-무엇에 치우치게 즐기는 병)이 죄였을 것이다. 그래도 설마 꿈 때문 만이었을 리가... 운명이란 놈을 미리 알았다면 비껴갈 수 있었을까. 아마 더 흉악해지지 않았을까. 다가오는 운명을 회피하기위해서는 분명 더 험악하고 교묘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민초들의 체념어린 말 ‘놈(남)탓할 것 없다. 다 내 탓이제.’ 남은 자들은 체념의 세월을 부둥켜안고 가야 했을 것이다.

 

 그는 ‘두 엄마’의 아들이었다. 큰엄마는 가난한 집 4대독자로 태어나신 아버지가 자신에게서 또 아들 하나로 끝나고 말자 작은댁을 볼 것을 권한다. 예부터 가문을 이어가게 하는 것은 부덕의 첫 번째 도리였다. 큰엄마는 자신의 도리에 충실했다. 그렇지만 그로인해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을 그에게는 어떤 것이었을까. 흔치 않는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어린 날의 그에게는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이 열여섯에 니 아부지한테 시집왔는디...” 큰엄마는 늘 외로움에 젖어있는 가냘픈 여인이었다. 아버지는 큰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늘 겉돌기만 했다. 아버지가 낮일을 끝내고 날이 어두워지면 슬그머니 대문을 나섰다. 그때 아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큰엄마의 눈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중략)

 동네 뒷골 밤나무 밭에 몰래 들어가 밤을 줍다가 주인에게 들켜 혼이 난 적이 있었다. 며칠 후 그 일이 엄마 귀에 들어가 호되게 날 꾸짖었다. 그렇게 화난 얼굴은 처음이었다. “니 놈이 그라고 댕기면 작은집 새끼라고 사람들이 깔본디 그걸 와 몰러.” 그날 나는 엄마의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엄마의 작은댁으로 살아온 생의 아픔과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두 엄마에서)

  

 그가 ‘두 엄마’를 글로 써내기까지에는 스스로 삶의 질서를 가늠할 수 있었던 다음에야 가능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홀로된 시간을 거치고 건저올린, 시대와 그분들을 이해하게 된 아픈 마음이 되어주고서야 두 엄마의 삶을 비로소 내 것으로 했지 않을까. 그는 남보다 특별한 인연 탓으로 왔다. 때로는 다른 아이들의 시선과는 다른 눈으로 사물을 받아들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작은 정서의 차이를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채찍질도 해야 했고 자신과의 불화도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 했을 것이다. 그 과정의 반복은 또래에 비해 제법 단단한 내공을 지니도록 했을 법하다. 그것은 훗날 그에게 삶의 단단한 질서, 주춧돌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아버지의 유지(선친과 막역지간인 장인이 맺어놓은 사돈이 되자는 약속. 그야말로 저물어 가는 시대의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다.)로 인해 고등학교 3학년 까까머리로 장가를 드는, 부끄러워 도망가고 싶은 날벼락(?)을 맞는다. 대학진학을 위해 준비했던 공부마저 헛것이 되어버린다. “각시 놔두고 어디 객지로 나가.” 라는 호통 한마디에 꿈은 자지러지고 만다.

 감히 상상하건대 딱 미치고 환장을 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친구들 모두 이제 밤송이 까까머리 신세를 면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제법 그럴듯한 신세계를 향해 거보(?)를 내딛는 참인데 자신은 선친의 유지 때문에 옴도 뛰지 못하는 신세다. 친구들의 청춘을 멀거니 바라보아야 하는 신세이니 한편으로 왜 원망이 가지 않았겠는가. 아직 울퉁불퉁한 청춘이 시키는 성질을 거스르지 못할 나이 아닌가. 하지만 하늘의 섭리란 의뭉스런 법이다. 섭한 구석이 있으면 그것을 다독여줄 심지도 은밀하게 끼워 놓는다. 철없는 친구들이 부나방처럼 허둥거릴 때, 그는 의식을 했든 못했든 훗날 삶의 단단한 질서로 자리 잡을 부부와 가족의 의미를 하나씩 하나씩 배워 몸에 새겨 놓았을 것이다. 일찍이 옛 사람 누군가 남녀의 정염을 이렇게 꼰질러 놓았다. “남녀의 정염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요. 윤리를 부여받은 것은 성인의 가르침이다. 성인을 위반할지언정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을 위반할 수는 없다.” 「비긴 어게인」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그리고 아내의 가사 노동력은 경제적 가치를 논할 수 없다. 오직 지고지순한 사랑만이 감당할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이란 육체적인 것도 낭만적인 것도 아니고, 내 아내처럼 있는 대로를 받아들여주는 것은 아닐까. 그는 늦었다고 뛰는 법도 없고, 이르다고 쉬는 법도 없고, 힘들다고 사보타주를 한 적이 없고, 일정한 걸음으로 꾸준히 세월을 걸어왔다. 고 적어놓는다.(비긴 어게인)

 

신혼의 꿈이 사그라지기도 전에 그는 그의 세대가 거쳐야했던 ‘그들의 죽음을 기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는 질곡의 세계에 온몸으로 맞부딪쳐간다. 파월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그의 탄식은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항의의 볼멘소리다. 비수처럼 날이 선 자괴와 해체된 맹목의 허상 앞에서 토하는 독백이다. 그것은 파병의 그늘, 우리 모두 순수한 이상과 자아의 도덕적 가치부재. 자긍의 상실에서 온 상처 때문은 아닐까?

 

전투에서 전사한 동료를 보내는 것마저 아파할 시간도. 애도할 시간도 없을 만치 공포 속에서 보내야 하는 잔인한 시간은 그로 하여금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 는 현실과 타협하도록 만든다. “연대본부로 배속시켜 주십시오. 지금 저 수중에 돈 한 푼도 없습니다. 매월 수당의 반을 귀국할 때까지 드리겠습니다.” 그는 내 말이 끝나자 한참 날 빤히 쳐다보더니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여기 군번 이름 적어놓고 나가. 기대하지 말고.”(정글은 말이 없다)


 생사지간의 현실은 적극적으로 타협하는 능동적인 인간으로 만든다. 말 그대로 살아남아 아내와 아이들 품으로 돌아가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가 미혼의 총각이었다면 혹시 덜 능동적이었지 않았을까. 꿈에 나타나신 아버지의 ‘몸 조심혀야 한다’는 당부가 있었다 해도...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다는 것이 그로 하여금 상황을 더욱 현실적으로 보게 했음직 하다.)

 절대로 ‘기억해줄 사람은 없다’는 역설이 우리로 하여금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로 자리매김 시킨다. 같은 시대를 호흡해온 사람으로서 그들의 희생에 감사한다. 사족으로 그가 자신의 새끼(전우)들을 남겨두고 연대본부로 도망치는(그가 아니었어도 누군가 그랬을지라도) 자신을 너그럽게 보듬을 수 있는 것은 아마 수필을 쓰기 시작한 후였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들은 크고 나면 그들 세상으로 놓아주는 것이 순리다. 더군다나 사내아이들이란 더욱 그렇다. 세상은 젊음이 일으키는 순정함.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이상에 대한 헌신, 분별력에 의지해 정화되어진다. 민주화운동에 나선 아들과 반공세대가 바라보는 세상이 어찌 같은 것이겠는가. “너 이놈 너 가 빨갱이냐.” 라는 호통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아버지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이 또한 아들세대의 당연한 항의였을 것이다.


 그때 아들과 나는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한 마리의 조롱새였다. 푸른 숲과 하늘이 정작 자신이 둥지를 틀고 훨훨 날아야할 공간임을 알지 못했다. 새장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오히려 하늘을 날고 있는 새들을 조롱했다. 거친 산과 들보다 아늑한 우리 안이 편하다는 듯 살았고 늘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인데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의 삶을 자유로이 선택하고 살아왔다고 믿고 싶지만.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의해 끝없는 미로와 같은 길을 걸어온 것이다. (이런 고백에서) 

 

 앎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을 의미하고, 모름은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아직도 오늘 우리현실은 불행히도 ‘그 미혹의 세계를 모름으로부터 벗어났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 같다.’ 는 선에서 그치자.

 

  모든 존재는 시간 앞에 무너지고 부서지는 것이다. 아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흘러가면서 그 모습을 바꾼다. 불타고 무너지고 도둑맞아 흔적 없이 사라진 그 절터에 초가집 한 채가 덩그렇게 앉아 있었다. 형색은 초라해도 마치 고색창연한 그 옛날의 가람을 재현하고 있는 듯 해 보였다.

 그러나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곳에서 유순한 마음을 위로 받고 또 여기에 삶의 터전을 삼고 살았던 사람들. 그들의 생명은 대를 이어 오늘 우리에게 닿아 있지 않은가. 황량한 이곳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내가 바로 그 흔적이고 우리가 한때 신령했던 이 터전의 흔적이다. 낡아가는 옛집이나 사라져간 절터가 모드 내 안에 있었다. 아버지와 엄마와 큰엄마. 작은 누이며 매형. 떠나간 모든 이들이 일시에 내 안에서 웅성거린다. (옛집에서)

 

산이 있고 그 산 아래 포실한 마을이 있고, 작은 개울이 마을 앞을 흐른다. 그 곳 한켠에 옛집은 있고 이백년인지 오백년인지 모를 당산나무가 고향을 지키고 있다. 아버지. 내 할아버지 또 그 윗대의 할아버지도 그 당산나무 그늘에서 한 여름의 더위를 피하셨을 것이다. 한가위 보름달은 또 얼마나 흡족했을까.

 당산나무는, 마을 어른 한 분이 술 한 잔 걸치고 말에 올라타려는데 아뿔사 한 쪽은 가죽신이요, 한 쪽은 짚신이다. 지나던 아이놈이 “취하셨습니다. 한 쪽은 가죽신이고 한 쪽은 짚신을 신으셨어요.” 그러자 그분은 냅다 소리 질렀을 것이다. “길 오른 쪽을 가는 사람은 내가 가죽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고, 왼 쪽을 가는 이는 짚신을 신었다고 할게다. 내가 염려할 게 뭐냐.” (백호 임제의 소품문에서 얼개를 빌림) 아마 그런 세월도 보았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사는 세월은 그런 아취를 용납해줄 정신의 터전을 잃었다. 그래서 그는 옛집에서 ‘떠나간 모든 이들이 내 안에서 웅성거린다.’ 고 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그 맛과 멋의 풍미를 잊지 않고 있었다.

 

 “박 춘 선생님입니까? 나 순천에 안 규수입니다. 이번 연간집(2016년)에 실린 박 선생님 작품을 읽고 누가 이런 글을 썻는가 궁금해서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 합니다. 좋은 글을 발표해 주어 고마워 전화 하는 겁니다.” 안규수 선생님. 아! 그분이구나. 에세이스트 카페에 그 분이 올린 글들은 특별했다.

 지난 가을 끝 무렵부터 카페를 방문하면서 안선생님이 올린 작품을 읽으면, 수필집 한권 전체를 섭렵한 바나 다름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품격을 갖춘, 엄하게 정선된 작품만을 올리는 것이다. 이분은 정성스러운 삶이 무엇인지를 아는 분이시구나... 생면부지의 그 분에 대한 내 식의 감탄이었다. 전화 받은 날 밤 나는 뜨거운 물에 대인 강아지마냥 밤새 낑낑거렸다.

 연말 합평회에 참석하러 나갔더니 껑충하게 큰 걸음을 걷는 분이 와 계셨다. “나 안규수요. 박선생 보러 순천에서 올라 왔소. 어제 저녁 댁으로 두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통화가 안 되었소. 하지만 합평회에 나오겠지 하고 그냥 올라온 길이요.” 아직도 이런 일탈한 정취를 지니고 사는 분이 있는가. 나는 옛날 옛사람의 자취를 떠 올리고 있었다.

 내가 무슨 날벼락을 맞으려고 이런 어여쁨을 받는가... 이러다 호되게 경을 당하지... ‘세상이 어찌 남만을 두려워할 것인가. 나도 내가 두렵다.’ 고 여기며 살아온 내게 이런 과분함은 가당치 않은 것이다. 순천 가는 밤기차를 타시는 것을 배웅하고 용산역 홀. 그 유리처럼 반들반들한 대리석 바닥을 돌아서 걷는데 무주공산을 오르는 중인지, 한 잔술에 취한 것인지, 제절로 지절로 바닥이 불퉁거렸다. 

 그리 멀지 않은 옛적 우리 어른 말씀 중에 ‘벽(癖)이 없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깊은 정이 없기 때문이다. 흠이 없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진실한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 라고 당부한 분(초정 박제가)이 있었다. 이로보아 안선생님은 벽이 있고 흠이 있는 분이시다. 그러다 수필을 쓰며, 자신에게로 돌아갈 길을 찾아가시다 문득 가을 하늘을 보고, “뉘라서 이렇게 짙은 물감을 풀어 놓았을까.” 놀랬던 어린 날의 마음을 찾아내신 모양이다. 수필이 아니었으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었을 건가.

                                                     2017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