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작 수필43 천줄기 바람 가을도 잠시, 입동을 지나자 매서운 한파가 몰려왔다. 11월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저무는 계절, 하루가 다르게 어둠이 빨리 찾아오고, 싸늘한 바람에 마음도 심란해진다. 집 근처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뒤적이며 간간이 떠오르는 착상들을 종이에 끼적이고 있었다. 이처럼 자신만의 시간 속에 사색의 나래를 펼치는 자유로운 시간은 감미롭다. 한 점의 죄의식도 없이 시간의 호젓함에서 빈둥거리며 흘려보내는 순간 나를 잊고 시간을 잊는다. 시간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정보화시대라지만 요즘 인생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아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시간병(Time-Sickness)’에 걸린 걸까? 시간 병은 시간이 달아나는 것 같아 초조함을 느끼는 현상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가질 수 있는.. 2024. 2. 1. 그것은 바로 너다 인생에는 시간에 의해 생긴 음영과 굴곡이 있다. 시간의 지배 아래서 제 삶을 꾸리는 까닭이다. 탄생과 죽음도 시간 속에서 겪는 실존 사건이다. 이 시간은 균질하지 않으며 그 속도와 길이와 느낌도 제각각이다. 지금 나는 “시작보다 끝이 더 많아지는” 인생의 오후에 당도했다. 설렘과 희망으로 시작하는 아침은 저 멀리 사라지고 없지만 지금 당도한 이 ‘오후’가 그다지 싫지 않다. 안타까운 건 오후의 시간이 빠르다는 점이다. 손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는 듯 시간이 줄어든다. 더러는 오후의 빛 속에 서서 슬픔과 무無 사이에서 서성이는 내 그림자를 보고 놀라기도 한다. 고대 인도 경전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다. “벌들은 사방 여러 나무와 꽃에서 그 즙을 가져다가 하나의 꿀로 만들지 않느냐. 꿀이.. 2024. 1. 10. 시간, 소리 없는 바람이다 시월 하늘은 유난히 높고 푸르다. 며칠 새 하늘색이 바뀌고 바람이 선선해졌다. 가을바람은 구운 감자 냄새를 품는다. 나는 집 근처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뒤적이면서 간간이 떠오르는 착상들을 종이에 끼적인다. 글을 쓰다 생각이 막히고 따분해지면 나는 이 카페에 홀로 앉아 짙은 커피향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 속에 사색의 나래를 펼치는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요즘 나는 시간의 흐름에 민감하다. 시간은 나를 그악스럽게 거머쥔 채 흐른다. 굴곡진 삶의 고통마저 부드럽게 껴안고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 아득한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어린 날도 이미 오래전 시간이 안고 떠나가 버렸다. 시간을 건너오는 기억들은 다 향기롭다. 힘들고 모질었던 시간조차 세월의 거름망에서 촘촘히 다 걸러지는지 그리움이라는 아쉬움의 .. 2023. 12. 25. 숲의 노래 그리운 시절은 여름에 있다. 여름이 젊음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리운 한라산, 한라산 곶자왈 숲길은 나의 숨은 사랑이다. 섬, 제주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이름이 참 예쁘다. 그중에서도 여름은 특별하다. ‘름’이라고 발음할 때 혀가 입천장을 부드럽게 스친 후 입술이 닫히며 마무리되는 일련의 움직임이 좋다. 이 발음이 여름이라는 계절의 푸른빛과 잘 어울린다. 자연은 사계절이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기이하다. 그 균형은 여름이라는 계절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라산 곶자왈 숲을 좋아하게 된 건 20여 년 전부터다. 올여름은 지구 곳곳이 홍수 산불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늘에 앉아 있어도 불쾌지수가 치솟는다. 나 홀로 새벽 1시, 여수에서 배편으로 배낭을 짊어지고 .. 2023. 12. 2. 이전 1 2 3 4 5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