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초상화
안 규수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시간과 마주 선다.
젊은 날에는 거울 속 얼굴이 그저 타고난 생김새의 일부라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믿음은 서서히 빛을 잃었다. 이마의 얕은 굴곡, 눈가에 번지는 잔주름, 입매가 짓는 미묘한 흔들림까지. 얼굴은 더 이상 외모가 아니라, 삶이 지나온 길이 새겨진 하나의 지형도였다.
세월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표정을 깎고 다듬는다. 기쁨은 밝은 결을, 슬픔은 그늘진 음영을 남기고, 인내는 골짜기를 만들며, 사랑은 부드러운 선을 그어 놓는다. 그렇게 얼굴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살아온 방식과 마음의 무게를 고스란히 품은 시간의 초상이 되어 간다.
사람을 마주할 때면 그의 ‘시간’을 함께 본다. 밝은 얼굴의 사람은 봄 햇살처럼 주변을 따뜻하게 하고, 오래 고난을 견딘 얼굴은 바람에 깎인 절벽처럼 단단한 인상을 남긴다. 누군가는 짧은 미소 한 번에도 수십 년의 인내를 담고 있고, 어떤 눈빛은 말 한마디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전한다. 세월은 단지 외모를 낡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정직한 조각가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진짜 얼굴은 피부가 아니라 인격이다. 화장으로는 얼굴빛을 가릴 수 없고, 말로는 침묵의 무게를 가릴 수 없다. 얼굴을 이루는 것은 주름이 아니라 삶의 질감이다. 깊은 주름일수록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고, 마모된 부분일수록 사랑과 상처가 오랫동안 머문 자리다. 얼굴은 이렇게 ‘내면의 초상화’가 된다.
이 조각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은 단연 어머니였다. 내 기억 속 어머니의 이마에는 가느다란 실금 같은 주름이 있었는데, 그것은 고단함보다 ‘인내와 사랑의 경로’에 가까웠다. 일제 말 혼란한 시대를 홀로 견디며, 당신의 모든 열망을 오직 한 아들에게 기댄 채 살아오신 분. 봄비가 내리던 어느 저녁, 마당 모퉁이에 서서 붉은 노을이 가라앉는 서쪽 하늘을 조용히 바라보시던 뒷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날, 당신의 침묵은 무거웠고 아름다웠다. 어머니는 말없이 세상을 견디셨고, 그 침묵이 바로 사랑이었다.
마지막 순간의 어머니 얼굴은 고요했다. 고단함을 모두 놓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평온함이었다. 마치 긴 고행 끝에 도착한 작은 쉼터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는 듯한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시간이 새기는 얼굴은 슬픔과 사랑의 결이 겹쳐 이루는 완성의 얼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전 TV에서 젊음의 상징이던 한 배우를 보았다. 예전엔 빛나는 스포트라이트 아래 서던 그가 지금은 흰머리, 굽은 허리,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나와 동년배라는 사실을 알고, 잠시 말을 잃었다. 화면 너머 그의 주름진 얼굴이 곧 내 얼굴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아직 괜찮다’라는 근거 없는 자기 위안을 붙들고 있었다. 옆에서 TV를 보던 아내가 내 표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흰머리도, 목주름도 당신이랑 똑같은데 뭘 놀라요? 나이 든 건 둘이 닮았어.”
그 말에 더 놀랐다. 그제야 지금껏 외면해 온 현실을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이는 드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다.
며칠 후, 카페에서 70대 어머니와 40대 딸을 보게 되었다. 딸의 얼굴에는 젊음의 생기가 있었고, 어머니 얼굴에는 깊은 세월의 결이 있었다. 그 둘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순간, 마치 시간의 연속성을 보는 느낌이었다. 딸의 얼굴은 언젠가 어머니의 얼굴이 될 것이며, 어머니의 얼굴 속에는 이미 딸의 미래가 겹쳐 있었다. 얼굴은 이렇게 세대를 넘어 흐른다. 시간이 함께 그리는 가장 오래된 초상화가 되는 것이다.
오늘도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 속의 얼굴은 나의 역사이며, 내면과 외면이 만나는 경계이다. 신의 섭리가 깃들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있는 그대로 비추는 힘’일 것이다. 거울은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지만, 언제나 진실을 말한다. 그 진실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 한가운데 묘한 평온이 찾아온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는 박경리 선생의 말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젊은 날의 고단한 질곡은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며 웃고 울던 시간은 가끔 그리워진다. 그래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와 ‘돌아가고 싶다’라는 두 마음이 한 몸 안에서 교차한다.
지금 나를 아프게 하는 건 지난날 행복하게 해준 것들이다. 한때 내 곁을 맴돌다 사라진 사람들이 실은 여전히 내 삶에 꽤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깨닫는다. 정작 지난날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남은 생을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 한다. 다시 거울을 본다. 얼굴의 잔주름마다 이야기가 있다. 눈가의 굽음에는 웃음의 흔적이, 입가의 깊은 선에는 수많은 선택의 무게가, 이마의 주름에는 견뎌온 시간이 차분히 자리하고 있다. 삶의 대답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그저 살아온 날들의 표정 속에, 이미 그 답이 담겨 있을 뿐이다.
거울 속의 나는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 미소는 외모의 미소가 아니라, 세월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이다. 이 얼굴이 바로, 오늘의 나이고, 시간이 내게 남겨 준, 가장 진실한 초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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