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작 수필43 다시 태어난다면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스스로 하는 질문이다. 나는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어린 시절 유난히 여리고 몸이 허약했다. 아버지가 키만 보고 일곱 살에 입학시키는 바람에 학교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2학년에 올라가서야 한글을 깨칠 수 있었다. 교실에서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늘 외톨이였다. 초등학교 때 내 별명은 ‘가시내’였다. 내 이름 ‘규수圭水’에서 따온 별명으로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지어 주셨다. 멀쩡한 사내를 가시내라고 놀려대는 동무들과 싸움도 많이 했다. 그 별명이 죽고 싶도록 싫어 홀로 눈물짓던 아이, 그 이름에 대한 열등감은 쉽게 사라질 줄 몰랐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일탈과 모험보다는 편협하고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상고.. 2023. 12. 1. 그늘진 녹색혁명 입추가 지났는데도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급속한 환경의 변화로 절기의 의미가 무색해졌다. 여름 강우의 유형이 온대 지역 장마가 아니라 아열대 지역의 우기로 바뀌었다. 자연환경이 바뀌면 수천 년 이어온 정서도 바뀌게 마련일 터,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그 시절 배는 고파도 행복하다는 것, 먹고 살 만한 땅을 가진 가족이 한 지붕 아래 오순도순 살면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새벽 먼동이 터오면 아버지의 기침 소리에 날이 밝았다. 아버지가 빗자루로 마당을 쓸면 엄마는 물동이를 이고 집 아래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부뚜막 위에 정수를 올리고 조왕신에게 가족의 안녕을 비는 것으로 하루는 시작되었다. 그때 농부들에게는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라는 순박한 믿음이 있었다. 아버지는 퇴비를 만들기 위해 매년 들에.. 2023. 12. 1. 그 여름날의 풍경 그 여름날의 풍경 / 안 규수 그리운 시절은 여름에 있다. 여름이 젊음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리운 한라산, 한라산 곶자왈 숲길은 나의 숨은 사랑이다. 섬, 제주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이름이 참 예쁘다. 그중에서도 여름은 특별하다. ‘름’이라고 발음할 때 혀가 입천장을 부드럽게 스친 후 입술이 닫히며 마무리되는 일련의 움직임이 좋다. 이 발음이 여름이라는 계절의 푸른빛과 잘 어울린다. 자연은 사계절이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기이하다. 그 균형은 여름이라는 계절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라산 곶자왈 숲을 좋아하게 된 건 20여 년 전부터다. 올여름은 지구 곳곳이 홍수 산불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늘에 앉아 있어도 불쾌지수가 치솟는다. 나 홀로 새벽 1시, 여수.. 2023. 12. 1. 겨울 산의 풍경 겨울 산의 풍경 / 안규수 겨울의 모진 바람과 백설의 난무에서 태고의 음향을 들을 수 있는 한라산의 겨울을 나는 좋아한다. 그 풍경은 어린 시절의 동심을 불러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무어라 해도 겨울이 겨울다운 서정은 흰 눈이다. 그 옛날, 내 고향은 눈이 제법 많이 오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이 내리지 않는다. 그 시절 한겨울 아침, 마당에 흰 눈이 소복이 내리는 날이면 아버지는 집 아래 우물까지 빗자루로 눈을 쓸고, 엄마는 물동이를 이고 그 뒤를 따라가 샘물을 길어 오시곤 했다. 온통 세상이 잠시 낡은 껍질을 벗고 현란한 흰옷으로 갈아입는 날이면 강아지가 좋아서 껑충껑충 뛰어논다. 나는 학교에 가는 길에 책가방을 등에 둘러매고 동무들과 눈싸움하던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차로 올라갈 길인 영실.. 2023. 12. 1. 이전 1 ··· 4 5 6 7 8 9 10 11 다음