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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작 수필43

녹색갈증 녹색갈증 안규수 여행은 또 다른 나의 꿈이다. 그 꿈을 찾아서 공들인 시간과 노력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숲은 언제나 싱그럽다. ‘숲’하고 발음하면 입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 바람 소리, 조잘대며 흐르는 물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등 숲의 언어는 곧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제주 협제 해수욕장 비양도 앞 바다의 물빛은 무지개를 닮았다. 살가운 바람에 출렁이는 잔잔한 파도에 쪽물을 풀어놓은 듯 5색의 깊이감은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저 푸른 물속에 아무 생각 없이 풍덩 뛰어들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음산하지 않고 그토록 아름답게 보인 적은 처음이다. 먼 옛날 손주 종명이가 세 살부터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 어린아이의 고통을.. 2023. 2. 21.
진트재에 오르니 진트재에 오르니 안규수 겨울바람이 제법 차다.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에 가시가 달린 듯, 절로 목이 움츠러든다. 겨울바람이 차가울수록 겨울 바다는 오히려 맛이 깊어진다. 기름진 갯벌에서 꼬막은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바닷물고기는 튼실해진다. 겨울의 진미는 바로 꼬막이다. 냉장·냉동 기술이 발달해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지만, 제철에 먹는 맛에 비할 바 아니다. ‘꼬막’ 하면 떠오르는 곳이 내 고향 벌교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인 꼬막은 아낙네들이 겨울에 개펄에서 캐낸다. 지난 주말에 찾은 벌교에는 꼬막 자루가 장거리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참꼬막은 생산량이 적어 금값이다. 30여 년 전만 해도 흔하던 참꼬막이 갯벌이 오염되어 지금은 청정지역인 여자만 장도에서 생산되고 있다. 그 대.. 2023. 2. 21.
안개 안개 안규수 영화 ‘헤어질 결심’을 봤다. 배우 박해일과 탕웨이의 매혹적인 사랑을 그린 영화로 박찬욱 감독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작품이다. 영화 저변에 흐르던 노래가 가수 정훈희의 안개였고 박 감독은 인터뷰에서 ‘안개’라는 노래가 영화를 만드는데 큰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중 내 옆자리 앉은 60대 부부는 20여 분 지나자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영화가 재미없어서 그럴까. 영화에서 이어지는 대사나 장면이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영화에서는 화면이 빠르게 전개되는 바람에 이야기 흐름과 반전 요소들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거기에 탕웨이의 서툰 한국어 발음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아무래도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다소.. 2023. 2. 21.
원추리꽃 원추리꽃 안규수 지리산 노고단 정상에 섰다. 노고단은 천왕봉, 반야봉과 더불어 지리산의 3대 주봉 가운데 하나이다. 장엄한 지리산 연봉은 짙은 연무에 숨어 그 장관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노고단은 봄의 철쭉, 여름의 원추리, 가을의 단풍, 겨울 설화 등 계절별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고 옛날 지리산 신령인 산신 할머니(老姑)를 모시는 곳(檀)이라 불리고, 맑은 날에는 저 멀리 최고봉인 천왕봉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지리산 자락 천은사 도계암을 지나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 성삼재에 도착했다.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파고든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성삼재는 마한 때 성씨가 다른 세 장군이 지켰다고 하여 불리던 이름이라고 한다. 건너편 반야봉이 안갯속에 누워 잠자는 듯 보였다. 노고단 대피소를 지나 고개에 이.. 2023.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