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자유혼인가
안 규수
가을 하늘이 맑디맑아 높게 느껴진다. 섬의 숲길을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바람이다. 여름의 뜨거움을 식혀낸 바람은 한결 부드럽고 맑고 선선하다. 바람은 곧장 귓가에 작은 파도의 숨결을 실어 나르고, 바다는 푸른빛을 한층 더 깊게 가라앉힌 채 고요한 미소를 머금는다.
해안가에 지천으로 피어난 연보랏빛 꽃들은 고요히 숨을 고른다. 그 위로 날개 여린 부전나비가 하늘 저편으로 흩날리듯 사라진다. 오늘은 바람이 자취를 감춘 탓일까, 바다는 마치 심심한 듯 꾸벅꾸벅 졸고 있다. 흔히 성깔 사나운 바다라고 말하지만, 정작 사나운 건 바다가 아니라 바람이다. 멈춘 것들을 흔들고, 고요를 깨뜨려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 그 배후에는 언제나 바람이 있다. 바람은 때로는 폭군이기도 하고, 변덕스러운 방랑자이기도 하다. 그 불안정 속에 세상을 움직이는 근원의 힘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삶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는 때로 고요를 원하지만, 결국 삶은 끊임없이 흔들림 속에서만 앞으로 나아간다. 희망도, 절망도, 만남의 이별도 모두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며 흔들고 빚어낸다. 붙잡을 수 없기에 더 소중하고, 흩어지기에 다시 모여드는 것이 삶의 이치다. 바람은 자연의 숨결이다. 나는 그 숨결에 잠시 머물다 흘러가는 존재, 그 속에서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가을, 나는 길을 걷는다. 섬을 한 바퀴 돌아도 결국 만나는 건 세상이 아니라 내 안의 나였다. 걷는다는 건 단순히 발걸음을 옮기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건 햇살과 바람, 파도와 갯내가 내 오감으로 스며드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 걷기는 곧 수행이고 자기회귀의 길이다. 나는 흔들리고, 비워내며, 부족한 부분은 다시 바람의 자유혼으로 채운다.
깨닫지 못했지만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으로부터 어떤 위로와 희망 같은 것들을 받아온 건 분명하다. 아직 자연의 거대한 섭리는 잘 모르지만, 하늘과 구름과 바람, 노을이 그간의 나를 틈틈이 위로해 온 것이다. 순천만 갈대밭에 서니 바람은 여전히 불어치고 있었다. 바람이 안개를 걷어 내자, 눈안개에 희뿌옇게 뒤엉겨서 보이지 않던 남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저 먼 산에는 뽀얗게 새하얀 꽃을 둘러놓은 것 같은 바람꽃이 일고 있었다. 봄날 훈풍이 불어오면 새들은 고향을 떠나 자유를 찾아 멀리 시베리아로 떠나지만, 그 그림자는 여전히 갈대꽃 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가을이 오면 다시 만나자는 약속처럼. 어찌 보면 새들도 떠남과 머묾,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 속에서, 인간이 걸어가야 할 숙명의 길과 닮았다.
언제나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불어오던 바람은 섬 전체를 감싸며 흔들었고, 나는 그 거센 바람에 몸을 맡겨 어디로든 흘러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올봄, 섭지코지의 바위들을 향해 쉼 없이 후려치던 파도를 마주했을 때, 나는 그 맹렬한 기세에 눌려 슬그머니 몸을 돌린 적이 있었다. 돌아보면 그 순간은 단지 파도 앞에서 움츠러든 모습이 아니라, 인생의 벽 앞에서 늘 한발 물러서든 나 자신을 보여주는 은유였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바다는 원래 그런 것’이듯, ‘삶은 본디 그런 것’이라고 발길을 돌리며 위로를 얻었다.
바람은 지금도 그 현무암 검은 바위를 못 살게 흔들고 있을 것이다. 그 흔들림 속에서 바위는 졸지 않고 굳건히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겠지. 잎새가 바람에 흔들려 낙엽이 되어 땅에 떨어지듯, 나 또한 수많은 갈림길에서 주저하고 물러섰지만, 그 바람은 결국 나를 지금의 자리로 데려다 놓았는지도 모른다. 일출봉을 바라볼 수 있는 그곳 풍경은 늘 내 삶의 거울이 되었고,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아픔은 형의 죽음이다. 마흔하나에 병을 얻어 죽음을 앞두고 내 손을 붙잡고 “나 좀 살려 달라”고 울부짖든 모습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잊히지 않는다. 그 순간 나는 형을 살려낼 힘이 없다는 절망 속에서 집 마당을 서성였고, 집 뒤편 대숲을 흔들던 바람 소리가 유난히도 두렵게 들렸다. 그 바람이 금방이라도 형을 데려가 버릴 것 같아 원망스러웠다.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날의 바람을 다시 떠올리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 바람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 바람은 형이 육체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영혼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 준 힘이었다.
아르헨티나의 최남단 우수아이아(Ushuaia)는 세상 끝이라 불린다. 그곳엔 고요히 바다를 지키는 작은 등대가 하나 서 있고,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등대 앞에서 마음속에 담아둔 아픈 기억을 바다에 흘려보낸다. 나도 그곳에 가서 내 안의 아픈 사연들을 등대 앞 바다에 흘려보내고 싶다.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떠남과 돌아옴을 거듭하며 세상의 결을 쓰다듬고, 그 흔적 위에 새로운 삶을 새겨 넣는다. 인간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는 잠시 머무를 뿐, 결국은 모두 흘러가는 바람의 길 위를 걷는 나그네이다. 완전함을 붙들려 할수록 삶은 무거워지고, 흘려보낼수록 자유는 깊어진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새싹이 돋고 꽃씨가 흩어지듯, 인간의 존재 또한 흘러감 속에서 비로소 그 의미를 드러낸다. 바람은 두려움이 아니다. 흔들림은 곧 깨우침이며, 흩어짐은 곧 새로움이다. 언젠가 나는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인연의 숲 사이를 스쳐 지나가리라. 그때 나의 이름은 잊히더라도, 누군가의 가슴속에 맑은 바람으로 남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바람은 자유혼인가. 나는 서귀포 허니문 카페 앞 푸른 바다와 거센 바람을 좋아한다. 나는 예측할 수 없는 현실에서 항상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고 있지만, 희망을 가슴에 안고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 그 바람의 혼이 염려하지 말라고 다독이고, 지탱하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 바람의 자유혼은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나는 오늘도 갈바람을 가슴으로 맞으며 섬의 둘레길을 묵묵히 걷는다. 걸음이 멈추는 곳, 거기가 나의 마지막 귀향(歸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