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신작 수필

침묵이 주는 깊은 문장

by 안규수 2026. 2. 15.

                                                                침묵이 주는 깊은 문장

                                                                                                                      안 규수

 

 

      긴 세월을 돌아보니 말은 줄어들고, 대신 누군가와 함께 머무는 시간은 길어졌다. 젊은 날에는 말이 많아야 관계의 밀도도 높아진다고 믿었다. 조리 있게 설명하고, 논리로 설득하며, 오해는 그 자리에서 풀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래야 비로소 타인의 마음속에 가닿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의 고비들을 넘기며 뒤늦게 깨닫게 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은 아껴야 한다는 것을, 때로는 침묵이 그 어떤 수식어보다 정확한 언어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얼마 전 병실 창가에 아내와 나란히 앉아 있던 시간도 그러했다. 큰 수술과 이어진 항암치료로 기력이 쇠잔해진 몸은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고, 막막한 앞날은 도무지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아내는 곁에서 많은 말을 보태지 않았다. 그저 창밖 은행나무 잎이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고요히 응시할 뿐이었다. 그 무거운 공기 속에서 내뱉는 섣부른 위로는 오히려 듣는 이에게 부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적막은 세상 그 어떤 웅변보다 또렷한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괜찮아질 거야.”

   아내는 그 흔한 위로조차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대신 깊은 눈빛에 실어 건넸다. 두려움과 걱정, 그러면서도 결코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그 찰나의 시선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수술실 밖에서 다섯 시간을 견뎌낸 아내는 겨우 마주한 얼굴을 보며 잠시 미소 짓더니, 이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파르르 떨리는 어깨를 보았다.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조용히 삼키던 울음에는 지난 세월의 소회와 갑작스러운 병마 앞에 마주한 당혹감이 한꺼번에 배어 있었다.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음에도 서로가 무엇을 견디고 무엇을 삼키고 있는지 온몸으로 전해졌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진심은 이렇듯 침묵의 형식을 빌려 완성되곤 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비단 병실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예부터 전해오는 불언지교(不言之敎)라는 말은 가르치지 않는 듯 가르친다는 심오한 뜻을 담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삶의 궤적을 그리다 보니 이 말의 참뜻이 가슴에 와닿는다. 입술로 하는 훈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삶의 궤적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뼈를 깎는 인내를 요구한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각인되는 것은 부모의 유창한 설교가 아니라, 묵묵히 삶을 지탱하던 뒷모습이었다. 정직하게 땀 흘리는 모습,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태도,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는 용기가 아이의 마음에 조용히 쌓여갔다. 수천 번의 잔소리보다 부모가 살아낸 하루하루가 아이들의 인생에는 더 깊고 선명한 문장으로 새겨진 셈이다.

   해 질 녘 마루에 앉아 있으면 자연 또한 말 없는 스승이 되어 다가온다. 새들은 서두르는 법 없이 제때 둥지로 돌아가고, 산등성이의 붉은 빛은 예고 없이 서서히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자연은 자신의 섭리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제자리에서 제 시간을 묵묵히 살아낼 뿐이다. 그 정경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오늘 하루를 무사히 건넜다는 사실만으로도 생은 충분히 경이롭다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인간관계 역시 자연의 이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화려한 수사로 포장하기보다 서로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 주는 시간이 쌓일 때 관계의 뿌리는 비로소 깊게 내려앉는다.

   농촌의 흙냄새를 맡으며 자란 기억 속에는 늘 아버지의 넓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는 이른 아침이면 누구보다 먼저 논으로 향하셨다. 벼의 발육을 살피고 병충해를 손보는 손길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농사는 사람이 다 짓는 게 아니다. 하늘이 도와야 하는 법이다." 이는 할 일을 다한 뒤에 겸허히 결과를 기다릴 줄 아는 성숙한 태도였다. 조급함에 매몰되지 않고,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삶의 철학이 그 짧은 문장에 깃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긴 훈화를 늘어놓는 법이 없으셨다. 대신 성실하게 일구는 일상의 뒷모습으로 모든 것을 말씀하셨다. 그 모습은 세월이 흘러도 흐려지지 않는 잔상으로 남았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를 억지로 재촉하지 않는 의연함, 남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가 형제들의 마음속에 단단한 주춧돌로 놓였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아버지가 보여 주신 가장 위대한 '말 없는 가르침'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침묵은 단순히 입을 닫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는 날카로운 말을 삼키고, 내 안의 불필요한 소음을 줄여나가는 수행에 가깝다. 아이를 다그치며 몰아붙이기보다 믿음으로 기다려주는 것, 아이가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묵묵히 곁을 지키는 인내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허덕이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당당히 걸어갈 수 있다. 비로소 자기 내면의 진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밤하늘의 아득한 별만을 좇으며 방황하기보다는, 본인 자체가 이미 스스로 빛나는 존재임을 자각하며 살기를 바란다. 타인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흔들리는 삶이 아니라, 자신 또한 거대한 자연의 경이로운 일부분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삶. 그 자각이 생의 중심을 잡아 주는 든든한 닻이 되어줄 것이다. 부모와 자식은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독립적인 존재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상처가 생겨도 시간이 흐르면 살이 돋듯, 사람의 안에는 스스로를 치유하고 회복하려는 강인한 힘이 내재해 있다. 그 생명력을 믿고 조용히 지켜봐 주는 일, 그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소통일지도 모른다.

   이제 적지 않은나이의 문턱에 서서 지나온 길을 반추해 본다. 지키고 싶은 관계의 본질은 명확해졌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고단한 어깨를 알아봐 주는 사이, 긴 침묵 속에서도 공기가 어색하지 않고 편안한 관계, 화려한 표현 대신 담백하고 투명한 진심이 오가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여생, 말을 더 줄이고 싶다. 대신 소중한 이들의 곁에 머무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가고 싶다. 혀끝에서 맴도는 덧없는 소리보다, 깊은 침묵 끝에 남겨지는 묵직한 문장을 신뢰하며 남은 생을 찬찬히 걸어가고 싶다.

'나의 신작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녁 숲이 가장 깊다  (0) 2026.02.28
외로운 섬의 풍경  (0) 2026.02.23
아내의 숲  (0) 2026.02.04
그해 겨울, 순천만  (0) 2026.01.28
천국의 작은 도서관  (8) 202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