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새로운 ‘정보’를 소비하고 폐기하는 오늘날과는 달리 옛사람들은 책을 천천히, 매우 천천히 읽었다. 고전을 소리내어 읽는 방법(diction)을 가르치고 배웠을 뿐만 아니라 모범적인 텍스트는 반드시 암송하게 했고 이는 시험과목의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그들은 백 번 읽으면 사물의 바른 이치를 깨닫고 이를 본받으면 스스로 바른 글을 쓸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서당에서는 그래서 언제나 선비들이 책을 읽고 외우는 소리가 마을의 골목길에까지 낭랑하게 들렸다.
프랑스 소설의 경우, 거듭 읽을 때마다 울림과 감동이 새로워지는 ‘고전’으로 나는 단연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카뮈의 ‘이방인’을 꼽고 싶다. ‘마담 보바리’는 좀 긴 편이지만 작가가 이 작품을 쓰는 데 무려 5년 가까운 각고면려의 시간을 바쳤고 한 문장 한 문장 쓰고 고치는 과정에서 어조와 운을 찾고 맞추기 위하여 목청 높여 읽는 소리가 그의 집필실 크롸세의 강 건너편에까지 들렸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반대로 ‘이방인’은 단숨에 쓰여졌지만 그 구조가 정치하여 롤랑 바르트는 이 작품의 출현을 건전지의 발명에 비유했다. 길이가 짧고 간결하여 교실(class)에서 가르치기 좋고 또 가르칠 가치가 있는 고전(classic)이다. 처음에 어머니의 죽음(자연사), 한가운데 살인, 끝에 사형(법적·사회적 살인), 이렇게 세 가지 방식의 죽음을 대칭형으로 배치시킨 심각한 소설, 세계에서 성서 다음으로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읽힌다는 소설 ‘이방인’은 프랑스어 초급과정을 마치고 난 다음 곧바로 읽어도 그리 힘들지 않을 만큼 어휘와 구문이 단순 평이하여 접근이 쉬운 작품이다.
나는 젊은 시절에 이 두 소설을 우리 말 번역으로 처음 읽은 이래 수 십 번 거듭 읽었다. 이 소설들을 새롭게 번역하는 과정에서 곱씹어 읽고 되새겨보는 기회도 있었다. 그런데 매우 익숙한 이 작품들 속에서 아직도 그 의미와 기능을 분명히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담고있는 부분들을 종종 마주친다.
그럴 때면 문득 오래 살아온 집안에서 아직도 들어가 보지 못한 다락방과 지하골방을 발견할 때처럼 이 작품의 모습 전체가 새롭고 낯설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고향의 옛집에 돌아가듯이 요즘도 종종 다시 꺼내어 읽곤 하는 이 소설들은 나의 문학적 감성과 독서방식의 성장, 회의와 변화가 중첩 투영되는 자전적 거울이기도 하다.
이 소설들은 처음 세상에 나온 뒤 오랜 세월(150년과 60년)을 거쳐오는 동안 프랑스 문학의 테두리를 넘어 세계 소설사 속의 중요한 교차로가 되었다. 철학·심리학·사회학·의학이 즐겨 인용, 원용, 분석하는 이 소설의 해석은 다양한 현대비평방법론들의 비켜갈 수 없는 실습장 혹은 감광판이 되고 있다. 현대 문학비평사는 ‘마담 보바리’와 ‘이방인’의 비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이 소설들의 어느 대목을 거듭 읽거나 암기하면 좋을까? 가령 ‘이방인’의 경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돌아온 뫼르소가 자기 집 발코니에 앉아 거리를 내다보며 빈둥대는 일요일, 살라마노 영감과 그의 개, 마리의 면회, 화자가 “절대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감옥생활(2부2장), 사형집행에 대한 명상(2부 5장)등 뚜렷이 분리되는 장면이나 토막들은 많다. 그러나 압권은 역시 스스로 연극배우였던 카뮈가 생전에 ‘이방인’의 귀중한 낭독녹음으로 남긴 해변의 살인장면과 소설의 끝 부분, 감옥으로 찾아온 신부에게 퍼붓는 뫼르소의 절규, 그리고 저 유명한 마지막 문단이라 하겠다.
“그때 밤의 저 끝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에게 영원히 관계가 없게 된 한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왜 인생이 다 끝나갈 때 ‘약혼자’를 만들어 가졌는지, 왜 생애를 다시 시작해보는 놀음을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엄마’와 ‘죽음’으로 시작한 소설은 이렇게 ‘엄마’와 죽음으로 끝난다.
한국어로 쓰여진 소설 가운데서는 무엇을 암기하면 좋을까? 얼른 떠오르는 작품은 가령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김주영의 ‘홍어’의 도입부 눈 내린 겨울날 아침, 이문열의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등이지만 그 가치와 성패는 구체적 암송 체험의 검증을 거친 다음에 드러날 것이다. 작가들이여, 말하라, 우리가 오래오래 마음에 박아둘 그대의 보석은 어디에 숨겨 두었는가.
김화영·고려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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