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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수필159

만월 / 정승윤 만월 / 정승윤 만월이 차오른다. 내 상처 또한 차오른다. 그믐이 되어 다 사윈 줄 알았는데 오늘 또 덩그러니 허공에 차오른다. 여기가 어디관데 그 아픔 못 지우나. 저기가 어디관데 그 슬픔 지고 가나. 나는 죽으면 저 구름처럼 허망할 텐데 내 상처는 여전히 처연히도 빛나는구나. 내가 저지른 죄를 누가 알리요 했건만은 모두들 잠든 밤에 저렇게 밝게 떠 있구나. 내가 그렇게 숨기고자 했건만은 세상의 만물 위에 저렇게 환히 떠 있구나. 나는 드러난 내 수치스런 삶에 전율한다. 그러나 밤에는, 이 아름다운 밤에는 모두 죽고 나 혼자 살아 만월을 바라본다. 2023. 12. 9.
낮은 구름 / 정승윤 낮은 구름 / 정승윤 오늘은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구름은 균일한 높이로 떠 있었고 새삼 그 위 세상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나는 낮은 구름 아래를 걸어간다. 구름 위에는 빛이 있다. 가끔 구름의 균열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온다. 구름이 어찌나 낮은지 나는 구름 위에서 지는 해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울한 구름 너머로 석양이 맑게 침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구름을 사랑한다. 다른 혹성에는 없을 지구만의 구름을 사랑한다. 오늘은 정말 죽기 좋은 날이다. 낮은 구름이 물 위 세상과 물 밑 세상을 가르고 있다. 나는 물 위로 떠올라 맑게 침전하는 석양을 보고 싶다. 멀리 희미하게 빛나는 베가성星도 보고 싶다. 내가 본 죽음은 영원한 일몰 같은 것이었다. 2023. 12. 9.
내 사랑 ‘엄지’ / 유선진 - 글: 유선진 (경기여고 43회) - (필자는 2015년 현재 80∼81세 전후로 추측된다) 우리들이 새색시 시절엔 며느리 이름을 부르는 시어머니는 흔치 않았다. ‘새아기’, ‘아가’, ‘새아이’ 이렇게 불렀고, 아이를 낳으면 ‘어미’는 아이 이름을 따서 ‘아무개 母’ 라는 호칭을 썼다. 그런데 요즈음 친구들에게 며느리를 어떻게 부르느냐고 물으면, 그들 대답이 한결같이 이름을 부른다고 한다. 새아기, 새아가 라고도 해 보지만, 이름을 부를 때가 가장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며느리가 제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일견 단순한 호칭 문제일 것 같아도, 조금 생각을 깊이 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 호칭 속에서 우리 사회 가정사家庭史 한 변천을 볼 수 있다. ‘새아기’라는 것은 보통명사이다.. 2023. 11. 23.
그때면 나는/ 신재기 횡당보도를 건너려고 기다리는 참이었다. 한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내 옆에 멈추어 섰다.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어 보였다. 헌칠한 키에 얼굴까지 잘 생겼다 태어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은 외손자가 오버랩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이를 보고 돌아서면 또 보고 싶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전거를 타는 외손자를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일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이면 몇 살이지. 10살, 11살? 그때면 나는 어디에 있을까. 이승일까, 저승일까? 가을, 저녁 해가 서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2023.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