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5000년 역사를 보려면 시안을 가보라는 말이 있다. 실크로드의 시발지인 시안은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나의 버킷리스트였다. 당나라 때 장안으로 불리기도 한 시안은, 비옥한 관중 평야의 웨이허강 이남에 위치해 일찌감치 중국 문명의 발상지이다. 주나라를 포함 진, 한, 당 등 13개 왕조가 1,100여 년 동안 수도로 삼으면서 고풍스러운 도시가 지하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유적이 많다. 이탈리아의 로마, 이집트의 카이로, 그리스의 아테네와 함께 ‘세계 4대 고도’로 선정된 도시이다.
첫날, 시안 시내 비림碑林 박물관 관광에 나섰다. 비림은 송나라 때부터 수집한 비석1,0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총 7개 전시실에 진나라부터 당나라까지의 국보급 서예 작품이 총망라되어 있다. 글과 그림을 새긴 비석들이 열대 우림처럼 들어서 있어 ‘비림’으로 불린다. 한자를 예술로 승화한 서법은 한자 문화권을 대표하는 독특한 문화로, 서예에 관심 있는 여행자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명소이다. 서성書聖이라 칭송받는 왕희지, 서예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범으로 삼는 구양순, 당대 해서의 모범이 된 안진경, 우리나라 서예에 큰 영향을 끼친 조맹부, 등 저명한 중국 서예가들의 필체가 한곳에 모여 있다.
이틀째,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에 당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가 서려 있다는 별궁 화청지華清池를 찾았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전용 목욕탕인 ‘해당탕’ 등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많았다. 산시성 시안시의 동쪽 '여산' 아래 위치하고 북으로는 위수를 마주하고 있다. 지금도 43도의 온천수가 샘 솟는다고 한다. 절세미인 양귀비의 나신裸身 석상의 요염한 모습이 뭇 사내들의 눈길을 끈다. 미인 단명이라 했다. 나라를 말아먹고 나이 37세에 시녀의 손에 비단으로 목메 죽었다고 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이번 여행의 정점인 진시황 병마용兵馬俑 박물관을 찾았다. 진시황제는 자신의 묘지 주위에 병마용을 만들고, 만리장성을 쌓고, 나라마다 다른 지금의 문자(한자)로 통일하고, 지방 권력을 타파하고 중앙 집권제를 확립했다. 그도 인간인지라 죽음을 피하려고 서불徐市에게 영주산(한라산)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명령한다. 서불은 동남동녀 오백 명을 거느리고 영주산에서 불로초를 구하고 진나라로 돌아가면서 제주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마애명을 새겼다고 전해진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세계 10대 불가사의 걸작품으로 선정된 진시황 병마용은 2천여 년의 유구한 세월이 흘렀어도 장엄하고 웅장한 위용은 변함이 없다. 실물 크기의 군 마상은 현재까지 8천여 구가 발굴되어 갱 안에서 11줄 오와 열을 맞춰 열병 자세를 취하고 있다. 쭈그려 앉은 병사의 나막신 바닥이 미끄럼 방지가 되어 있을 정도로 섬세했고, 병사들의 얼굴은 생동감이 있고 표정이 살아 있다. 그걸 바라보면서 영원은 무한한 자유인 걸 깨닫는다. 바로, 이 순간이 영원이고, 영원은 실존적 현실이다. 그 존재의 허무를 사진에 담는다. 그들의 모습은 시간 속에 사라질지라도, 사진에 박힌 그 순간만은 어쩌면 영속할지도 모른다.
갱은 1호, 2호, 3호까지 발굴 공개되고, 미발굴 된 갱은 그대로 두고 개발은 후손에게 맡긴다고 한다. 모든 게 온전히 갖춰진 한 시대 역사적 사실의 자취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향기가 나는 것 같다. 나는 그 향기를 맡는다. 부드러운 흙이 빚어낸 찰나의 향이다. 그들은 죽어서도 살아 있는 것처럼 나의 혼을 흔들고 있었다. 순간 속의 영원을 머금은 황홀경이다.
중국을 통일한 황제답게 그의 능에는 슬픈 사연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황제의 장례가 끝나고 무덤 공사에 참여한 관리 노예 등 모든 사람이 진시황과 함께 순장되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영생을 위해 그 많은 사람이 함께 죽어야 했다니 할 말을 잃었다. 그 원혼들이 지금도 구천에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죽음 이후를 사유思惟하는 동물은 인간뿐이라 한다. 이런 무덤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 태생적 내세관을 보여주고 있다. 하늘을 쓸며 지나가는 산바람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내 등짝에 설렁한 기운이 내려앉는다. 무덤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산 능선에 가득한 소나무들이 바람이 흔들리며 비통한 애조를 남기고 있다. 그 덕분에 시안의 모든 고분이 도굴되었어도 진시황 능陵은 찬연한 그 순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진시황이 남긴 이 유적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해 놓은 것 같다. 순간과 영원은 지극히 인간적인 개념일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산하는 의구한데, 그 시대의 호방한 인걸은 간 곳 없으니 ‘객관적 역사는 없다’라는 말이 실감으로 다가온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비 내리는 길, 나뭇잎을 휘감은 애잔한 바람 소리에 헛된 꿈 같은 삶의 의미를 되새김한다.
여행 마지막 날 오른 화산華山은 중국 오악五嶽 중 하나로 중국의 섬서성 남쪽 진령산맥에 있다. 화산은 높이 2,437m의 험준한 바위산으로 조양봉, 낙안봉, 연화봉, 운대봉, 옥녀봉의 다섯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연화봉(서봉)까지 오르는 곤돌라가 흔들리는 배처럼 내리막 오르막을 반복하니, 악산의 진경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정상에 오르니 가슴이 탁 트이고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적신다. 위하평원을 가로질러 황하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이제 운대봉(북봉)으로 내려가야 한다. 능선의 산세가 장엄하다. 나는 절벽을 따라 돌계단을 내려간다.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두려움에 떨었다. 당나라 황제들이 연화봉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했기에 이 계단을 그때 만들었다고 한다. 그 길을 나는 내려가고, 수많은 중국인이 마치 개미 떼 행렬처럼 긴 줄로 오르고 있다. 그들은 천상으로 오르고, 나는 지옥을 향해 내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연화봉에서 다시 곤돌라를 타고 원점인 화산으로 내려왔다. 갑자기 외롭고 허전한 기분이 온몸을 감싼다. 불과 몇 시간 전에 험산을 헤매던 순간들이 꿈결처럼 느껴진다. 나의 인생도 살아오면서 순간의 중요함을 깨닫지 못했다. 지나고 나면 순간이 꿈 같을 것임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내 삶의 기쁨도 고통도 결국은 모두가 꿈 같으리라.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