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작 수필43 9월의 노래 9월의 노래 / 안규수 9월의 아름다운 햇살과 바람은 뜻 모를 아쉬움을 추억 저편에서 불러내곤 한다.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이 옷깃을 스친다. 가을이 저만치서 손짓하고 있다. 찬란한 색채로 물들어가는 가을이 단조롭거나 지루할 리 없다. 아직은 태양이 뜨거운 햇빛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어느 순간 악센트 없고 단조로운 상실감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살아오면서 내가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나는 가을 달밤, 바다, 대숲, 제주 곶자왈 숲 풀벌레 울음소리를 좋아한다. 이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모든 것이 침묵한다. 벌레 소리가 침묵하고, 나뭇잎이 침묵하고, 나도 침묵한다.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이 이런 날 제격이다. 달콤한 전주에 이어 클라리넷 솔로는 기억 뒤편의 먼 시.. 2023. 12. 1. 길 위에 선 돈키호테 길 위에 선 돈키호테 안규수 나는 문학이라는 길 위에 선 돈키호테였다. 주인공 알론소 키 하노는 기사에 대한 소설을 읽고 상상 속에 빠져들어 그만 정신이 이상해지고 말았다. 그는 스스로 "돈키호테 라만차"라 칭하며, 그의 하인 산초 판사와 함께 정처 없이 모험을 떠난다. 나는 늦된 사람이다. 무언가 배우고 깨우치는데 더딘 축이다. 여린 성정처럼 삶의 여정도 그랬다. 늦되고 뒤처진 현실을 깨달은 때도 불혹을 넘긴 뒤였다. 순탄한 삶 덕분에 겨우 곳간은 반쯤 채웠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공허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자꾸 날 따라온 것 같아 뒤돌아보니 내 그림자였다. 정년 퇴임 후 유달리 하늘이 희부연 한 어느 봄날, 거울 속에서 낯선 내 얼굴을 보고서야 잃어버린 꿈.. 2023. 9. 19. 지승이의 꿈 지승이의 꿈 / 안규수 겨울 오후 붉은 햇살 한 줌이 차 안으로 비스듬히 들어온다. 새로운 풍경이다. 내 차가 마침내 고속도로를 질주할 수 있는 구간에 들어선 순간 휴대전화가 울린다. 손주 지승이의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진다. “할아버지 붙었어.” 올 2월 항공대학을 졸업하는 지승이가 지난 1월 30일 마지막 관문인 공항 관제사 시험을 치른 후 오늘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다. 그의 오랜 꿈이 날개를 달고 창천을 훨훨 날 채비를 마친 것이다. 지승이 일곱 살 때 처음으로 가을에 일만이천봉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 가는 금강산을 가족과 함께 여행했다. 그는 그때부터 나와 함께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 태국 베트남 등 여행하길 즐겼다. 미지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그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볼 때마다.. 2023. 9. 18. 대덕산 꽃바다 대덕산 꽃바다 / 안규수 초여름, 우거진 녹음이 산색을 온통 풀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젊어서 함께 산을 즐긴 친구 K, J와 셋이 강원 태백에서 일박한 후 태백과 정선의 경계인 두문동재(1,268m)를 향해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했다. 젊은 시절 한때 열정을 투자하며 미친 듯이 산을 찾았었다. 산에는 도원경桃源境이 있었고 영원한 푸른 바람이 불기 때문이고, 그 이상향을 찾아 바람 따라 그리움 따라다닌 세월이었다. 두문동재는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금대봉에서 대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국내에서 생태의 다양성과 식생이 가장 우수한 곳으로 평가받는 야생화 군락지다. ‘꽃바다’라는 별칭처럼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들꽃이 피고 진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었던 산행이어서 두 달 전 국립공원공단 예약센터에서 예약했다... 2023. 9. 18. 이전 1 ··· 5 6 7 8 9 10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