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이의 꿈 / 안규수
겨울 오후 붉은 햇살 한 줌이 차 안으로 비스듬히 들어온다. 새로운 풍경이다. 내 차가 마침내 고속도로를 질주할 수 있는 구간에 들어선 순간 휴대전화가 울린다. 손주 지승이의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진다.
“할아버지 붙었어.”
올 2월 항공대학을 졸업하는 지승이가 지난 1월 30일 마지막 관문인 공항 관제사 시험을 치른 후 오늘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다. 그의 오랜 꿈이 날개를 달고 창천을 훨훨 날 채비를 마친 것이다.
지승이 일곱 살 때 처음으로 가을에 일만이천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가는 금강산을 가족과 함께 여행했다. 그는 그때부터 나와 함께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 태국 베트남 등 여행하길 즐겼다. 미지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그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볼 때마다 나도 신이 났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광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여행을 갈 때였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가 이륙하자 신기한 듯 좋아서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 탄성이 곧 그의 꿈이 되었다.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처럼 지승이는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기보다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기 위해 새처럼 하늘을 나는 조종사 꿈을 꾸기 시작한다. 고교에 진학하고 그의 꿈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조종사에서 관제사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것은 삶의 인과 법칙이다. 말이란 자신에게 하는 예언이다. 세월이 지나고 보면 사람은 자기가 한 말 그대로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아내와 함께 2000년 8월 1일에 여름휴가로 백두산을 항해 관광을 떠났다. 속초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항구로 항해 중 휴대전화를 받았다. 둘째 딸이 산기가 있어 병원에 입원했다고. 이튿날 자작나무 숲이 우거진 이도백하에서 일박하고 천지를 향해 버스로 이동했다. 그 시각에 지승이가 태어났다. 3대에 이어 덕을 쌓지 않으면 볼 수 없다는 던 백두산 천지 날씨는 청명했다. 그때 가이드의 말이 이렇게 맑은 날씨는 연중 20여 일밖에 안 된다고 했다. 천지의 푸른 호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지승이의 탄생을 경하하는 것 같았다.
지승이 두 살 때 딸 가족을 우리 집으로 불러들였다. 이사 오던 날 낯선 길, 그 길에 펼쳐진 생의 그림들, 저만치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이의 걸음이 어설펐다. 저 아이의 설은 걸음은 이십 년 후 어디에 닿아 있을까 생각했다. 가족은 내리사랑이라 했다. 나의 혼魂은 온통 그 아이에게 쏠렸다. 토요일이 되면 지승이와 승용차로 인근 명승지를 찾아다니는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지승이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중국 북경에서 만리장성을 구경하고 기차로 백두산을 향했다. 장백폭포 아래 온천지대 호텔에서 일박한 후 북파에서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 그가 태어난 지 11년 만이다. 그날도 날씨는 맑고 화창했다. 그때 천지의 물빛은 햇빛의 방향과 구름의 변화에 따라 색깔이 시시각각 달라졌다. 지승이는 천지의 영롱하고 경이로운 모습에 감동한 듯 말똥말똥한 눈으로 화산구호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감격한 듯 날 보고 싱긋 웃었다.
지승이는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문예지 에세이스트 행사에 항상 동행했다. 지금도 행사장에 가면 문우들이 지승이를 기억하고 근황을 묻는다. 어느 봄 행사 때 사회자가 지승이를 단상에 불러 세웠다. 단상에 오른 지승이는 “저도 10년 후 수필가가 되겠습니다.” 하고 열변을 토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중학교 3학년 때 교육지청 주최로 글짓기 대회에 출전하여 ‘아빠의 등’이라는 작품으로 우수상을 받은 걸 보면 문학적 소양이 있어 보인다.
지승이 대학 졸업 기념으로 지난 2월 3박 4일 일정으로 우리 셋이서 일본 자유여행을 했다. 후지산의 설경도 보고, 고우라의 펄펄 끓는 유황 온천에서 온천욕도 즐기고, 도쿄의 영빈관 아카사카 이궁도 관람하는 등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지승이는 현지인들과 거침없는 언어 소통으로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해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지승이에게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오는 2월 28일 3군 합동 임관식에서 대통령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고. 당일 언론사와 인터뷰도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대학 4년 동안 초심을 잃지 않고 오직 한길을 힘차게 달려온 노력의 결실로 이번 여행의 피날레를 뜻깊게 장식해서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지승이는 이제 공군 장교로 3년간 복무한다. 그 후 공항 관제사 길을 걷겠지. 살다 보면 독야청청, 변치 않고 자기 모습을 굳게 지켜나가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고독’과 ‘고립’을 분별해야 하듯 ‘고독’과 ‘공존’은 조화로울 때라야 가치를 발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하여 달려갈 때는 독야청청할 수 있어야 하고, 다소 자신의 이익에 반하더라도 공동체에 도움이 될 때는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침엽수인 소나무는 홀로 고고하게 아름답고, 활엽수인 참나무 잎은 흩어져 땅의 비옥한 거름이 된다. 어느 것 하나 치우침 없이 숲은 이미 자연의 지혜를 터득해 ‘더불어’ 살아온 셈이다.
지금 남쪽에는 동백꽃이 한창이다. 이전에는 꼿꼿이 목을 든 채 통째로 떨어지는 저 꽃이 무섭기도 했지만 이젠 ‘기개’와 ‘성품’이 느껴져 소중해진다. 소나무를 닮은 꽃을 꼽으라면 이젠 동백을 꼽고 싶다. 훌쩍 피었다가 시들지 않은 채 제 목을 쳐내며 떨어지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독야청청 아니면 무엇인가.
그와 나. 서로 멀리 떨어져 각각 다른 일을 하며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한 뿌리로 닿아 있다. 이 유대감이 그의 삶에 버팀목이 되었으면 좋겠다.
<*‘23. 에세이스트 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