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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작 수필

금강소나무

by 안규수 2025. 11. 22.

                                                                금강소나무

                                                                                                               안 규 수

 

      금강소나무는 나무 중에서도 고고한 선비의 기풍을 지녔다. 성인군자요, 격조 높고 덕망 있는 어른을 닮았다. 이 나무는 오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온갖 풍상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국토를 푸르름으로 지켜 왔다. 천 년을 산다는 학()은 오직 소나무에만 앉는다고 하지 않던가.

    중심 줄기가 곧게 뻗는 여느 침엽 상록수와 마찬가지로, 소나무 껍질은 적갈색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표면이 거북 등껍질처럼 갈라지는데, 그 모양이 마치 철갑을 두른 듯 위풍당당하여 애국가에도 언급될 정도다. 상록수로서 어떠한 엄혹한 냉해와 추위에도 굳건히 견뎌내는 기상을 보여주었기에, 조선시대 선비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율곡 이이는 세한삼우(歲寒三友)로서 송() · () · ()를 꼽았고, 윤선도는 시조 '오우가'에서 소나무를 벗으로 여겼다. 추사 김정희 역시 '세한도'를 통해 어려울 때 도와준 친구의 고결함을 겨울철 소나무에 빗대어 기렸다.

   소나무는 장미처럼 요염한 꽃을 피우거나, 화려한 향취로 뭇 나비를 부르지도 않는다. 오히려 오랜 비바람에 시달린 노숙한 모습이야말로 화가의 붓끝에서 신비롭게 되살아난다. 바늘 같은 잎이 서로 얽혀 자칫 어수선해 보일 수 있으나, 자세히 보면 의좋게 짝을 지어 한 줄기에 질서정연하게 붙어 있다. 맵고 거센 설한에도 꿋꿋이 버티는 그 기개가 장관이다.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지만, 예전에는 갓난아이가 태어나면 사립문이나 대문에 금줄을 걸었다. 이 금줄에는 반드시 소나무 가지가 꽂혔다. 금줄의 '()'은 잡스럽고 삿된 걸 막아준다는 뜻이며, 소나무는 곧 벽사(辟邪)의 상징이었다.

   소나무 중 으뜸은 사시사철 푸름으로 지조를 잃지 않는 금강소나무이다. 그 이름은 금강산에서 유래했다. 그곳에 집단으로 서식하며, 예로부터 의와 충을 상징해 왔다. 단종 복위 사건으로 혹독한 고문 끝에 죽음을 앞둔 성삼문이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가 이를 증명한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 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죽을지언정 고결한 절의(節義)를 버릴 수 없다는 뜻이다. 이보다 더 굳건한 충의가 또 어디 있으랴.  

 

  지난해 가을, 나는 아내와 함께 제주 영실 소나무 군락지를 걷고 있었다. 소나무의 붉은 빛이 영락없는 금강산의 소나무를 닮아 있어서, 오래전 아내와 함께 금강산을 여행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가 10월 초순쯤이었다. 금강산은 온 산이 불붙은 듯 붉게 물들어 있었고, 12천 봉우리가 빚어낸 기암괴석의 웅장한 모습은 내 생애 처음 보는 빼어난 경관이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풍경 가운데 지금껏 내 마음에 남아있는 건 단 한 그루의 금강소나무다. 천년 세월을 버텨온 듯한 위용으로 서 있는 그 나무 앞에서 나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 금강소나무와 비교할 수 없는 짧은 생애지만 우리 부부가 견디고 지켜온 세월의 결 또한 그 나무를 닮아 있었다. 초록이 물결치던 젊은 날,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약속을 받았다.  

내가 늙어도, 병이 들어도 내 곁을 떠나지 않겠지?”  

아내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고, 그 작은 약속은 세월의 비바람 속에서도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해 봄, 뜻밖의 병마가 문득 삶을 스쳐 지나가던 시간. 몸도 마음도 바람 앞의 갈대처럼 흔들렸다. 그때 아내는 밤새 내 고통을 말없이 받아내며 지친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 손의 따스함이, 눈물보다 깊은 사랑이,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조용히 일깨워주었다. 내가 이 자리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녀가 건네준 그 깊고 고요한 사랑 덕분이었다.  

 

지난해 추석,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늘 보이던 뒷동산을 무심히 올려다보았다. 그곳엔 언제나 나를 가장 먼저 맞아주던 금강소나무가 서 있어야 했다. 눈비를 맞아도 흔들리지 않던, 사계절의 바람 속에서도 푸름을 잃지 않던 그 나무가. 그러나 낯익은 자리에 있어야 할 소나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소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었다. 여순사건의 피바람이 마을을 덮쳤던 시절, 작은 매형이 징광산에서 반란군에게 죽창으로 처형당하던 참혹한 순간을 지켜보았던 나무다. 마을 사람들이 공포와 슬픔 속에 숨어들던 날, 변함없는 자리에 서서 역사의 상처를 묵묵히 품고 있던 나무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향의 아픔을 소나무는 오래도록 대신 기억해 주고 있었다.

  그런 나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뿌리 깊은 허전함이 마음을 쓸고 지나갔다. 소나무가 서 있던 빈자리를 바라보고 있으니, 세월이 흘러 사라진 것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 아래서 뛰놀던 어린 시절의 동무들, 온 가족이 모여 웃음꽃을 피우던 저물녘의 풍경들. 이제는 모두 흩어져 제 삶을 살거나 세상을 등진 지 오래다.

  홀로 남았다는 쓸쓸함이 밀려올 때쯤, 문득 내 곁을 지키고 있는 아내의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 거친 세월을 견뎌온 주름진 손이 마치 소나무의 껍질을 닮아 있었다. 순간 깨달았다. 고향의 뒷동산을 지키던 소나무는 비록 사라졌지만, 내 삶을 지탱해 주는 또 다른 금강소나무가 바로 여기 서 있다는 사실을.

  고향의 소나무가 역사의 비바람을 묵묵히 견뎠듯, 아내는 내 삶의 고통과 시련을 말없이 품어주었다. 내가 흔들릴 때마다 다시 뿌리내릴 곳이 어디인지 일러준 것도 바로 아내였다. 눈앞의 나무는 사라졌을지라도, 금강소나무의 푸른 정신은 '아내'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여전히 뿌리내리고 있다.

  그 든든한 나무가 곁에 있는 한, 나의 삶도, 사랑도 언제나 푸르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아내라는 이름의 금강소나무에 기대어 또 하나의 하루를 조용히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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