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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작 수필

내가 꿈꾸는 성공

by 안규수 2025. 11. 28.

                                                              내가 꿈꾸는 성공

                                                                                                            안 규수

 

 

      인생은 이중(二重)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청춘의 시간은 야망으로 가득했지만, 다른 한쪽에는 까닭 모를 쓸쓸함과 괴로움이 그림자처럼 따랐다. 젊은 날은 눈앞의 성공이라는 풍경만을 좇았지만, 그 거창한 성취의 이면에는 늘 허무감과 외로움의 그림자가 짙게 겹쳐 있었다. 삶이 '소유''경쟁'이라는 외형적 가치에만 집중했을 때 겪는 필연적인 고통이었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젊은 시절에는 이 이중성을 알지 못하고 지나왔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황혼의 언덕에 서 보니, 가슴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삶을 괴롭혔던 큰 사건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사람의 따뜻한 말 한 줄, 나를 부르던 부드러운 목소리, 비 오는 날 우산을 건네던 작은 손길 같은 아주 작은 순간들이다. 그 사소한 온기가 결국 내 삶을 붕괴하지 않도록 지탱해 온 진짜 힘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것은 삶을 견뎌내게 한 최소한의 '고마움'이었다.

   누군가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건네는 일은 내 마음의 빗장을 조금 여는 일과 같다. 내가 혼자가 아님을, 누군가의 온기가 내 삶에 흔적을 남겼음을 겸허히 인정하는 행위다. 지금은 이 말의 무게가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젊었을 때의 고마움이 상대를 향한 즉각적인 감정이었다면, 지금의 감사는 시간을 품은 묵직한 감정이다. 수많은 경험과 오랜 세월을 돌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늦은 이해이자, 삶 전체를 향한 깊은 받아들임인 것이다.

  요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조용히 '고맙다'라고 중얼거린다. 때로는 나를 걱정해 준 가족과 친구를 향한 말이고, 때로는 온갖 풍파를 견디며 여기까지 온 나 자신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감사란 순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빛과 같다. 그 빛이 마음의 구석구석을 비출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는지 깨닫는다. 아내의 변함없는 미소, 식탁 위에 놓인 따뜻한 밥 한 그릇, 오전 햇살이 창틀을 넘어와 방을 데우는 평화로운 풍경, 아무 일 없는 일상 자체가 바로 내 삶에서 가장 놀라운 축복이었음을.

   우리 집 앞 길가에 있는 작은 구두 수선방을 지키는 50대 남자는 한쪽 몸이 불편하다.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지만, 그는 홀로 두 자녀를 키우며 가게를 운영한다. 빗속을 뚫고 휠체어를 밀며 출근하는 그의 뒷모습은 고단함 그 자체다. 가끔 빵을 건네주면 그는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나는 그에게서 삶의 진정한 동력을 본다. 물질적 성공이 아닌, 자식을 향한 책임감과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굳건함. 그의 삶이 바로 일상의 가치를 가장 처절하게 지켜내는 성공의 증명이며, 나는 그에게서 역설적인 감사의 감각을 배운다.

   세월은 나에게서 많은 걸 가져갔다. 끓어오르던 힘도, 허물없이 지내던 친구도, 가슴 한편을 채우던 야망도 어느새 고요해졌다. 하지만 세월은 동시에 더 큰 것을 내게 남겼다.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 한때 갈등했지만 결국 떠나며 배움만 남긴 사람들, 그 모든 인연이 내 삶의 결을 만들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나를 괴롭혔던 시간조차 지금은 고맙다. 아프고 고단했던 날들이 지나왔기에 지금의 내가 더 넉넉하고 단단하게 세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감사는 기쁨만을 향한 고마움이 아니다. 상처도, 아픔도, 외로움도 결국 나를 완성하는 밑거름이었다는 늦은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즘 나는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젊었을 때 무심히 스쳐 지나쳤던 길 위를 천천히 걸으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꿋꿋한 풀잎, 멀리서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티 없는 웃음. 이런 것들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이 느린 걸음은 노년만이 가진 특권이며, 천천히 걷는 만큼 세상은 더 많은 진실을 보여 준다. 그 모든 것이 내게 말을 건다. "살아 있는 지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이유가 된다."

   삶이 힘들 때면 섬 제주의 자연, 곶자왈 치유 숲으로 들어간다. 숲은 비가 온다고 우산을 찾지도 않고, 눈이 온다고 피하지 않는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묵묵히 제 시간을 견디는 모습에서 큰 위안을 얻는다. '엄살 부리지 말고 의연하게 살자'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된다. 물질적 성공을 향한 욕망이 정신적 건강보다 앞설 때, 인생은 균형을 잃고 허무한 순간을 맞이한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고, 겨울이면 잎을 다 떨구는 자연의 생애 주기는 나의 삶을 예측하게 하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혜를 얻게 한다.

   지금의 삶은 더 이상 무엇을 '소유'하는 시간이 아니라 무엇을 더 '사랑'하는 시간이다. 젊어서는 욕심으로 세상을 보았다면, 지금은 감사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한다. 감사는 인생의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원래 자리를 찾는 감정이며, 한 사람의 삶을 고요하고 아름답게 완성하는 힘이다.

   죽음을 마주하는 상상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은 곧 자기 삶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머지않은 날 마지막이 온다고 상상하고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지금까지 삶에서 가장 감사했던 순간은 무엇일까.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금 꼭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돌아봤을 때 내 삶은 이만하면 괜찮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화두를 따라가면 결국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곳에는 직함도, 재산도 없으며, 오직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과 마음속 진심의 말, 그리고 그것을 향해 노력했던 자신이 자리한다. 내가 꿈꾸는 성공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삶의 끝에서 스스로에게 "내 삶은 매우 고맙고 괜찮았다"라도 말할 수 있는 것. 감사와 사랑으로 충만한 삶, 그것이 노년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되는 정신적인 성공이다.

    오늘도 조용히 관조한다. 또한 이 말은 긴 세월을 견딘 내 마음, 내 인생 스스로에게 보내는 마지막 문장이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문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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