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시 읽고 싶은 수필

한강 / 어리보기

by 안규수 2016. 4. 18.


강이 흐른다. 낮은 곳으로, 더욱 낮은 곳으로. 가다가 폭포를 만나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뛰어 내린다. 온몸이 푸르게 멍들어도 다시 벌떡 일어나 또 흘러간다. 소(沼)를 만나면 쉬어서 간다. 강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은 겸손함 때문이다. 부서지면 불평 없이 다시 모여서 가는 것도.

강물이 작은 샘이나 여울에서 시작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꽃잎 끝의 물방울 하나가 모여서 개여울이 되고 내가되고 강이 된다. 물방울이 살아남으려면 서로 모이고 뭉쳐야 되는 것이다. 그래야 시내가 되고 강을 이룬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듯이.

강은 여행하면서 거만하고 도도히 흐르는 것만이 아니다. 강 속의 생물과 무생물, 강 밖의 식물도 키운다. 도란도란 꽃 지는 소리가 들린다. 상류의 1급지 에서는 산천어, 열목어, 등을 기르고 중류에서는 꺽지, 동자개, 쏘가리 따위를 품에 안는다. 하류로 갈수록 강은 넓어지고 물의 품은 넓어져 고기들의 종류는 다양해진다. 거기서 부터는 고기들의 덩치도 커져서 잉어, 가물치, 메기와 참붕어, 떡붕어가 헤엄쳐 다닌다.

어디 어류만 그런가. 강은 산비랑에서 굴러 내리는 돌들에게도 깊은 사랑으로 보듬어준다. 뾰쪽하고 모난 바위는 둥글게 깎아주고 작은 자갈들은 쓰다듬고 핥아서 둥글고 매끄럽게 만들어준다.

그대, 강가의 노을 지는 마을을 본적이 있는가. 저녁연기 굴뚝에서 향수처럼 피어오르고 소먹이는 아이들 집으로 돌아갈 때 강은 미루나무와 갈대, 여귀꽃 어리연꽃 이며 물총새, 백로도 키운다. 강의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다. 강은 자애로운 어머니인 것이다. 지병 때문에 한강 가 병원에서 하룻밤 묵는다. 기다리던 장엄한 강물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얕은 개울물은 소리 내어 흐르지만 깊은 강은 침중이 흐른다. 개구리, 맹꽁이도 울지 않는다. 그것들은 무논이나 밭둑에서 울지 깊은 강가에서 요란을 떨지는 않는다.

멀리 삼각산은 너 따위쯤 개의치 않는 듯이 아득하게 물러서 있고 가까운 남산은 텃세 하듯이 가까이 와서 어머니처럼 들여다보고 있다. 산은 늘 색깔이 다르게 변화한다. 아침저녁, 시시각각. 먼 산은 감색으로 가까운 산은 갈매빛 으로.

그대. 해인사 홍류동 옆에서 유한적이 있는가. 밤새도록 빗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에 왠 비가 저렇게 많이 올까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계곡물 흐르는 소리였다. 사람도 그렇다. 어느 정도 인격이 도야된 분들은 말이 거의 없다. 석류처럼 안으로 속으로 익어간다. 가슴 가득히 보석을 품고 있다.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고요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본다. 저 강은 언제부터 흘렀을까. 2000년 여 년 전 백제의 수도였을 때부터 삼국은 한강을 차지하려고 싸웠으며 60 여 년 전에도 이마가 터지도록 다퉜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며 흘러가는 강. 내일도 모레도 그렇게 흘러오고 흘러 갈 강.

내일 새벽에는 아침 안개 속에 흐르는 강을 보리라. 밤새 잠을 뒤척인다. 강 건너 노량진 수산시장은 밤새도록 불야성을 이룬다. 한밤중에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소리와 전철의 굉음이 들린다. 저 사람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강물은 자의에 의해서 흐르는 것이 아니다. 뒤에서 밀려오는 물에 의해 등 떠밀려 가는 것이다. 사람의 삶도 자신의 마음대로 살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절대자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일 따름이다.

옛날부터 태백산 검룡소에서 발원한 물은 남한강이 되고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황지에서 시작한 물은 낙동강이 되었다. 거의 같은 곳에서 흘러내린 물이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강이 되고 나머지는 가장 긴 강물이 된 것이다. 검룡소의 작은 연못에서 차차 덩치를 키운 여울은 정선에서 강이 되어 뗏목을 엮어 흘러내려 왔단다. 정선 아리랑의 그 구성진 소리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드디어 양수리에 도착한 강물은 숨을 고른 후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조우하여 흘러왔다. 한강 가에 있는 양화진, 노량진 등 ‘진’자로 끝나는 곳은 군대가 거주한 곳이고 마포나루 등 없는 곳은 민간인들만의 시장이었다. 행주산성을 지난 강물은 강화도 앞 손돌목을 지나 서해로 들어가며 기나긴 여행을 끝낸다. 한강에 비가 내린다. 한강 가에 늘어 선 수많은 아파트들이 비에 젖고 있다. 빗물에 젖은 건물들은 모두 측은해 보인다. 아니, 가뭄 끝에 내리는 비를 맞는 수목들 비를 모든 사물들이 만세를 부르는 듯 느껴진다. 강심(江心)가득히 수많은 동심원들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세상사 그렇지 아니한가 생성했다가 소멸하는 것. 우리의 삶 또한 그렇지 않은가.



     대상작입니다. 원본은 제출했기 때문에 좀 다릅니다. 예전에 '강물의 여행'이란 제목으로 올린 글입니다.

낮 열 두시 까지만 올렸다가 내릴것입니다. 해량하시길.  <현실 펜에서 퍼 온 작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