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순천만
안 규수
순천만의 겨울은 철새들의 거대한 날갯짓으로부터 시작된다. 새벽 물안개가 갈대밭을 하얗게 뒤덮고 있을 때, 정적을 깨는 것은 길고 투명한 새들의 울음소리다. 그 소리에 반응하듯 밤의 어둠이 서서히 걷히면, 갯벌의 주인들이 기지개를 켠다. 가장 먼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갈대의 여린 잎들이다. 바스락거리는 그 소리는 울음도 아니고 웃음도 아닌, 생명의 지극히 낮은 숨소리에 가깝다.
이 낮은 숨소리가 들리는 가을이면 시베리아의 차가운 눈보라를 뒤로하고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 천연기념물이자 평화의 상징인 흑두루미다. 20여 년 전만 해도 수백 마리에 불과했던 이 새들은 이제 칠천여 마리의 대가족으로 순천만 습지를 뒤덮고 있다. 질서 정연하게 하늘을 가로지르며 내려앉는 흑두루미 무리와 그 뒤를 잇는 이만 마리의 청둥오리 등 철새가 갈대밭 사이사이를 누비는 광경은 일대 장관이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철새들의 월동'이라 부르지만, 새들에게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수만 리 고단한 비행 끝에 마주하는, 생존을 향한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귀환이다.
이 귀환을 위해 순천만의 들녘은 오랫동안 자신을 비워내며 기다려왔다. 들녘에서 수확한 벼를 수매하여 새들의 먹이로 내어주면서 철새들의 수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결단은 매년 늘어나는 새들의 숫자로 그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전봇대가 사라진 하늘은 비로소 새들의 온전한 영토가 되었고, 그 아래 펼쳐진 황금빛 들판은 거대한 식탁이 되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의 문법을 익혔을 때, 비로소 풍경은 생명력을 얻는다.
갈대는 봄부터 부지런히 제 몸을 키워 가을이면 은빛 꽃을 피워 올린다. 그 모습은 흡사 북쪽에서 수만 리를 날아올 연인을 맞이하기 위해 정성껏 몸단장하는 여인의 모습을 닮았다. 흑두루미가 긴 날개깃을 접고 갈대밭 품으로 내려앉으면, 갈대는 수줍은 몸짓으로 꽃대를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오랜 이별 끝에 해후한 연인의 눈빛이 그러할까. 갯벌 위로 쏟아지는 겨울 햇살 아래, 갈대와 흑두루미의 만남은 한 편의 서정시처럼 아름답고 벅찬 감격이다.
바람이 살랑이면 갈대꽃은 하얗게 부서지듯 흔들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 머리 위로 흑두루미가 '끼룩끼룩' 화답의 노래를 부르면 갈대는 신이 나서 온몸을 흔들면서 춤을 춘다. 갈대밭의 바람은 이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이별을 예비하는 중매쟁이와 같다. 환영과 환송의 경계에서 바람이 지휘하는 갈대의 군무는 우아하면서도 처연한 미학을 보여준다.
순천만에는 흑두루미에 관한 애틋한 이야기가 한 구절 전설처럼 전해온다. 1989년에 전봇대에 부딪혀 날개가 부러진 흑두루미 한 마리가 무리에서 뒤처져 홀로 남게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들은 녀석에게 '두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무려 15년 동안 사육장에서 정성껏 돌보았다. 그리고 2002년 이른 봄, 건강을 회복한 '두리'를 다른 무리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놀라운 일은 그다음 해 가을에 일어났다. '두리'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모습으로 다시 순천만을 찾아와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 사건은 순천만이 전봇대를 철거하고 철새 보호 구역으로 거듭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 생명을 향한 배려가 거대한 자연의 복원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곳 갈대밭은 아주 오래전부터 '떠남'과 '기다림'이라는 문장의 갈피를 채워왔다. 매화가 피면 제비가 오고, 연꽃이 지면 잠자리가 맴돌듯, 자연은 늘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대신 투영해 주는 정교한 매개였다. 옛 문인들은 자연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았고, 순천만의 갈대와 흑두루미 역시 그 깊은 인연의 연장선에 있다. 새가 날아오는 것은 비단 계절의 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누군가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이 갯벌 어딘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철새는 가을이 깊어지면 돌아오고 봄이 무르익으면 다시 길을 떠난다. 갈대 역시 가을이면 화려한 꽃을 피우고 겨울 내내 몸을 낮추며 다음 생을 준비한다. 인간의 삶도 이 순환의 고리를 무던히 닮아 있다. 누군가 곁을 떠났다고 해서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다. 떠난 자리가 따뜻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면, 그는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흑두루미가 떠난 자리에 갈대꽃의 여운이 남고, 갈대가 꺾인 자리에 다시 새순이 돋는 이치는 인간사의 만남과 이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문득 자문해 본다. 갈대밭에 흑두루미가 오지 않았다면 갈대는 그토록 눈부시게 몸을 흔들 수 있었을까. 갈대가 여름날의 거친 비바람과 고독한 태양을 이겨낸 힘은 가을이면 돌아올 흑두루미를 향한 지극한 '기다림'에 있었다. 한여름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한 그 신뢰가 있었기에 갈대는 비바람에 꺾이지 않았고, 마침내 찾아온 흑두루미의 우아한 자태는 그 기다림에 대한 응답이었다. 진정한 겨울의 멋이란 차가운 계절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부르는 생명들의 온기로 채워가는 것임을 이들이 빚어내는 조화로운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깨닫는다.
요즘 추위를 무릅쓰고 갈대밭을 찾는다. 철새들의 화려한 군무(群舞)를 보기 위해서다. 자연이 연출하는 극단의 신비와 경외감에서 풍요로운 영감을 얻는다. 갈대 숲길을 걸으면 영혼과 기억 그리고 자연이 하나가 되어 의식 속으로 스며든다.
순천만의 겨울은 흑두루미의 힘찬 날갯짓으로 문을 열고, 갈대꽃의 소멸로 문을 닫는다. 그사이에는 계절의 깊은 침묵과 사유가 켜켜이 쌓인다. 자연은 결코 불필요한 말을 내뱉지 않는다. 오직 몸짓과 소리, 그리고 정직한 순환으로만 진리를 보여준다. 그러하기에 순천만의 겨울은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일을 넘어,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을 관조하게 하는 인간의 가장 깊은 철학적 마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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